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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14. 2021

'만년' 2학년 담임이어도 괜찮아


"누나, 나이가 몇이지?"


모처럼 한자리에 마주한 막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생이 내게 물었다.

동생(남동생)은 조금 늦은 결혼과 자녀 출산으로 인생의 이모작을 열심히 꾸려 가는 중이다. 삼 남매 중 누이들도 30 넘어서 결혼했으니 남자 나이로 그리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남성 위주의 사회, 문화 속에 성장해 40대를 맞이한 한국 남자이니 생각이 많아지기는 했을 거라 짐작한다. 큰누나 정도의 나이쯤 되면 자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보는 모양이었다.


결핍 속에 오는 치열한 각성의 시기는 사람마다 때를 달리해 찾아온다. 모두에게 다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개인의 역사에서 이전의 자신보다 더 어른이 되는 시기는 분명히 맞이한다. '어떤 어른'의 모습이냐는 각 개인이 그리는 삶의 궤적과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의 롤모델을 찾는다. 어릴 적에 본 위인전에서, 학창 시절을 지내온 친구 중에서, 가족 일원이나 직장에서 만난 유능한 선배에게서 발견했을 수도 있겠다. 동생은 그 롤모델을 마지막 경우에서 찾은 듯하다. 동생의 회사에서 새로 부임한 사장이 내 나이라고 했나, 한 살 더 적다고 했나. 50이 되기도 전에 한 집단의 '장'이 된 그 사람이 동생 눈에는 최고 '유능해 보이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누나 나이를 물으며 직접 비교하는 것은 좀 치사한 일이었다. 어른이 되다, 말다 하는 50 직전 '어른이'인 난 동생의 질문에 당황스러웠던가, 뿔이 났던가.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선생하고 같아?"


내 대답이 좀 까칠하게 튀어 나갔나 보다.


"그럼, 뭐, 곧 교감, 교장 되는 거냐?"


는 동생의 추가 질문에 나는 얼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동생이 지금 직면한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속해 있는 집단의 '장'이 되는 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이 들인 노력에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게 '칭송'까지 받을 일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동생은 20년이 넘도록 '평'교사로 남아있는 내가 좀 부족해('무능해'가 더 적당하려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 차가 많이 나 업어 키우다시피 한(?) 막냇동생에게 내 삶의 역사가 평가절하 된다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쩌겠나. 막내들이란 가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다 자란 듯 사고하는 존재들이니 또 그러려니 해야지.(막내로 자란 내 남편도 비슷해서 자동 일반화되었다.)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여서인지 오랜 세월, 한 자리에 머물며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답답해 보이나 보다. 평생 한자리를 지켜내는 사람이 누군가의 눈에는 '고인 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 어찌 고여있을 수만 있겠는가. 살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는 이 삶인 것을.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살아가다 어느 시기, 어느 계기로 새로운 생의 전환점을 맞기도 하지 않던가.


누군가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해서 그(녀)의 역사가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드글드글 끓던 생을 관통하다 만난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생의 방향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삶의 다른 가치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누구도 한 개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키는 동안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처음엔 그다지 별 볼 일 없던 돌멩이가 세월의 흐름 속에 계속 단단해져 다이아몬드가 되어 스스로 빛나기를.


만년 2학년 담임이라도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더 나은 '선생'이기를. 온갖 번잡한 것들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고, 느리더라도 끊임없이 정진하기를 소망한다.


만년 2학년 담임인 내 생에 cheers!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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