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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Dec 14. 2020

중2 딸이 내린 '하나님'에 대한 평가

** 본 내용은 특정 종교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의도 없이 한 가족이 순수하게 나눈 대화의 글을 옮긴 글임을 명시합니다.**


"성탄절은 석가가 태어난 날이야?"

이 황당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의 난데없는 '종교' 이야기는. 주말,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는 식탁에서 중학교 2학년인(초등학교 2학년이 아니라) 딸이  갑자기 이렇게 물은 것이다.

참고로 딸은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돼)며, 얼마 전 끝난 기말고사에서 B를 받은 사회 교과를 제외하면 올 A를 받았으니 과히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다닐 때 돌봄 교실에 있을 때에도 별명이 '책 많이 읽는 언니'였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상한 일본 추리 소설만 읽어대는 게 엄마 입장에서는 영 마뜩잖으나, 그래도 뭔가를 읽는다는 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으므로 두고 보고만 있긴 하다. 중학교 들어가서 2년 동안 받아온 상장이 모두 글짓기 관련된 상장이니 생각을 글로 표현해내는 사고력이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한 마디로, 딸이 바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성탄절이 석가가 태어난 날이냐, 니 식탁에서 점심을 같이 먹던 엄마, 아빠는 먹던 밥을 동시에 뿜을 뻔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더란 말인가. '성탄절'이라는 말이 '석가탄신일'이라는 용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순간 착각한 것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성탄절이 누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날이란 건 알겠는데 누가 태어난 날인지를 정말 몰라서 물어본 말이었다.


엄마, 아빠, 딸, 아들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 가족은 따로 가진 종교가 없다. 그게 문제였더란 말인가. 내가 어렸을 때는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동네 교회에서 간식도 나눠주고 재미있는 행사도 많이 해서 친구 따라 몇 번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집 아이들은 그럴 기회를 가져 본 적이 없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학교 2학년이나 된 청소년이 성탄절이 석가가 태어난 날이냐고 묻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시작되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종교 이야기. 엄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간단히 기독교와 불교를 구분해 주었는데, 군대에서 <싯다르타>를 읽었다던 아빠는 딸이 언급한 '석가'와 '불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먼저 석가의 태생과 그를 통해 구현된 종교적인 사상, 열반, 윤회의 이야기를 쭉 들려주더니, 다음으로 기독교 사상과 하나님, 예수님, 목사와 신부 등의 용어에 대해서까지. 딸이 어디 딴 데 가서 또 그런 질문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지, 아빠의 설명은 사뭇 진지하고 꽤 박학다식한 내용이어서 보는 엄마도 내심 흐뭇한 정경이었다.


아빠의 이야기를 다 들은 딸은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그럼, 모든 종교에서 각자 믿는 신들이 다른데, 그 신들 중에 누가 가장 센 거야?"


신이라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아이이니, 이런 질문이 딸이 가질만한 궁금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태 성의껏, 진지하게 임했던 아빠는 이 두 번째 황당한 질문에는 진지하게 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당연히 하나님이 젤 세지."


라고 너무 쉽게 답하는 것을 보니. 딸은 당연히 왜냐고 물었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안 믿으면 다 지옥 간다고 하잖아. 다른 거 믿으면 이단이고, 라는 아빠의 말에,


"아니, 그럼 하나님은 다른 건 절대 믿으면 안 되고 자기만 믿어야 한다는 거야?"


하는 거다. 그러더니,


"야~ 하나님 되게 쪼잔하네~"


하는 것이다. 앗, 하나님… 쪼잔… 이라니. 이런 불경스러울 데가 있나. 엄마, 아빠는 딸의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평가에 빵 터지고 말았다.




유한하고 미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마음을 기대고 평안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종교가 아니던가. 사람마다 믿는 종교가 다를 테지만, 모든 신들이 공통적으로 설파하신 말씀은, 아마도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일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미워하고 배척하라고 가르치는 '쪼잔하신' 신은 없으실 테니, 우리 신들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먼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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