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휘말린 과학,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펜하이머 Oppenheimer>,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이론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재 과학자 오펜하이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그것은 오히려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위협적인 것이 됩니다. 1942년 비밀 연구소 로스앨러모스 소장으로 임명된 그는, 미국 전역의 출중한 물리학자와 화학자를 모아 철저한 보안 속에서 두 개의 플루토늄 폭탄과 한 개의 우라늄 폭탄을 만듭니다. 두 플루토늄 폭탄 중 하나가 ‘트리니티(Trinity)’라는 암호명이 붙은 테스트에서 시범적으로 폭파됩니다. 첫 원자폭탄이 터지는 순간, 과학자들은 상상만 하던 현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큰 충격에 빠집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국가의 요구대로 원하는 강력한 폭탄을 만들어 전쟁을 끝낸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며 미국의 국가적 영웅이 됩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개입으로 일본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만든 원자폭탄이 국제적 교류 속에서 관리되길 바랐지만 그것은 환상이었습니다. 미국은 핵무기 독점을 원했고,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를 만들어 오펜하이머를 과학 자문을 맡는 위원회(General Advisory Committee)의 의장으로 임명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의장직을 이용해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수소폭탄 개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군부와 수소폭탄을 찬성하던 과학자들, 그리고 수소폭탄에 우호적인 트루먼 같은 정치인들의 연합에 의해서 묵살됩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고, 1952년에 미국은 첫 번째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합니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지 못하고 더 극악한 갈등에 소용되는 걸 바라보며, 과학자로서 오펜하이머는 심리적 갈등에 빠집니다. 과학자로서의 양심과 윤리적인 잘못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국가 정책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 출석하게 됩니다. 오펜하이머를 면직시키는 조건으로 원자력위원회의 의장이 된 스트라우스(Lewis Strauss)는 비공개 청문회를 통해 오펜하이머의 보안 갱신을 취소합니다. 자신의 진심과 결백을 밝힐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수락한 청문회였지만 모든 상황이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고, 오히려 그의 지난 삶이 낱낱이 드러나는 수모를 겪고 모든 공직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편향되지 않은 사고로 유연하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오펜하이머, 그는 누구와 전쟁 중이었을까요? 핵의 충돌이 가져올 연쇄반응이 결국은 세상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걸 더 이상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을까요?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를 겪으며 과학자인 오펜하이머는 정치에 휘말립니다. 연쇄반응으로 폭발하는 폭탄의 굉음과 빛, 마음 저 바닥에 소용돌이치는 과학자로서의 신념이나 윤리 도덕적 책임, 양심적 행동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내면의 갈등은 증폭됩니다. 과학이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역사적으로 천재 혹은 세상을 앞서 꿰뚫어 본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시대에 불행할까요? 아마도 시대를 앞선 생각과 행동들이 동시대에 맞지 않고 낯설기 때문이었겠지요. 세상이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다고 했던 낯선 발상처럼 말이죠.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업적을 평가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혹평과 비난에 시달리다가 사라져 갑니다. 가난하기까지 하다면 인생은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주변의 시기와 질투는 늘 따라다니고 선의마저 의심을 받으면 여지없이 마녀사냥에 내몰립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들,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대개가 곤혹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갑니다.
선의로 만들어진 발명품을 악의로 사용하는 후대인들의 잘못 때문에 천재성을 발휘한 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뻔뻔함은 평가를 빙자한 후대의 횡포일 뿐입니다. 한 편의 영화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고 마는 인간의 이기적인 극강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세상이 획기적인 변화를 맞는 시기엔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드물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시대적 성취를 이뤄낸 한 인간의 깊은 고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간혹 어리석은 방향으로 반복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