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4번으로 생긴 재주

일상의 변화무쌍함은 생존본능을 일깨운다

by 정혜영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자녀가 도전을 꺼려한다고 고민하셨다. 내 아이들도 초등 고학년 이후부터는 학교에서 하는 각종 대회나 임원 선거에 아무 관심을 안 보이거나 혹여 엄마나 아빠가 참가를 독려하기라도 할라치면 경기를 하길래, 경쟁에 취약한 아이들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다른 집 아이도 그런다니 한편 위안도 되고 왜 그러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저 단순히 타고난 성품인 건지,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큰 아이가 초등 3학년, 둘째가 1학년을 마칠 무렵,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위급상황 시 도움을 받을만한 친족이 가까이 없어서 내가 데리고 다니다 보니 학군 외의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집 근처에 어울릴만한 친구가 없었다. "집 가까이에 사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라는 딸아이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첫 아이가 4학년이 되기 전에 옮겨주는 것이 본격적으로 고학년에 진입하기 전, 친구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졸업하면 모교로 기억될 초등학교에 대해 추억의 시간을 2년 정도는 벌어주어야겠다는 판단도 컸다.


친정 엄마는 어린아이들이 학교를 옮기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들 수 있다며 아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전학한 후에도 잘 적응하는지 자꾸 물어보셨다. 전학을 한 번 한 것뿐인데도 그렇게 걱정이 되시다니. 친정 엄마는 당신 자식들이 얼마나 여러 번 학교를 옮겨 다녔는지 다 잊으셨나 보다.


내가 초등학교 때, 나에겐 선택권도 거부권도 없는 전학을 4번 정도 했다.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을 떠난다는 사실은 두렵기도, 불안하기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전학이 꼭 걱정스러운 결과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새 선생님, 새 학급 친구들)은 내 안의 강한 생존본능 같은 '동물적인 감각'을 일깨우곤 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존재가 묻히지 않고 드러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미 견고하게 형성된 학급 내 무리들의 카르텔을 뚫고 진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로 새로 전학을 가면 더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고 더 유심히 사람들을 살폈다.


'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저를 좀 봐주세요!'


하려면 수업 시간엔 더 집중해야 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흔들림 속에서 나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기 전까지, 정확히 말하면 본격적인 직장인이 되고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세상사를 조금은 더 겪어낸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를 '적극적인' 사람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내 아이들을 보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학급 임원 선거 시기에 구슬려서 권유해도 싫다 하고, 도움이 될만한 학교 특정 부서에 지원을 독려해도 거부하는 아이를 보며, "제가 해 보겠습니다!" 유전자를 물려준 줄 알았던 것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그런 유전자가 있기는 했던 것인지,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잦은 전학으로 안전한 터전을 담보하기 어려웠던 상황은, 안에 조용히 감추어 두었다가는 '나'라는 존재감이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래 없거나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특성들, '자신감', '적극성', '용기', '도전정신' 같은 자질들을 필사적으로 끌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내 안의 강한 생존본능을 자극하고 갖고 있지 않거나 적게 가진 품성들을 더 키워주었던 것은 아닐지.


또 잦은 환경의 변화는 내 안에 일종의 '환경 변화 면역 시스템'을 장착해 주었다. 한 번 생긴 면역력은 평생 한 번만 맞으면 걸리지 않는 전염병 예방 주사처럼 다양한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도왔다.

그래서인지, 나는 매우 보수적인 입맛이나 일상 용품 선호도를 가졌으면서도 아예 다른 문화권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는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유년기에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가 없이 살아온 남편은 새로운 음식의 맛을 보거나 새 물건을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는 반면, 안 가본 곳을 여행하거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매우 꺼려한다. 이를 보면, 환경과 우리의 인식 간에는 분명한 상관성이 있어 보인다.


다시 내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게 주어졌던 모험의 기회가 있었을까. 학교에서 임원 선거에 나가는 것이나 대회에 나가는 일 등은 당선되거나 입상하지 않으면 왠지 성공하지 못한 것만 같은 경험들이다. 성공과 실패로 결과지어지는 경험이 아니라 도전만으로도 즐겁고 성취감을 주는 경험. 내 아이들이 도전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경험들을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얼마나 독려했던가.


요즘 아이들은 내가 어릴 때 겪었던 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은 세상까지 본다. 초등 2학년인 내 반 아이들은 방학만 지나면 비행기를 타고 다녀온 해외여행 이야기에 열을 올리곤 했었다.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접해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반면, 세대 초등(국민) 학생이었을 때, 학교에 다녀오면 친구들과 동네 산으로, 집 앞 냇가로 놀러 다니며 세상과 만나던 천둥벌거숭이들이었다. 그저 신나서 놀기만 했다고 생각했던 그 작은 세상에는 자연의 변화가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가 있었으며, 혼자라면 주저했을 크고 작은 모험들을 함께할 '무리'가 있었다.


어쩌면 너무 안락한 환경이, 아파트 단지라는 온실 속에서 자연스러운 세상의 변화를 자주 직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상이, 언제나 아이보다 한 발 앞서 가거나 아이의 등 뒤에 항상 눈을 붙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모가, 결과만으로 도전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들이, 우리 아이들에게서 모험과 도전 정신을 빼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뷰카(VUCA)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뷰카(VUCA): Volatile(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exity(복잡함), Ambiguity(모호성)




중3 딸이 커서도 엄마랑 살겠다고 한다.

아서라, 고 했다.


"20살이 되면 너는 독립해서 나가 살아."


했더니 딸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 반대여서 그런다. 사랑하니까 네가 스스로 굳건히 두 발로 살아갈 세상에 어서 너를 내보내려는 것이다. 더 일찍 내어 보내고 싶지만, 아직은 서툴기만 한 너희들이라, 네가 맞설 상대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라 너희가 좀 더 단단해진 후에 보내려고 한다.


이런 것도 기우란 걸 안다. 너희들은 실패와 좌절의 쓴 고배를 마시고 그것을 거름 삼아 더 단단해질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일찍 떼어내지 못하는 엄마는 여전히 미련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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