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입구까지는 40여분 운전해 가야 한다. 일요일 아침, 북한산을 향해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일주일 중 처음으로 '혼자'가 된다. 누군가는 혼자 가면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 나도 혼자일 때 외로울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낀 순간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일 때였지, 혼자 일 때가 아니었다. 류시화 시인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노래했을 때 멋있는 말이긴 했지만 그 속뜻까지는 다 알지 못했다. 외로움은 기댈 상대가 있을 때 느끼는 상대적인 감정이라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오롯이 혼자 일 때 오히려 충만함이 차올랐다. 산행으로 거칠어지는 호흡, 바스락거리는 발걸음, 초록의 싱그러움에 대한 생각과 느낌에 집중하는 게 좋아서 일요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1시간 오르려고 40~50분이나 차를 몰고 가는 게 효율적인가 묻는다면 어차피 내려올 길, 왜 오르느냐고 묻는 질문과 다름 아니다. 상대가 나를 만나러 올 수 없으니 내가 갈 수밖에.
차에 오른 순간부터 진정한 자유의 시간이며 내가 무엇이건 나를 명명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그냥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신발끈을 매는 순간부터 기분 좋은 콧노래가 나오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보니 보고픈 상대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 틀림없다. 그게 산이든, 내 안의 나든.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의 교통 상황,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자극적이지 않은 노래, 가을의 청명한 하늘. 무엇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아침을 위해 미리 사 둔 달달한 편의점 커피는 산행에 필요한 만큼 도파민 수치를 끌어올려준다. 라디오에서 책 소개를 하는 프로그램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적당히 편안하면서 거슬리지 않게 지적이다. 프로그램 게스트들이 열심히 소개하는 젊은 소설가의 신작 제목을 조용히 따라 되뇐다. 그래야 잊어먹지 않으니까. 요즘은 잠깐 돌아서면 '아까 그게 뭐였지?'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나의 기억력이야 애당초 신통치 않았지만 그래도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은 여러 번 반복해 말해보는 것으로 그 틈을 메워보려 애쓴다.
그때 프로그램 게스트 중 한 명이었던 하모니시스트의 하모니카 연주곡이 차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연주곡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마디의 끝자락을 처연하게 연주하는 하모니카의 음색이 곡과 너무 잘 어울렸다. 노래 가사 없는 연주곡이었지만, 듣는 이의 마음에 아름다운 노랫말을 꼭꼭 심어주는 연주였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 김윤아, <봄날은 간다>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가사와 아름다우면서 처연한 하모니카 연주는 찰떡궁합이었다. 나의 봄날은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봄이면 지천에 피어나던 꽃처럼 피어났을 우리. 향기 약한 꽃으로 피어나 존재감은 덜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의 이름으로 아름다웠다. 빛나던 총천연색 꽃을 거두고 이제 알토란 같은 열매를 하나씩 맺어가는 모습도 그리 나쁘진 않다. 때와 시기를 잘 알고 피고 지는 꽃처럼 들고 날 때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폼 나는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30대 때는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생의 반쪽과는 극과 극은 통한다고 서로가 다름을 매력으로 알고 만났으나 다름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첫 육아는 어느 것도 성공적인 것이 없었다. 어른의 탈을 썼으나 모든 것이 서투르고 시행착오였던 시기였다. 40대가 되니 비로소 주위에서도 어느 정도 나를 어른이라 봐주고, 직장에서는 쌓인 경력만큼 실수도 줄었다. 자식들은 혼자 입고 벗을 줄 알고 배 고프면 찾아먹을 줄 알만큼 자랐다. 이제 지구 끝 반대인 줄만 알았던 내 반쪽도 귀밑머리 새치 때문인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다 피고 지는 시기가 있었다.
50대는 어떠할까.
백세 시대라는데 절반밖에 안 되는 나이라고 암만 내 좋을 대로 퉁친다 해도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겨우 나를 찾아가고 있는데 어른이 되어야 한다니. 산 넘어 산이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의 산을 잘 넘는 것으로 부담감을 줄여본다. 산이란 것이 꼭 오르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니 미리 겁먹지 않기로 한다. 첫 번째 봄은 온전히 만끽하지도 못하고 보냈을지 모르지만, 중년에 찾아오는 두 번째 봄날을 위해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도록 용기 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