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학교로의 진학을 위해 친구와의 성적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그렇게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또다시 총구 없는 취업 전선에 내몰린다. 어찌어찌 취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거나, 기대를 낮춰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직장에 들어가면 또다시 관리자나 임원직을 향한 승진 경쟁이 시작된다. 끝없는 경쟁의 뫼비우스.
승진을 하면 결국 인생에서 승리하는 것일까? 꿈을 이뤘다 말할 수 있는가? 끝없는 경쟁을 거쳐 목표를 향한 질주를 하는 동안, 사람답게 살았다고, 내 삶의 '주인'은 나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교직은 다른 회사 조직과는 달리 조직 구성원 모두가 승진을 향한 경주를 벌이지는 않지만, 관리자로 나아가려는 교사들 사이에서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승진 점수를 관리하다 보면 학교 내 궂은 업무를 도맡아 하게 된다. 수시로 생기는 회의와 관리자의 업무 지원까지 하느라 항상 바쁘다. 반 아이들 하나하나 지도, 관리하는데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업무로도 너무 바쁘니 교사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 지수는 장난이 아닐 테다.
오죽하면, 내 아이들을 근무하던 학교에 데리고 다녔을 때, 내 아이들이 부장 교사가 아닌 반에 배정되기를 바랐을까.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교에서 유능한 교사보다는 내 아이에게 눈 맞출 여유가 있는 담임교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 학교에 5년까지 있다 보니, 동학년을 몇 년 함께한 동료 교사와는 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다시 전근을 가면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느라 분투하다 자연스레 옅어지는,'길어야 5년짜리 인연'이긴 하지만.
'그녀'는 내가 지금의 학교로 발령받은 첫 해에 동학년이 된 후, 그 이듬해 그녀가 다른 학년을 맡았던 1년을 제외하면 나와 4년간 동학년을 지낸 동료 교사다. 그녀와 난 비슷한 교직 경력에 나이도 동일 연령인 데다 아이들 학년도 비슷하다 보니, 공통의 화제가 많다.
차이가 있다면, 승진이라는 목표 지점에서 갈림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겠다. 그녀는 관리자로 나아가는 승진 대로를 탄탄히 걷는 중이고, 나는 그 길에서 한참을 멀어진 삶을 살아가는 중이니까.
20여 년을 교직에 있다 보니, 더러는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 승진에 대한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보았고, 저런 사람이 관리자가 되어야 할 텐데, 하는 사람이 그 길을 마다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녀는 업무 능력도 뛰어난 데다 그릇도 큰 사람이라 이런 사람이 관리자가 안 되면 누가 되랴, 싶은 사람이다. 그녀와 동학년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그녀를 보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보다는 '사람이 자리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보았다. 그녀는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업무량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해 왔다. 주말이면 친정과 시댁 부모님의 농사일까지 거든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 고소설 '박 씨 부인'의 '박 씨'가 저런 인물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전천후 인간형, 사통팔달, 힘이 안 미치는 곳이 없는 사람이다.
어떤 큰일이 생겨도 '천하무적'으로 막아낼 것만 같던 그녀에게 아킬레스건을 발견한 건 내겐 오히려 신선한 '돈오'였다.
우리 학년은 비슷한 연령대(40대)의 같은 여교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일이건 개인사건, 쌓인 '짬'이 많아서인지 무슨 일을 해도 막힘이 없었다. 다들 어느 지점에서건 자신의 역할을 찾아 충실히 제 기능을 했으므로 학년의 톱니바퀴는 막힘없이 잘 굴러갔다. 동학년 하는 재미가 나는 학년이다.그렇게 경력이 적지 않은 우리 학년 선생님들도 모두 그녀의 능력을 알아주고 있으니, 그녀는 누가 보든 훌륭한 '관리자 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전학공(전문적 학습 공동체-교사들의 '배움' 공동체)' 시간에 그날 주제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다 그녀의 '약한 고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교직 경력이 15~20년 사이인 우리 동학년 교사들은 (그녀를 제외하고는) 승진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 대신, 개인의 삶에 관심을 두고 가꾸어 가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전학공 시간에 나눔 할 수 있는 각자만의 분야가 있어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책 지도법, 영어 회화, 인문학 독서, 교실 놀이, 글쓰기 등 경력과 실력에서 우러나온 노하우 대방출로 전학공 시간이 또 다른 배움의 장이 된다.
어느 전학공 수업을 마친 후, 우리 모두의 능력자인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다른 분들은 다들 뭔가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어가시는 것 같은데, 저는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아이들이 예전만큼 제 말을 안 타는 것 같아서 왜 그런가 했더니, 제 마음이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끝이 없는 코로나 터널 속에서 밀어닥친 자신의 '일'을 해내느라 그녀는 '자신'을 돌볼 여유는 갖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교감이나 교장이 될 그녀지만 그녀의 시간이라고 축지법을 쓰며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 길에 가는 도중,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다 '일'은 분명한데 '자신'은 희미해진 현실을 발견하면 드는 당혹스러워지는 감정. 그녀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음 전학공 시간은 바쁜 와중에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의도에서 '코바늘 실뜨기'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그 시간 내내 코바늘 실뜨기에 왕초보인 나의 개인 과외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다방면에서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뜨기를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그녀는 코바늘 실뜨기로 가방, 파우치 등도 손수 만들어 사용하는 '실력자'였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재능을 재능이라 여기지 않고 살아왔던 모양이다. 그녀는 학교 일 외의 개인 취미 생활은 능력의 범주에 넣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그녀가 떠 온 핸드폰 니트 가방을 보고 나는 첫눈에 반해서 마구 찬사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녀가 자신은 잘 안쓸 것 같다며 내게 쓰라고 그냥 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들였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준다고 넙죽 받기 미안했다. 그날 저녁, 작은 기프티콘을 보내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은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 준 건데, 이런 선물을 보내면 안 된다는 답장과 함께 선물 받기 취소로 반환이 되고 말았지만.
그 뒤로 그녀는 내가 안 쓸 것 같아 그녀에게 헌사(?)한 코바늘 실로 너무 예쁜 핸드폰 가방을 또 떠 주었다. 덕분에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물건이 두 개나 생겼다.
그녀가 코바늘 실뜨기로 만들어 준 핸드폰 니트 가방들 by 그루잠
그녀가 작은 보답도 안 받으니 난 그저 그녀가 정성스럽게 떠준 가방을 열심히 메고 다니는 길만이 보답의 길인 듯하다. 그녀가 성적 처리로 한창 바쁠 때, 성적 끝나면 모여서 코바늘 실뜨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실현되진 않았지만.
그녀에게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 시간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 일에 치여 잘 보듬어주지 못했던 것이지, 누구에게나 '마음 둘 무엇'인가는 있는 것 같다. 혹시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 자신을 더 곰곰이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나의 일신의 호강은 주체적으로 '지금 여기서' 챙겨야 한다. -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본문 내용 중.
목표한 것을 다 이루고 난 다음에 나를 진짜 즐겁게 하는 것을 찾을 땐, 무엇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조차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호강은 '지금, 여기서' 하자.
이십 년에 한 번씩 오는 격변은 표현 능력의 도약일 수도 있고, 새로운 주제로의 전환일 수도 있고, 갑자기 마음을 빼앗는 재료일 수도 있고, 그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색일 수도 있고, 참선 끝의 득오 일 수도 있습니다. (중략)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본문 내용 중.
10년으로는 택도 없다. 지금 여기서 조금씩, 내가 즐거울 일을 조금씩 보듬고 있어야 20년 후에 한 번씩 오는 격변을 맞을 '기회'라도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