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마가 아니라 ~와 같이‘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매년 법정의무교육을 시행하도록 법률에 정하고 있습니다. 회사들은 매년 직장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법정 필수 교육>을 진행해야 합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노력의 일부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 개인정보보호 교육
*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면 일면 형식적인 교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요즘은 선천적 장애보다 사건사고에 의한 후천적 장애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살다가 어찌 될지 모르는 인생, 함께 살기 위한 고민은 같이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장애인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깨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지만 살제로 체감이 얼마나 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집단 따돌림으로 아직도 조직의 구성원이 죽는 세상입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여전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감히 엄두를 못 내는 세상입니다(아직까지도). 상급자의 일방적인 업무 지시나 배제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인지, 업무 룰의 하나인지조차 피해 당사자는 바로바로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만큼 치밀하게 오랜 기간 진행되는 측면이 있고 또 그만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이기도 합니다. 생계가 걸린 문제라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는 당사자는 오히려 상급자의 눈밖에 날까 더 움츠리기도 합니다.
*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많이 희화화되고 선택적으로 편리하게 사용된 지 오래입니다. 입에 걸거나 귀에 걸거나 거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되고 재단되곤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해결보다 2차 가해가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그나마 처리가 되는 것들은 회사에서 밖으로 문제가 커지기를 꺼려서 내부 단속으로 다독이는 정도가 대부분일 뿐.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겠냐며... 근본적인 예방은 아직 요원한 듯합니다.
* 개인정보보호 교육
개인정보는 어느 회사나 민감하고 법적인 처벌이 위 세 가지에 비해 분명한 편입니다. 잘잘못이 비교적 명확하고 처벌에 대한 기준 역시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개인정보의 오남용은 기록이 남기 때문에,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기업들도 법적 문제로 기업의 이미지 손상이 발생하는 걸 꺼려하기 때문에 위 세 가지에 비해 가장 신속하게 물리적, 기술적인 조치를 해서 해결합니다.
위 4가지 중 회사 밖으로 빠르게 직접적으로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위 내용은 모두에게 사회 구성원으로, 조직의 구성원으로 필요한 것들입니다. 헌데 실제 이 교육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구성원 개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교육 현실은 한심합니다. 각자 컴퓨터에서 로그인 방식으로 온라인 교육을 수강하면 연간 교육은 끝이 납니다. 문제는 업무 시간 중 일을 하면서 동영상은 묵음으로 혼자 돌아간다는 것! 아무도 보지 않고 심지어 이어폰조차 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저 역시 띄워놓은 여러 화면 중 하나일 뿐 자세히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도 내용이 궁금하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도 못합니다. 마음먹고 들어봐도 법적 용어와 어디에 어려움을 호소할 것인지에 대한 안내 정도입니다. 매년 사례를 접하면서 자료 자체가 업데이트가 되고는 있는지도 궁금합니다.(사실 법은 거의 바뀔 일이 없잖아요. 하지만 피해 사례들은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진화합니다. 신종 범죄가 일어나도 적용할 법이 마땅하지 않아 처벌이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법은 경우에 따라 일반인들에게 한없이 불편하고 또 불편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마치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담벼락에 깨진 유리를 촘촘히 박은 것처럼 접근이 어렵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지고 경로도 다양해져서 힘들고 억울한 것을 해결할 방법도 많아졌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아직 허울일 뿐입니다. 담당자를 배치하고 조사위를 구성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예전에는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 눈에 도드라지고 해결도 단순했습니다. 지금은 불편이 몇 번의 왜곡을 거치는 과정에서 본래적인 것에서 멀어지는 것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사회적 가스라이팅 앞에서 개인은 무력합니다. ‘일방적으로 꿇어야 하는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매번 법이란 장치는, 어려운 용어로 접근이 쉽지 않고 자신이 막상 피해를 당했을 때 어떤 내용과 관련이 있어 피해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또한, 퇴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용기를 내기엔 내부 절차는 너무도 형식적이라 허술하고 외부 절차는 어렵습니다. 이후 벌어질 피로감으로 용기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한 번의 결심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도 큽니다. 아직도 뭐든 사건 사고의 피해자는 항상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언제 해결이 될지 막연합니다. 지난한 시간을 외롭게 견디며( 아무리 사내에 잘 조직된 노조와 동료의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혼자 견뎌야 할 몫이 가장 큽니다.) 지내야 합니다.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매일매일의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명확히 바로 잘못이 밝혀지는 것이라면 불행 중 다행이겠습니다. 나머진 시간이 흐를수록 지옥과 가까워집니다.
생활 속 차별과 불편함을 형식이 아닌 내용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할지 현실적으로 고민을 하는 것이 온라인 교육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이번달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수강하며 직장 내 괴롭힘이 입증되기 위한 조건(위계관계, 구체적인 행위, 동료증언등)을 보며 일상적인 행위와 무엇이 다른지 당사자가 매번 증거 수집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런 증거 수집을 마음먹고 회사를 다닌다면 업무에 집중하긴 어려울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이미 그 회사 조직의 문화가 - 구성원 간 신뢰가 깨졌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신뢰하지 못하는 회사와 구성원 간의 피로한 관계, 회사도 한 사람의 인생도 행복할 리가 없습니다. 그만큼 조직 문화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린 모두 유형, 무형의 노력을 다합니다. 필수 교육 역시 실제 그 노력들이 생활 속에서 노력한 만큼 구체적으로 체감될 수 있는 기회로, 그런 사회로 나아갈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