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은 여러 맛 중 단연 사랑받는 맛일 것이다. 특히 단맛을 감지하는 미뢰 영역이 성인보다 넓은 어린아이에게 단맛이란 존재의 이유에 관심 없던 시기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은 맛이었다.
유년 시절, 하교 후 집으로 가는 길에 꼭 지나쳐야 했던 분식점. 요즘엔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의 상점이 된 지 오래지만 그 시절 분식점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분식은 '핫도그'였다. 둥글게 튀겨낸 찹쌀 튀김도 좋아하는 메뉴였지만 가성비에서 역시 핫도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미 한 차례 완성된 몸체가 온기를 품으러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기름통에 다시 꽂히는 순간,온누리에 퍼지던 고소한 냄새에 일찍부터 마중 나온 침은 꼴깍! 목구멍으로 밀려 넘어가곤 했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동동거림은 튀겨 나온 기름미를 폭발하는 핫도그가 설탕판에서 몸을 뒹구는 순간, 극에 달하게 된다. 밀가루가 기름에 튀겨진 고소한 기름 맛과 온몸으로 범벅된 설탕의 단맛이 이루어내는 콜라보란 세상에 태어난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의 맛이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한 가지 단맛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몸통에 두어 줄 그어진 싸구려 케첩의 맛은 또 얼마나 이국적인 달콤함이었던가. 혓바닥 끝으로 날름날름 아껴가며 핥아먹던 케첩은 100프로 천연 토마토로 맛을 낸 유기농 케첩은 따라갈 수 없는 천상의 단맛이었다.
어릴 적, 용돈도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거의 매일 그 분식점에서 핫도그를 먹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학교에서 상을 타 오면 엄마가 얼마씩 주시던 돈을 잘 모았다가 하루 한 번 내게 주는 행복을 샀을 거다. 아무튼 그 시절 나를 살 찌운 것들 중 으뜸은 다른 분식류보다 압도적인 크기로 더 만족감을 주던 핫도그였다. 누군가는 떡볶이의 '빨간 맛' 추억이 더 강렬하겠지만, 내게 핫도그는 빨간 맛을 거뜬히 이기는 특별한 맛이었다.
주전부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핫도그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핫도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연 설탕 옷을 입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설탕이 묻혀 있지 않은 핫도그란 앙꼬 없는 찐빵이요, 김 빠진 콜라처럼 무의미한 맛일 터였다.
언젠가 아들과 걷다 튀김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어릴 적 기억도 나고 식구들 간식거리도 살 겸, 튀김 몇 개와 핫도그를 2개를 주문했다. 기름에서 따뜻하게 온기를 품은 핫도그를 내어 주시던 튀김집 사장님이,
"설탕 입힐까요, 말까요?"
하고 물으셨다. 설탕을 입히지 않은 핫도그는 상상할 수도 없던 어린 나는 이제 그 자리에 없었다.
"설탕은 빼 주세요."
그렇게 받아 든 '설탕 없는' 핫도그는 이제 백설탕의 해로움을 익히 아는 내게 합리적인 선택지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추억을 논리로 교체해 가는 과정인가 보다. 그러니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맛있는 것도, 재밌는 것도 없다고 하는 거겠지. 핫도그에서 설탕도, 케첩도 다 빼고서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고자 한 것은 욕심이었다. 결국 튀겨진 밀가루 반죽덩어리를 절반도 다 먹지 못하고 버렸다. 이미 백설탕뿐 아니라 밀가루와 튀긴 음식 또한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설탕 옷 가득 입은 핫도그처럼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서 멀어져 버린 것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공동 화장실 전구 교체비를 아끼던 인색한 집주인 덕분에 밤이면 성냥불을 긁어대며 읽던 어두운 화장실에서의 독서 습관, 심장을 두근대게 하던 이성이 주저하는 모습에 못 견뎌 먼저 하고 만 고백, 어쩌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밀을 알아버린 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멀어져 버린 친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적지도 모른 채 친구 따라 무작정 첫 차를 타고 떠난 여행길. 며느리도 안 가르쳐준다던 엄마의 요리 비책이 '미원'이었음을 알게 된 후 멀어진 '진짜' 김치죽의 맛.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 들키기 싫어 폐기해버린 학창 시절의 일기장들...
추억은 오랜 시간 묵혀두고 잊고 있던 효자 주식 같다. 충분히 시간이 지나야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중에 그것들이 어떻게 나를 지탱하고 기억해 줄지도 모르고 쉽게, 막 대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차오를 때가 있다. 그리움은 삶을 더 풍요롭게 채워주는 고마운 감정이다. 핫도그에 입혀진 설탕처럼.
어머니 눈에는 이제 곧 50을 앞둔 아들 내외가 한창때(?)로 보이시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법당에 다녀오시는 길에 카페에 들르셔서 젊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세트를 사들고 오셨다. 어머니는 여태 카페라고는 가 보신 적이 없는 양반이시다. 이날은 어머니가 카페에 가신 첫 날일 터였다.
어머니가 사 오신 아아에서는 설탕이 주는 단맛은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맛이 났다. 그건 77년을 살아오신 어르신이 한창때(?)인 며느리에게 보내신 사랑의 맛이었으리라.
'어머니, 저도 이참에 젊은 사람들처럼 무설탕 아메리카노로 입맛 좀 바꿔 볼까 봐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착용하시는 연로하신 어머니께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전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사다 주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그리움이 되겠지. 그 특별한 맛이 그리움이 되기 전에 묵히지 않고 지금, 충분히 누려야겠다.
(왼) 설탕을 입었어야 제 맛인데... (오) 시어머니께서 사오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by 그루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