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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Dec 04. 2023

와일드 라이프 Wildlife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와일드라이프>는 리처드 포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폴 데이노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1960년 몬태나로 이사한 세 가족 - 제리(제이크 질렌할)와 자넷(캐리 멀리건), 그리고 조(에드 옥슨볼드)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 사정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해하면 우리가 겪었던 IMF때 혼돈의 모습과 많이 비슷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인 제리는 일자리를 잃고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게 되자 상실감에 빠져 괴로워합니다. 실업으로 경제적 불안정을 견디지 못하던 제리는 당장의 할 일을 찾아 산불진화를 하겠다며 아내와 아들을 두고 산속으로 떠납니다. 아들 조와 단둘이 남겨진 자넷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고 14살인 조 역시 조금이라도 집에 도움이 되고 싶어 사진관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부재로 막막해진 자넷은 아들과 생활하기 위해 직업을 찾아 나섭니다. 눈이 내리면 아빠가 돌아올 거라 믿고 제리를 기다리는 조, 과정이 꽤나 길어지며 자넷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내가 당신 인생을 낭비하게 했네. 나도 마찬가지야



제리와 자넷은 서로 대화가 없습니다.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잠시 나오지만 서로 불편한 관계가 그렇게 대화 없는 어색한 부부의 모습으로 노출됩니다. 그 사이에서 필요한 것들만 주고받는 대화, 또 그 안에서 함께 하는 아이의 시선은 흔들리기에 충분합니다. 각자의 필요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 잔인하고 불안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단단한 조의 모습과 각자 일자리를 잡고도 흔들리는 어른들의 모습은 비교가 됩니다.



내가 당신 인생을 낭비하게 했네.

나도 마찬가지야.


보통의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부부싸움을 합니다. 제리와 자넷도 조 앞에서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그것도 적나라하게 서로를 힐난하고 싸웁니다. 감정에 휘둘려 자식이라는 한 인격체를 앞에 두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저는 이 장면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서로에 대한 실망을 드러내는 방식을 보며 조의 심정이 어땠을지, 게다가 자신이 부재였을 때의 자넷에 대해 제리가 조에게 꼬치꼬치 물어보는 장면은 조에게 너무나 잔인해 보였습니다.





전후의 혼란이 느껴지는 1960년대, 산맥을 따라 산불이 번지는 몬태나 지역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을 담아낸 장면들은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정적인 풍경이지만 걷잡을 수 없이 타들어가는 거대한 산불의 무서움이 생활고를 견뎌야 하는 제리와 자넷의 고통과 좌절에 함께합니다. 산불이 잦아들고 제리가 돌아오는 날 그동안의 모든 힘겨웠던 이들의 시간들도 눈 속에 놓아 사라질까요?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보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단다. 그걸 평생 간직하는 거지


조가 일하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다양한 사람들, 마치 우리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셀카를 찍을 때와 다르듯 - 여러 표정들이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작위적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념할만한 좋은 이유를 들고 찾아온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슬픔이나 아픔을 따로 기념하지는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건 살면서 생긴 좋은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란다.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보려고 사진으로 평생 간직하는 거지 그걸 돕는 게 우리야



보는 내내, 마음이 복잡한 자넷의 캐릭터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남편의 부재로 결혼 전 자신의 모습을 복기하며 - 사라진 꿈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공허한 눈빛과 과도한 치장들 그리고 몸짓들, 그러다 문득 불안한 현재에 집중해 일자리를 구하는 절박함, 조에게 나쁜 엄마이자 의지할 대상기도 한 자넷. 자넷은 완벽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나름 자신의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IMF때 우리의 가정들도 이러했습니다. 기존에 '가족'이란 당연히 함께 같은 곳에서 산다고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실직과 기업의 파산과 폐업, 신용불량자가 되는 과정으로 경제적 위기가 가족을 해체해 버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해고로 생존을 위해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던 아버지들의 모습이 제리에게서, 집에서만 지내던 엄마들이 IMF를 겪으며 일을 찾아 나서던 모습이 자넷에게서 - 복잡하고도 치열하던 우리의 모습을 만납니다. 야생을 살아가는 동물들처럼 많은 가정들이, 가족들은 집을 잃고 따로 살거나 아예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이후 가정의 모습은 많이 변화했고 우린 모두 보다 견고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제리와 자넷, 조의 모습은 힘겨운 시간을 지나온 우리와 꿋꿋하게 새롭게 삶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 속 현실은 힘겨운 상황과 달리 매우 고요합니다. 14살 아이의 조용하고 침착한 관조(觀照). 그 안에 단단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요란함은 없지만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다시 만난 가족이지만, 조의 이 물음에 대답할 어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자기 자신을 위해 셋이 같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조의 모습은 무척 의연하게 느껴집니다. 삶의 양면성이 아이를 빨리 자라게 하나 봅니다. 우리 삶엔 좋은 일과 힘든 일이 반복되지만 힘든 순간들이 훨씬 더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의 행복이 더욱 소중하고 희소한 가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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