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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pr 24. 2021

아들이 그린 '큰' 그림

'시도'와 '연습'은 아이에게 자존감을 키울 기회이다


아들이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수업을 받는 날엔 어쩔 수 없이 조퇴를 해야 했다. 집에서 1시간 못되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금요일 오후는 주말권 시작이어서 가는 길 내내 끊임없는 차량들로 도로 빈틈이 없었다.

특히 서초구내로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구렁이의 느릿한 움직임과도 같은 정체 구간이 끝도 없이 이어져 목표지  10km '마의 구간'이 된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이 넘게 걸리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시간매번 견뎌다.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가다보면 50분 거리가 2시간 가까이 걸리고 만다. '불금'은 언감생심. 내게 금요일은 식 일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공짜 부모 노릇은 없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날이다.


언젠가 서울 사는 동료에게 서초민들은 도로가 상시 정체되는 곳에 사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정체 중 차량들은 외부 차량들이지 들 것 아닐 거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웃펐다. 맞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동네 마실길을 굳이 복잡한 자차로 이동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강남'에 살고 싶어 하는 인가.


아이 3학년 때부터 3년 여, 주 1회 예술의 전당을 오가면서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의 운전 실력굉장히 늘었을 것이다.  처음 서울 운전길을 나섰을 때 까마득한 8차선 대로와 어머어마한 차량들로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 때를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복잡한 서울 운전길을 그렇게 자주  리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여전히 정체 구간을 뚫고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하는 운전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그런데 코로나로 미뤄졌던 작년 수업이 올해로 연기되어 재개되자 아들 녀석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 보겠다고 했다. 대중 교통로를 알아보니 아이 혼자 다녀오기에 좀 무리다, 싶을 만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복잡한 노선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시도해 보겠다고 했었는데 선뜻 그리하라고 못했던 것은, 아이를 미덥게 여기지 못하는 엄마의 걱정이 첫 번째 요인이었다. 두 번째 요인은 그리하려면 일단 첫 대중교통행을 함께하며 가르쳐 주어야 할 텐데,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일은 언제나 피곤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래저래 내키지 않아 보류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들이 다시 '대중교통 이용'을 언급한 것은, 토요일도 미술 수업이 진행면서부터였다. 뭔가 혼자 해 보 싶었던 것인지, 함께 미술 수업을 듣다 친해진 친구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가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 건지, 항상 엄마가 대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건지. 금요일 엄마의 피곤에 쩐 모습도 부담인데, 토요일 아빠까지 가담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분명한 것은, 녀석이 혼자 가는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싶어 한다는 방향성이었다.


그래서 오늘 처음으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불필요하게 시간 낭비가 많은 구간을 없애기 위해 지하철 역까지 아빠가 태워다 주었다. 청소년용 교통 카드를 사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스스로 교통 카드를 찍고 지하철을 타는 일을 거의 처음 해 보는 아들 녀석은 교통 카드를 찍는 위치조차도 조심스러워했다. 교통 카드를 찍으면 통로 차단기가 자동으로 개폐될 줄 알지 기다리고 있길래  밀고 가라고 했더그제야 움직였다. 아이가 5학년 때 함께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새 잊어버렸나 보다. 어느 방향에서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벤치에 앉아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아들 녀석이,


"엄마, 이제 나 할머니랑 외할머니 댁에 갈 때도 혼자 갈게."


하는 것이았다.


"그래? 엄마, 아빠 미울 때 혼자 할머니 집 갈 거야?"


가볍게 농담을 던졌는데 녀석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이제 혼자 갈 수 있겠다고 한 번 더 다짐하듯 말하는 걸 보면 녀석이 예술의 전당을 혼자 가겠다고 할 때부터 마음속에는 뭔가 '큰' 그림이 있었나 보다.


겁보 만보였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훌쩍 컸을까? 며칠 전에 학교로 찾아오는 병원 검진을 받 날, 녀석은 내가 퇴근 후에 만나 해도 좋을 얘기를 굳이 전화로 먼저 알려왔다. 키를 쟀는데 몇 cm가 됐다고. 몇 달 전만 해도 내 눈높이와 비슷하던 녀석의 눈이 좀 위쪽으로 향한다 더니, 몇 달만에 내 키를 훌쩍 넘어섰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더 이상 매번 엄마, 아빠가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자각이라도 온 것일까. 그래서 이 복잡하고 먼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오가겠다고  것일까. 이것을 시작으로 하고 싶은 일은 혼자 힘으로  봐야겠다는 작심이라도 선 것일까.


정작 지하철 타고 가는 동안 녀석의 행동은 엄마 손 잡고 따라 나온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날 충전을 했는데 제대로 안 된 것 같다는 배터리 꺼진 핸드폰 만지작 거리며 멀뚱멀뚱 심심해하다  엄마 노트북을 엄마  핫스팟으로 연결하고는 기뻐하던 모습이란. 가는 내내 신나게 게임에 빠져 거쳐가는 지하철역 이름은 대충대충.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녀석 혼자 가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또 앞다.


그러다 아들 나이었을 때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일 나가신 엄마를 대신해 된장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먹던 나를. 엄마가 안 계신 동안 동생들이 숙제를 다 했는지 점검하고 양말을 물에 불려 손으로 비벼 빨던 나를.

어디를 보더라도 나때보다 더 여유로운 조건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는 아이를 못 놓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학교에서는 초등 2학년 아이들에게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면서. 스스로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고 독려하던 '확신에 찬 교사'는 어디로 가고 중학생이나 된 아들 녀석 하나 혼자 내 보내지 못하는 '고작 이 정도 엄마' 말인가.


뭘 해도 사랑스러우나 뭘 해도 미덥지는 않았던 둘째이자 막내 녀석. 그런 녀석에게 '스스로 해 보는 시도''연습'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오롯이 혼자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 내었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스스로에게 강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각종 난관은 아이에게 문제를 만났을 때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배움의 기회를 차단하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 오늘도 뒤늦은 후회와 다짐을 하는 미숙한 엄마에게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제 나 혼자 할 수 있겠어!"


그래, 너는 벌써 오래전에 혼자 할 수 있었을 아이 었다. 그걸 이제야 아는구나. 이 어리석은 엄마는.

오늘은 손가락 움직임을 그렸구나. 삶은 가위, 바위, 보, 저 언저리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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