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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Feb 21. 2021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 vs 스테레오 타입의 격려

어제보다 한 발 나아가는 오늘의 나를 만들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에게 일어난, 또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좀 더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려 한다. 그러다 보니 동시대를 살아온, 또 살아갈 여성들의 고민과 삶을 그들이 먼저 남겨둔 기록으로 만나는 중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미세스 찐'으로 더 알려져 있다는 파워블로거, 한혜진 작가의 책,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이다.

작가는 전업 주부 이전에 10년 넘게 방송 작가로 일했던 경력답게 호소력 짙은 필력으로 4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딸, 여자, 아내로서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들 중 가장 나를 각성시킨 내용은,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을 소개한 부분이다.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이란, 어떤 사람이 자신이 깊이 관여하고 있거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분야에서 도전을 받을 경우,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으로 낙인이 찍히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심리 기제(클로드 스틸, 사회심리학자, 1979)를 일컫는 말이다.

책에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 형성되어 있을 경우, 이를 벗어나는 행동을 꺼려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현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와 같은 예는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수학을 잘하는 여성에게 본인이 여자라는 사실을 환기시킨 후 시험을 치르면 수학 점수가 낮아졌다.

공부를 잘하는 흑인 아이에게 자신의 피부색을 의식하게 해도 시험 점수가 낮아졌다.(p.208, <마흔을 앓다가 나를 알았다>)

백인 골퍼들에게 '순수하게 타고난 운동 능력'을 보려고 한다고 말하자 시합 성적이 흑인 골퍼들보다 훨씬 저조했다.(민짱 블로그 발췌)

 

나의 행동이 어쩌면 많은 부분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에 의해 위축되어 나타난 결과일 수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하는 나가 우선 떠올랐다. 운전 경력과 운전 실력이 꼭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운전 습관이라면 오히려 오랜 운전 경력이 독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15년이 넘게 운전을 해 왔으니 나름 운전의 A to Z는 안다고 자부한다. 운전을 싫어하지 않는 편이고, 스스로 운전을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을 운전석에 태울 때는 갑자기 긴장감이 돈다고 해야 하나?


결혼 전, 처음 차를 몰기 시작했을 때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았었다. 연애 기간이라 대부분 내 뜻을 받아주고 웬만하면 존중해주던 사람이 운전 연수 때만큼은 진짜 운전 강사라도 되는 양 혹독하게 시키는 거였다. 하마터면 운전 연수받다가 헤어질 뻔했던 당시를 떠올리면 운전 연수는 이성 친구나 가족에게 받을 일은 아니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옆에 타면 이상하게 초보 운전자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는 반응 속도도 현저히 떨어지고 신호등에 대한 입력 처리도 평소와 달리 아둔하다.


며칠 전에도 남편을 태우고 매일 다니던 직장을 향하다가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뀐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놀란 남편이 "빨간불!" 하는 소리에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고 나도 순간 놀랐다.

이런 행동도 아마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이 아닌가 싶다.  운전을 감독하는 듯한 운전 권위자(?) 옆에서 나의 본래 운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위축된 내 마음의 결과일 것이다.



스테레오 타입의 격려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으로 인한 위축된 행동의 결과라면,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말이란 사고를 결정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에 대항하는 표현을 생각해 보았다. '스테레오 타입의 격려'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한다. '격려'라는 말이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줌'이라는 뜻이니,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스테레오 타입이라면 그것을 역이용하면 될 일이 아닌가.

 

내 경우, 길치에 방향치라는 치명적인 약점에 공감각이 떨어지는 결함이 있다. 그런 나를 알기에 운전 초기에 엄청나게 주차 연습을 했었다.

아파트에 주차를 할 때마다 넓은 주차 공간이 있어도 주차된 차와 차 사이에 주차하기 위한 반복연습을 참 많이 했었다. 주차를 잘 못한다고 계속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거나 넓은 장소만 골라 주차했다면 아무리 오랜 운전 경력을 가졌다고 해도 여전히 주차를 어려워했을 것이다.

요즘엔 후방 감지 센서 덕에 초보 운전자라도 그런 노력 없이 주차를 잘하는 걸 보면 참 부럽다.




나의 일의 영역에서 생기는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은 무엇인가.

학생, 학부모는 나이 든 교사보다는 젊은 교사를 선호한다.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나이 든 교사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고집? 권위? 상대적으로 원활할 것 같지 않은 소통 능력?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이 위협 요소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게는 학부모들이 간과하는 기대 요소가 있다. 기질이 다양한 여러 명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있는 학급을 운영하려면 젊은 교사의 패기와 열정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다. 물론 젊은 교사들은 내공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도 연륜은 경험에 의해 탄탄해지고 깊이가 더해가는 법이다.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은 인내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들을, 삶을 여유롭게 바라볼 줄 아는 눈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내게 있을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의 위협 요소를 스테레오 타입의 격려 요소로 치환시키려는 노력. 어제의 나에서 한 발 나아가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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