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노랑 우산'이 된다는 것

by 정혜영


밤에 잠들기 전 하는 일 중 하나가 다음날 날씨를 확인하고 날씨에 맞는 옷을 미리 골라 놓는 일이다. 옷을 전날부터 골라 놓다니, 꽤나 패셔니스타인가 보다 싶겠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느 집이나 일하는 엄마에겐 일상이겠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스스로 옷을 챙겨 입지 못할 정도로 어렸을 때) 남편이 먼저 출근한 뒤로 아이 둘을 씻기고 아침을 먹인 후 옷을 입히는 전쟁을 매일 치러야 했다. 그 소동 뒤, 나의 출근복을 고를라치면 바쁜 출근 시간은 속옷 위에 코트만 걸친대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서 전날 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나면 다음날 아이들을 입힐 상, 하의와 양말까지 몸만 쏙 들어가면 되도록 맞춰놓는 일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과 중 하나였다. 덩달아 내 옷까지 준비해 두던 버릇은 그때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여전히 바쁜 출근 시간에 매우 유용한 습관으로 남아있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우산까지 잘 챙겨 나온 아침의 행보는 쓰담쓰담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일분, 일초가 아쉬운 출근길은 어김없이 조급증을 유발했다. 숨 한 번 돌렸더라면 조수석에 비스듬히 놓아둔 우산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출근 시간엔 차를 주차시키자마자 튀어나가기 바쁘니 우산은 안중에도 없어졌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나보다 먼저 퇴근하시던 옆 반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며,


"비 와요."


했을 때도 실감하지 못했다. 무리를 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교실 문을 나섰을 때에야 복도 창 밖으로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행인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공공재 중 '학교'가 제일 부실한 건물이라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BTL(Build-Transfer-Lease, 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정부가 시설임대료를 지불하는 방식)로 지어진 건물이라 역시 다른지 철철 내리는 빗소리는 창문을 열기 전까진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때서야 아침에 집에서 잘 챙겨 나왔던 우산을 차에 고이 두고 내렸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아오, 이럴 때 쓰라고 욕이 생겨난 게 틀림없었다. 학생들이 오전에 우산을 가져왔다가 하교할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냥 두고 가는 아이들이 꼭 한, 둘 있기 마련이라 점심 먹으러 가기 위해 줄을 섰을 때 복창을 시켰었다.


"집에 갈 때 우산을 꼭 챙겨 갑니다!"


니 우산이나 잘 챙겨 다니라고 스스로에게 퉁박을 주고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교실 뒤쪽에 위치한 우산 통을 얼른 들여다보았다. 혹시라도 접힌 채 키가 작아져 놓고 간 3단 우산이라도 하나 들어있길 바라면서.


이럴 때는 아이들이 너무 담임 말을 잘 들어도 탈이다. 어찌하여 31명 중 한 명도 깜빡하고 가는 아이가 없더란 말인가. 우산을 챙겨가라는 복창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각인이 되었나 보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 아직 비가 오기 전이라 몇 아이는 놓고 갔을 수도 있었겠거니, 하던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수업 시작 전 책 몇 쪽 펼쳐 놓으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보다 우산 꼭 챙겨 오라는(우산 놓고 오면 혼난다는) 엄마 말이 더 무서웠나 보았다.


대략 난감한 순간이었지만, 그날따라 처리할 일로 평소보다 더 늦어지는 바람에 다른 교실에서 빌릴 수 있는 기회도 날아가 버렸다. 비가 오는 날이라 다들 보다 깔끔한 칼퇴를 하신 건지 교실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있나. 오늘은 비를 맞으라는 운명인가 보다, 하고 반쯤은 체념한 채 비와 맞닥뜨리기 전, 퇴근길의 마지막 남은 뽀송함을 촘촘히 누리리라 마음먹었다.


그때! 내 눈에 번쩍, 들어온 것이 있었다.

3학년 어느 반 옆을 지나가려는데 굳게 닫힌 교실 문 밖으로 나와 있는 우산 통 안에 노랑 우산이 하나 꽂혀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반가워 꺅,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우리 반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우산 깜빡이 아이가 고맙게도 그 반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산 통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우산은 대개 우산살이 부러졌거나, 제대로 펼쳐지지 않거나, 자동 손잡이가 고장 난 상태일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감지덕지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우산을 펼쳐보니 너무 멀쩡하게 작동이 되어 오히려 조금 놀랐다. 어딘가 한 군데 부실했더라면 빌려가는 마음이 조금은 더 가뿐했을 것 같아서였을까.

우산에서 딱 하나, 굳이 흠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중년의 정장 차림 여인에게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개나리 노란색이라는 것. 우산의 색깔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도 아닌 내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날의 나의 행복은 학교 건물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끝일 것임을 각오하지 않았던가. 우산에 검은 네임펜으로 쓰인 아이의 이름 석자가 또렷이 들어왔다.


'00아, 잘 쓰고 내일 갖다 놓을게. 고마워.'


얼굴도 모르는 우산 주인 아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건물 현관문을 나서자 더해졌다. 창문 밖으로 내다본 것보다 빗줄기가 더 거세었기 때문이었다. 꽉 들어찬 학교 안 주차장에 주차를 못하고 먼 곳에 차를 던져두다시피 하고 온 날이라 고마운 마음은 곱절이 되었다.



모르는 아이의 남겨진 우산 덕분에 빗줄기를 피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오전에 비가 오지 않았다고 오후에 예보된 비를 그새 잊고 있다니. 나의 부주의로 잊거나 놓쳐버린 순간, 어느 수호천사 덕분에 모면했던 일이 비단 오늘뿐이던가.


홀로 살아갈 수도, 살아지지도 않는 삶 어딘가에서 나도 꾀하지 않았고, 다른 누군가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서로에게 '동아줄'이 되었을 수 있다. 그 시기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일 수도, 미래 어느 시기일 수도 있겠다. 모르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다음날 제자리에 그대로 돌려놓은 그 아이의 노랑 우산처럼, 정작 도움을 준 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래도 위급했던 순간에 던져진 구명 튜브 같은 구원의 손길과 그로 인한 감사한 기억은 도움받은 이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 온기를 잊지 않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 나도 모르게 동아줄을 드리울 수도 있겠지. 그랬는지도 모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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