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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ug 12. 2021

[책] 록산 게이, <헝거, 몸과 마음에 관한 고백>

몸이 아니라 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승리의 이야기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쁨', '스타일', '정상성'에 온 신경을 쓰게 만드는 세상에서 저자 어찌하여 이것들과 매우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자는 모름지기 세상에서 자리를 적게 차지해야 미덕인 세상에서 큰 키(190cm)와 큰(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사이즈로 세상을 살아내 온 여자 사람이 겪어야 했던, 혹은 당해야 했던 고통과 불편부당에 관한 이야기이자, 평범한(그렇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서슴없이 가하는 모욕과 원치 않는 친절을 가장한 불편한 관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여리고 상처 받은 존재가 자신의 몸을 끝없이 채워 거대한 성(castle)으로 만듦으로써 사람들로부터 굳건히 지켜내고 싶었던 것에 대한 서사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수 있는 방법, 절대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밥을 주는 방법, 상처를 멈추고자 하는 이 갈급함을 채울 방법을 찾아냈다. 나 자신을 더 크게 만들었다. 나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 p.82


2차 성징과 더불어 절대적으로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던 고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할 필요까지는 없었던 평범한(?) 몸을 가진(그냥 나는 이렇게 내 몸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큰 사이즈를 가진 외국인 여성의 삶의 불편함에 대해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자신이 당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해결책-비록 그것이 말도 안 되는 방법일지라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이 다. 누구나 타인에게(심지어는 가족에게도) 노출하고 싶지 않은 나를 지켜내기 위해 시도했던, 자기만의 어리석은 방식 하나쯤은 갖고 있을 테니까.

그때 다른 누군가가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야. 그것은 너를 더 해할 뿐이야.라고 조언해봤자 그건 상처에서 벗어나 있는 제삼자, 그 고통에 직면하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기 위안일 뿐이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진심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하자 몸무게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아마 18킬로그램이나 빠졌을 것이다. (중략) 그러다 다시 학교로 가면 친구들은 내 변화한 몸을 알아보고 칭찬 세례를 쏟아부은 다음에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그때 처음으로 살이 빠진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날씬하다는 건 사교 시장에서 중요한 통화 가치가 된다는 점을 체험했다. - p.88


날씬한 여성이 사교 시장에서 중요한 통화 가치가 된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은 여자의 외모에 집착하는 남자들보다 오히려 그런 문화 속에서 길들여져 온 여자들에게 더 잘 먹힌다. 끊임없이 넘쳐나는 다이어트 제품과 미용 제품들은 어느 시대, 어느 미디어에서도 통용되는 진리(?)이므로 한국의 화장품과 성형외과를 찾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많은 거겠지.


그동안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스스로를 위한 최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여성들에게 설파해왔던 오프라 윈프리조차 2015년 4000만 달러를 투자해 '웨이트 워처스(Weight Watchers, 미국의 다이어트 제품과 프로그램 서비스 회사)'의 주식 10퍼센트를 사들이고 그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올해 당신 인생 최고의 몸매를 만들어 보세요"라는 브랜드 광고 문구를 설파하고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사실이다.

이 60대의 성공한 여인이 보내는 메시지, 즉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성공한 여성이라도 날씬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는 불편하다. 언제까지 여성의 몸은 거대한 자본 시장에서 언제나 닳지 않는 '시드 머니' 되어야 하는 것인가.


여성으로서, 뚱뚱한 여성으로서 나는 원래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 안 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로서의 나는 내가 자리를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 p.195


배운 것과 실제 삶의 괴리는 얼마나 큰가.

직업의 귀천은 없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거라 배웠다. 한 인간의 자리를 다른 이들이 규정할 수 없을뿐더러 실제로 세상의 많은 자리는 여성의 몫이 아니었다. 배운 것과 다른 현실은 한, 두 가지가 아니건만 새로 마주 때마다 당황스럽다.


한 여성으로서 세상에 내어 놓기 어려웠을 그녀의 이야기가 20여 년 전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현재도 어디선가 반복되는 일이라는 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지만 저자 록산 게이가 자신의 몸과 점차 화해하는 과정을 배워나가는 점은 반갑다.


"행복의 기준은 몸무게가 아니라 몸에 더 편안해하는 감정"이라는 저자의 말을 나의 딸에게도 전해줘야겠다. 너무나 많은 소녀와 여인들이 몸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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