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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n 19. 2021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 <글쓰기의 최전선> 내용 중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은유 작가의 이야기는 치열하다. '왜'라는 물음이나 치열한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부감마저 들 수 있다.


동학년 선생님과 '전학공(전문적학습공동체)' 시간에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유 작가를 모르던 한 분이 다른 분의 권유에 따라 저자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었단다. 아니, 앞부분 읽다가 덮었단다. "잘난 척하는 것 같은 문장들"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단다.


그분이 어느 지점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알 것 같다.

권유했던 분은 한동안 읽기만 하다 최근 글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다. 권유받은 책을 읽다 초반에 질려버린 이는 드라마나 영화조차도 긴 호흡으로 감상하는 걸 싫어하는 이다. 20~30대 젊은 사람들처럼 중요한 장면을 유튜브 '짤'을 통해 섭렵하는 사람이라 화제성이 있는 정보는 물론이고 화제성 없는 것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소식통'이다. 대신 책 한 권 끝까지 읽는데 필요한 긴 호흡은 습관화되지 않은 이다.


저자의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저자가 한 문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작가임을 먼저 경험했기에 두 사람의 느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문장도 나아가지 않는, 고통스러운 쓰기를 경험해 본 사람에게는 저자의 주옥같은 문장들은 필사 공책을 빽빽하게 채우게 한다. 반면, 읽는 사람에게는 저자의 문장들 속의, 저자의 이름 같은 '은유'와 생활어와 조금 거리가 있는 어휘들은 방지턱 같을 테다. 무조건 내달리다가는 턱 막힌다. 조금은 느린 호흡이 저자의 생각을 오롯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무튼, 저자의 내레이션은 '나도 이런 멋진 문장을 구사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들의 보물창고다.


최근 글쓰기 관련 책을 몇 권 보면서 이미 글을 많이 써 본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지점들을 본다. 어휘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강조하는 점은, "짧고 간결하게 쓰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고 시절, 뭔가를 끄적거리던 문학소녀의 감수성이 풍부하던 때, 우연히 읽은 이청준 님의 에세이를 보고 너무나 좋았었다(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좋았던 부분은 쭉쭉 늘어지는 작가의 '만연체'였다. 길면서도 주술 관계가 딱딱 맞고 유려한 문장들이 너무 멋있었다. 그때는 그게 너무 좋아서 따라 쓰기 연습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글쓰기 관련 책에서 본 내용과 나의 경험이 일치하지 않는 거지? 의아했는데 이 책을 보고 해답을 얻었다.


저자는 본문 4장, '짧은 문장이 무조건 좋을까: 단문 쓰기'라는 글에서 글쓰기 초보 단계에서 주어와 동사를 가까이 위치시켜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격려하면서도, '앙상한' 문장에 대해 경고한다. 다음은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다.


"사유가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첫 문장에서 훅 떨어진 자신감을 두 번째 문장에서 걷어 올린다. 누군가의 마음에 '하나'를 남기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주워 담는다.


저자가 맺는 글에서 마지막에 밝힌 좋은 글쓰기에 대한 문장은, 짧은 문장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사유를 보여준다.

존재를 닦달하는 자본의 흐름에 익사당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기 위한 자기 돌봄의 방편이자, 사나운 미디어의 조명에서 소외된 내 삶 언저리를 돌아보고 자잘한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어 밝히는 윤리적 행위이자, 이야기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야기를 살려내고 기록하는 곡진한 예술적인 작업으로서의 글쓰기 - <글쓰기의 최전선> 맺는 글에서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뇌와 실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더불어 저자의 말처럼,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를 가져야겠다.

내 삶의 지분은 내가 넓혀가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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