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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n 14. 2022

친구들의 웃는 모습이 뭉클한 이유


핸드폰 앨범 속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오래 내 눈을 붙드는 사진들이 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내 아이들이 해맑은 웃음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예닐곱 살 무렵의 사진이나, 몇 년 지난 것 같지 않은데도 세월의 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친정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이 그렇다.


요즘 내 눈길을 오래 붙드는 것은 50 언저리 친구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다.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낸 웃음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기분이 좋아서 순수하게 기쁜 감정을 드러내며 웃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왠지 모르게 뭉클해진다. 특히, 평소 얼굴에 희로애락 잘 드러지 않는 친구들의 환한 웃음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하디 귀한 것이다. 싱그럽고 맑은 웃음이 젊은 여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난 사진 속 친구들의 웃는 모습에서 발견한다.


어쩌다 보니 나와 가까운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동생이 둘씩 있는 '첫째' 딸들이다. 각자가 처 가정환경은 달랐겠지만, 첫 아이를 키우며 시행착오했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부단히 고군분투했을 비슷한 성장의 역사를 가졌다. 그래서인지 우린 서로가 놓인 상황에 척하면 척이다. 각각의 상황에서 친구가 느꼈을 감정에 대한 공감력은 지구 최강일 것이다. 첫째 딸들이 서로에게 보이는 유난한 공감과 연대는 비단 내 친구들만의 사적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맏딸들이었던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와 비스 엔트호번은 공동 집필한 책,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에서 첫째 딸들은 친부모에게서 나온 다른 형제자매들보다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부모의 첫째 딸들과 더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고 말한다.

리세터와 비스는 집안의 첫째, 그중에서도 특히 첫째 딸이라는 위치에 주목하여 연구를 진행했고, 방대한 근거 자료를 모아 범주화하고 자료를 통해 발견하게 된 결과로 첫째 딸들 간의 유사점을 정리했다(책에는 다른 성장 배경과 문화 속에서 자라난 첫째 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경험을 모아 발견된 공통의 유형들이 소개되어 있다).


연구 결과 정리된 첫째 딸들의 유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장과정의 유사성.

대부분의 가정에서 첫째 아이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첫째 아이는 부모에게 큰 기대와 행복을 주며 자라나게 된다. 부모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첫째, 특히 맏딸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대에 찬 어른들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첫째 딸은 대게 높은 어휘력을 구사하게 되어 말을 잘하는 아이가 된다고 한다(어렸을 땐 그랬던 것 같기도...).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생각 속에 살아오다 동생의 출생으로 삶의 첫 번째 시련을 겪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부모들도 첫 아이에 대해서는 시행착오일 수밖에 없지만 첫 아이를 기르는 2~3년 동안(최소 1년 동안) 어느 정도 성숙한 부모의 자질을 갖춘다. 그러면서 사랑하지만 엄격, 단호했던 자녀 양육 방식에도 여유가 생기게 된다. 이런 부모의 양육 태도는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와는 달리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모든 게 처음이었던 첫 아이와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본능적인 새끼 보호 본능으로 첫 아이가 새로운 것을 탐험하는 것을 막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할 때마다 왜 그렇게 격렬한(?) 투쟁의 역사를 겪어야 했는지 비로소 명징해진다.


둘째, 성격의 유사성.

맏딸들은 책임감, 진지함, 따뜻함 등의 성격을 닮았다. 맏딸들은 동생들보다 더 나은 지위를 점하기 위해 동생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질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는데 그 점이 성실성과 책임감을 강화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러한 자질은 맏딸이 효율적으로 일하게 하여 실제로 사회적으로도 유능한 일원이 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힘든 엄마를 도와주어야 하는 책임감이 발달하며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주변인들을 보살피다 정작 자신을 보살피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성향도 닮았다고 한다.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느낌이다. 


진지한 성격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어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바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이 맏딸이 가진 성향 중 하나이다. 이러한 성격은 직업 선택에 있어서도 영향을 주게 되어 십중팔구 진지한 일에 종사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일탈을 도모하면 왜 항상 '진지한' 결말을 맞게 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셋째, 사람을 사귀는 방식의 유사성. 

주로 맏딸들끼리 잘 어울리게 되나, 막내딸들의 자유로운 성향은 첫째 딸들에게 좀 더 생각의 자유로움을 준다고 한다. 동성 친구를 사귀는 방식과는 달리 이성 친구에 있어서는 책임감과 진지함을 공유하는 맏이들끼리보다는 자유로운 성향의 막내와의 만남에 더 호감을 드러내게 된다. 이성 간에는 같으면서도 다른 점에 끌리게 되어 첫째 딸은 막내아들과 만나 커플을 이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단다. 막내아들과 만나 발등을 찍고 사는 첫째 딸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위안이 될 줄이야.



책에서 저자들이 세상의 첫째 딸들에게 들려주는 당부의 말을 내 친구들에게 모아 들려주고 싶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그만두라고. 다른 사람, 형제자매들에게 타인을 보살피면서 느끼는 멋진 기분을 빼앗지 말라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마냥 끄떡이지만은 말라고. 한계를 정하고 그 한계에 도달하면 감추지 말라고. 실수할 수 있으니 여유로움을 가지라고, 삶을 조금 덜 진지하게 살라고.



50 평생 조여온 나사를 조금 느슨하게 풀고 조금은 덜 진지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고 환하게 웃는 모습. 그래서 난 친구들의 웃는 모습에 뭉클해지나 보다.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by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와 비스 엔트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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