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플레이보이의 어색한 로맨스

by gruwriting


해리 샌본(잭 니콜슨)은 20대 '영계'들만 사귀며 60 평생을 플레이보이로 삽니다. 미모의 경매사 마린(아만다 피트)과 둘만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마린 엄마의 해변 별장에 놀러 간 해리는 섹스를 하려던 결정적인 순간 심장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갑니다.






생 조(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주말을 보내려고 별장에 온 에리카(다이앤 키튼)는 엉겁결에 해리의 건강이 좋아질 때까지 그를 돌봐야 할 처지에 놓입니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이혼녀 에리카는 한창나이의 딸이 남성 우월적인 데다 나이도 훨씬 많은 남자와 사귀는 걸 못마땅해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낯선 ‘돌봄’을 위해 단둘이 며칠을 지내면서 동년배인 두 사람은 공감대를 넓혀가며 조금씩 친구가 되어갑니다.






한 번도 못 겪었던 일이 일어나면 그게 뭔지는 알아봐야 하잖아요?




해리의 담당 의사 줄리안(키아누 리브스), 젊고 능력 있는 의사 줄리안은 평소 좋아하던 극작가인 에리카를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20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에리카에게 푹 빠집니다. 저돌적인 줄리안의 구애에 에리카는 당황하지만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에리카 역시 줄리안 보다 해리에게 끌리는 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별장에 둘만 남은 해리와 에리카, 어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간 두 사람은 실로 오랜만에 몸과 마음을 충족시키는 아름다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유로운 독신 생활을 즐겨온 해리는 자신에게 '정조'를 기대하지 말 것을 선언하고, 에리카는 해리와 자신의 기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합니다. 갑작스러운 실연의 상처를 겪게 된 에리카는 고민 끝에 자신이 처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늘 나름대로의 진실을 말했어




나름 숱한 여자를 만나며 바람둥이로 60 평생을 보낸 인생 이건만, 정말 사랑에 빠져버린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는 해리의 어리숙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은 무척 신선합니다. 역시 잭 니콜슨만 가능할 법한 표정, 말투, 어눌함... 다양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해리는 묘하게도 줄리안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젊은 여자들과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았고 에리카는 심지어 자신이 평소에 거들떠도 안 보던 늙은 여자입니다. 게다가 아직 섹스까진 못했지만 그녀의 딸과 한창 사귀던 중이었기에 해리는 이런 어색한 자신의 감정이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해 보지 못해 남자 친구 되는 법을 모른다는 해리의 고백'에 에리카는 크게 실망하지만, 그것은 해리 '나름대로의 진심'이었습니다. 해리 자신도 평생 처음 대하는 감정의 혼란이 무척이나 감당하기 힘듭니다. 재력과 명예도 충분해 부러울 것 없는 사회적 위치에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해리는 그 어느 때보다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왁자지껄한 파티도 아름다운 풍경도,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스 영화는 적당한 가벼움과 유쾌함을 갖고 있지만, 뻔하면서도 나름의 진지한 물음을 던져 생각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영화인 듯합니다. 제목처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새삼 생각해 봅니다. 해리가, 그리고 에리카가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아깝지만 버려야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의 시련과 만남을 나름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에리카가 갑자기 울면서 울음소리만큼, 그 울음의 속도만큼 키보드를 두드리며 작품을 써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졸지에 무장해제된 상태로 웃음이 터져 눈물을 흘리며, 웃게 됩니다.




코믹한 다이안 키튼의 연기도 무척 싱그럽고 입체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해리는 에리카가 작품의 마지막에 자신을 죽였을지, 살려줬을지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잭 니콜슨은 개성이 강한 캐릭터에 어울려 맬로보다 스릴러, 액션에 어울리는 음침함과 사악함이 있다고 생각되는 배우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보면 그만의 능청맞고 맑은 모습들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새삼 연기의 폭이 굉장히 넓은 배우란 걸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됩니다.








이십여 년 전 영화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내용상으로는 아직도 여전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딸과 사귀던 나이 많은 남자 친구와 엄마의 로맨스, 지금 시점 한국에서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콩가루 집안 스토리에 가깝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화사하고 상큼한 이미지로 느껴집니다. 특히 노년인 두 사람이 해변을 산책하는 장면은 한동안 굉장히 상큼하고 예쁜 그림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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