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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22. 2021

아이들 학교급식 시간 5분 전에 얻은 깨달음

제 갈 길만 잘 찾아가면 된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희희낙락…….

급식을 먹으러 가는 줄을 서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늘도 부산스럽다.

최소 1m를 유지하라는 방역수칙이 한 반에 3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가당키나 한가. 원칙대로라면 교실 내 한 줄 서기는 시도조차 말아야 한다. 4교시 시작부터 배고프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 이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2학년 아이들에게는 버거웠을, 붙들림의 4시간 수업에서 놓여나 비로소 자유로운 숨을 뱉어 내는 시간. 그 달콤함에 취해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돋친 듯 가뿐 날아오를 모양새다. 그렇게 흥이 돋아 손, 발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꺼운 마음에 이 녀석들, 다 풀어놓고 싶어 진다.


하고 싶다고 다 하면 안 되는 것이 어른들의 재미없는 삶이다.

오늘도 양떼몰이 목동처럼 아이들을 가지런히 세워 교통지도를 하고 각종 전달 말로 재미없게 하교 지도를 한다. 선생님이 하는 말에 재미라고는 1도 없음에 대한 반항인지, 줄의 앞머리에 섰던 남자아이 하나가 연신 머리와 어깨를 실룩거린다. 그렇게 계속 재미없으시면 나 혼자라도 신나 볼랍니다, 하는 듯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주춤하더니 뭐라 하는 기색이 없으니 다시 흥겨운 몸짓을 이어간다. 몽글몽글한 아이의 파마머리가 실룩거리는 몸놀림을 더욱 경쾌하게 한다. 스스로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재능이다. 아이의 재능이 빛바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번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 한 줄씩, 두 줄로 서서 급식실로 향한다. 배식을 받을 때는 한 줄 받아야 하므로 급식소 앞에서는 두 줄을 한 줄로 만들어야 한다. 여학생과 남학생 줄이 매일 번갈아가며 먼저 배식해 왔다.

오래된 형광등의 깜빡임과 같은 나의 기억에 기대어 어제 누가 먼저 먹었던가, 잠시 생각해 본다. 여학생이 먼저 먹은 것 같다.


"오늘은 남학생이 먼저 먹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봤으면 더 정확했을 것을, 그렇게 호언을 하고는 앞장서 버렸다. "선생님!" 성큼성큼 내딛는 나를 붙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아보니 남학생 줄 세 번째에 서 있던 동훈(가명)이었다. 어제 자기들이 먼저 먹어서 오늘은 여자가 먼저 먹을 차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여자가 먼저 먹어야겠구나, 했더니 남학생 줄 앞부분에 서 있던 남자아이들 표정이 금세 달라졌다. 내 앞이라 큰 소리로 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을 말한 동훈이에게 왜 쓸데없는 말을 하냐는 타박을 하는 듯했다. 동훈이의 표정이 순간 머쓱해다. 사실을 말한 아이가 곤란에 처하면 안 된다.


"우리 반이 어떤 반이지?"

"행복하고 배려하는 정직한 반이요!"

"동훈이가 정직한 우리 반 답게 정직하게 잘 말해 주었다. 그치? 멋진데?"


사실을 말했으나 친구들의 타박에 곤란했던 동훈이 표정이 다시 환해진다. 먼저 배식받을 순서를 놓쳤다는 아쉬움에 동훈이를 질타했던 아이들이 서둘러 노선을 변경한다.


"선생님, 어제 저희들이 먼저 먹은 게 맞아요! 오늘 여자들이 먼저 먹을 차례예요!"


어깨를 실룩거리던 펌 소년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친다. 조금 아까는 동훈이에게 어깨를 바투 붙여 뭐라고 구시렁거리던 아이중 하나였다.

아이들은 순간의 이익 앞에 잠시 눈이 멀지만 함께 만들었던 공동의 목표와 그 실현 가치를 일깨우면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눈앞의 이익을 부풀리며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마음은 또 얼마나 간사하 갈대처럼 흔들리고 마는가. 그래도 굳건한 표지 하나 있다면, 그것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자주 흔들리는 마음 자락 붙들어 줄테지.


<시민의 교양>에서 저자 채사장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건 선택하지 않는 게 아니라 관성처럼 하나의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매번 현재를 유지하는 선택을 해 온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다. 선택하지 않음은 '불편부당한 현재를 유지해도 좋다'는 선택과 같다는 말에 뜨끔해진다. 그러니 불편한 현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성급하게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거다.

 

꼬불꼬불, 삐뚤빼뚤, 오락가락, 갈팡질팡…….

급식실로 향하는 아이들의 한 줄 서기 모습은 도통 통일성이 없다. 참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자유롭게 날아가도 제 갈 길만 잘 찾아가면 된다. 도착지가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는 방향만 제대로 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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