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거나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해결하나?
관련된 어릴 적 기억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객관화하여 들여다보게 한다. 물론 기억이라는 것은 퇴색되거나 윤색, 왜곡되기도 하니 전적으로 믿을만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와 관련하여 초등(국민) 학교 시절의 두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크고 작은 다른 '맞섬'들도 있었겠지만 이 두 가지가 '어린 나'에게는 가장 큰 '사건'으로 각인되어 있나 보다.
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H는 같은 반 남자아이이자 우리 집이 세 들어 살고 있던 집의 주인집 아들이었다. 내가 살던 집은 2층짜리 양옥집이었는데 2층은 집주인 가족이 살고 아래층은 두 칸으로 분할하여 모두 세를 내어주고 있었다. 두 칸 중 한 칸이 우리 집이었다. 주인집 아들과 같은 반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큰 우연이자 인연(악연인가?)이었을 텐데. 당시 그런 역학관계까지 알아채기에는 어렸다는 사실에 감사라도 해야 하나.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집이 같으니 매일 같은 방향으로 왔을 텐데 다른 날들은 어떻게 왔었는지 기억에 없다. 오직 그날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날, 함께 돌아오던 H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H는 당시에 꽤 귀한 물건이었음이 분명했을 두 발 자전거를 타고서 내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별명, '안경잽이(잡이)'라고 자꾸 놀려대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많아서 초등 1, 2학년 교실에도 안경 쓴 학생들이 많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3학년이 되도록 안경 쓴 학생은 나 혼자 뿐이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에 더 민감하다는데, 안경을 쓴 유일한 학생인 나 스스로가 꽤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여자 아이들을 어떻게든 놀려주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남자아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었을 터였다.
"안경잽이(잡이)~ 안경잽이~"
H는 웃음기 가득한 천진한 얼굴로 그렇게 놀려대고 있었다. 그가 다른 날도 그렇게 놀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그날만 어제 본 영상처럼 또렷하니까. 내가 얼굴 가득 인상을 쓰며 그만하라고 소리칠 동안 H는 싫어하는 나의 반응을 보며 더 신났을 터였다. 잠시 후 일어날 봉변은 예상치 못하고.
내가 세 번째 "하지 말라"는 의사를 명백히 했음에도 또 "안경잽이~" 하던 H의 한쪽 뺨에 내 오른손을 철썩, 날리자 순간, H는 잠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잘 안 되는 듯 보였다. 자전거에 올라앉아서 한껏 높아져 있었을 그의 키높이 때문에 상대에게 자신의 뺨이 그렇게 쉽게 노출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또렷하게 현실을 인식한 H의 반응은,
"우왕~!"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울면서 자전거 속도를 높여 집으로 먼저 내달으며 H는 내게 어떤 악담이라도 날렸을까? 자기 엄마한테 일러준다고 했었을까? 두고 보자고 했었을까?
H의 고자질로 세 들어 살던 우리 엄마가 주인집 아주머니 눈치를 볼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내게 따로 말씀하신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H는 여자 아이를 놀리다 뺨 맞은 일을 차마 말하기 창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그가 나를 놀린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그날 이후 성깔 사나운(H는 이렇게 느꼈겠지) 여자아이를 잘못 건드렸다 봉변을 당할 일은 다신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하나는, 6학년 때 일이었다.
같은 반 여자 친구 S가 내게 와서 편지를 하나 보여주었다. 편지에는,
'00 이가 너하고 놀지 말래.'
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다른 여자 친구, K가 나에 대해 쓴 '모함성' 내용이었다.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었지만 내게 더 충격이었던 것은, 어떻게 '전혀 없었던 일을 마치 정말 있었던 일처럼 만들어낼 수 있는가'였다. 심지어 K는 '우린 삼총사'라고 항상 나와 같이 다니던 3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상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K는 나의 어떤 점이 싫었을 수도 있겠고, 시기, 질투 어린 감정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여자 친구들이란 늘상 이러저러한 감정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깊어지는 관계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없던 일을 만들어내어 모함하려고까지 하는 그녀의 마음까지 널리 헤아릴 만큼 나의 도량은 크지 않았다. 진실 여부를 가려야 하는 문제는 도량의 크기와는 무관한 일이기도 하다. 일단 나를 믿고 편지를 보여준 S에게는 고마움을 표시한 후, 편지에 대해 K와 이야기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래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모른 척 눈 감으면 없는 일처럼 일상은 유지될지도 몰랐다. 그동안 잘 지내온 삼총사의 관계를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없었던 일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일은 명백히 옳지 않은 일이니까.
K에게 조용히 다가가 학교 건물 어디에서 단 둘이 만나자고 했다. 일을 크게 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관계만 바로 잡고 싶었다. 약속한 장소에 나온 K는 우물쭈물했다. 당연했다. 옳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의 행동은 당당하지 않은 법이니까(그래야 마땅한 거 아닌가). 내가 K에게 건넨 말은 다음 두 가지였다.
"이 편지, 네가 쓴 게 맞아?"
"할 말이 있으면 뒤에서 하지 말고 나에게 직접 해라."
그 뒤, 우리 삼총사의 관계는 어찌 되었을까? 얼마 전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보니 삼총사였던 K와 나, 다른 친구 셋이 나란히 서서 웃으며 사진에 찍혀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 관계는 유지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번 균열이 난 틈새에는 미세한 바람이 숭숭 들어왔을 것이다. 어릴 적 가까웠던 친구들 소식이 SNS를 타고 봄바람처럼 넘나들어도 K의 소식은 내게 와 닿지 않는 것을 보면.
반세기 가까이 살다 보니 세상엔 참 가지각색의 '뻔뻔함'과 마주할 일이 많더라.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내 안에 그런 속성이 커서 더 잘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뻔뻔함이란 녀석은 진의 파악이 쉽사리 되지 않는 논리로 외피를 무장하며 더 몸통을 불려 가는 듯 보인다.
소시민들에게는 범죄에 가까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심지어 '온당'한 일이 되는 현실을 만날 때면 좀 많이 힘들어진다. 가끔은 그 뻔뻔함을 조금 나누어 가질 수만 있다면 모두가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려나, 싶기도 하다.
뺨 맞은 일이 부아가 났을 테지만(분명 때린 나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긴 하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함묵한 3학년 때의 H, 자신이 쓴 거짓 편지에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던 K. 오늘은 너희들이 그립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을 아는 너희들의 마음이 참 보고프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용기가 되어야 하는 세상은 참 이물스럽다.
p.s. 아이들이 싫은 일을 마주할 때 스스로 당당히 맞서도록 격려하는 글을 쓴다는 게 쓰다 보니 또 딴 길로 샜다.(이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ㅠ) 다음엔 글눈 잘 비벼가며 바른 길 잘 찾아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