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쓰이는 방식에 관하여

by gruwriting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뇌의 10%도 다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합니다. 난, 어디까지 어떻게 쓰고 있나 궁금해집니다. 뇌에 필요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나요? 아니면... 뇌로부터 끊임없는 무언가를 제공받고 있는 걸까요? 인간의 뇌에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미루고 미루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정독합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조금씩 읽는 독서 습관 탓에 한 가지 책을 끝까지 정독한다는 것은, 마음잡고 해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의외성을 항상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뇌>도 생각할 거리를 계속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인간 삶의 동기는 왜 필요할까


베르베르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였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무엇 때문에 산다고 말합니다. 부모, 자식, 자신의 성공, 명예, 부, 성취, 도덕적 책임감, 윤리의식,...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중 가장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은밀한 동기'는 무엇일까요?



핀처 박사와 컴퓨터의 세기적인 체스 경기에서 핀처 박사가 승리하는 장면은, 예전 이세돌 기사와 컴퓨터가 대국을 진행해서 인간 승리로 끝났었던 기사를 상기시킵니다. 기분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한 컴퓨터를 제치고 인간이 승리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란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AI가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고민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사실만을 다룰 것 같지만 - 기분도, 동기에도 휩쓸리지 않는 AI일 것 같지만 잘못 학습된 영향이 큰 탓일까요? 하루에도 수많은 가짜 영상과 뉴스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진위를 확인하느라 예전에 없던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뇌>에선, 세계적인 체스 경기에서 컴퓨터를 이긴 핀처 박사가 사망합니다. 타살을 의심하는 두 기자가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다만, 과학적 지식이 촘촘히 등장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사소한 생각들, 그 생각의 전환점들, 그 생각을 일으키는 심리적 사유들이 근본적인 '동기'에 집중이 됩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들의 행동들엔 수많은 정보가 포함되었다가 사라지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 당시의 표현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현상에 대한 해석이 그때그때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동기가 언제나 진정한 동기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인간 삶의 근본적인 도달점,


자신이 가진 줄도 모르다가 모든 것을 잃은 후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었던가 새삼 알게 됩니다. 건강을 잃은 후, 가족을 잃은 후, 직업을 잃은 후, 희망을 잃은 후,... 그렇습니다. 가끔씩은 어떤 소용돌이 속을 지나가듯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위험한 동기가 작용하면 공포와 불안, 두려움에서 시작된 끝없는 자기 불신이 확장되면서 세상이 온통 불의와 폭력, 죽음의 굴레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강화시켜서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자신의 삶이 고작 부정적인 동기에 의해 한계 지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냉동되지 않은 냉동고에서 춥다고 느끼며 냉동 컨테이너에 갇혀서 죽는 사람이 있듯 생각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반면, 우린 스스로 어떤 조건에 쉽게 반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이 이미 만들어진, 어떤 자극에 조건반응을 일으키도록 길들여졌다면 그 환경을 거꾸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는 걸 상기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수십 배 확장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은 자기 습관에 변화가 생기는 것보다 설령 위험할지라도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한다는 데 함정이 존재합니다.



인간 삶의 근본적인 도달점에 대한 질문 - 베르베르의 질문은 그래서 유효합니다.

산해진미, 눈부신 드레스를 입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 밝고 쾌활한 음악, 사회적 행위의 도달점이 고작 이런 것일까? 이런 것에 도달하고자 사람들은 그토록 마음을 끓이고 고생을 하는 것일까?


누구나 자신이 살아갈 하루하루 매순간의 삶을 걱정하지만, 매순간 자신의 뇌를 걱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뇌에서 떠오르는 것을 취할 뿐 뇌에 어떤 것을 제공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합니다. 노출된 환경의 모든 자극에서 조차 뇌를 닫지도, 뇌의 움직임을 멈추지도 못하면서 뇌를 방치합니다. 눈에 보이는 삶에 집착하느라 자신의 뇌에 주인이 될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의식적으로 모든 감각으로부터 뇌를 차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공복의 시간을 버텨내는 몸처럼 뇌에서 찌꺼기를 걸러내는 시간이 꼭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공복의 끝에서야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다시 채우듯 깨끗해진(정리된) 뇌에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 선택해서 공급해야 합니다. 감각을 차단한다 해도 뇌가 이미 경험한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순 없겠지만 그마저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찾기 위해 꼼짝 않고 닫힌 뇌를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을 견뎌내는 것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정의 최고 경험이 되겠지만 이후라야 뇌가 진정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단순한 호기심과 생각이 세상을 뒤집는 결과물로 세상에 등장하곤 합니다. 물리적인 폭탄이나 기계장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윤리와 도덕의 무너짐보다 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린, 전쟁을 통해 AI와 드론을 실험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행위들을 이끌어내는 모든 의도된 자극들은 무엇에 동기를 둔 것일까요?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살다 보면, 진짜가 아니더라도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로 그럴싸해 보이는 것만 좇으며 살다 죽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 컵을 넘치게 하듯 인간 의식의 긍정적인 확장이 세상을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충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전략처럼 움츠러들지만 않는다면, 생각이 행위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굳이 <금붕어의 기억력>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기억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금붕어는 장식용의 수중 식물을 발견하면 그것에 경탄을 하고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다음 유리벽에 닿을 때까지 헤엄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똑같은 수중 식물을 보고 다시 경탄한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되풀이된다.

결국 금붕어의 기억력이 약한 것은 미치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 <뇌>의 일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중 <금붕어의 기억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