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제 막 담근 오이지나 석박지가 먹고 싶어졌다. 반찬집에서 사서 먹을 수도 있지만, 양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싼 데다 입맛에 맞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 프랜차이즈 반찬집에서 가끔 반찬을 사다 먹지만 먹어오던 입맛이란 쉬 변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 회사의 반찬은 보통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보편적인 맛이겠지만, 개개인의 입맛이란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만큼 견고하기 마련이다. 색다른 맛이 끼어들려면 엄청난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한순간 발산하고 마는 매력은 금방 시들기 마련이라 '매력'이 끌어당기는 '마력'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화석화된 입맛의 단단함을 뚫지 못한다.
부끄럽게도 일한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김치류를 담가본 적이 없다. 변명을 하자면, 일하는 며느리의 사정을 잘 이해해 주시는 시어머니께서 필요한 주요 반찬을 사시사철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김치류는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어머니 고맙습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 솜씨로는 어머니처럼 맛있는 김치 맛을 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김치는 우리 땅에서 씨 뿌려 자라난 좋은 재료들로만만든 '명품'이라 대중적인 반찬집 김치와는 깊이가 달랐다.들어간 각각의 재료들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조화로울 수 있는 맛은 좋은 재료에 자식들의 무탈과 건강을 바라는 깊은 정성을 담은 결과이니 어찌 타인이 쉬 흉내 낼 수 있겠는가.
난 언제나 시어머니와 그 손맛을 이어받으신 형님께서 함께 손을 맞잡고 반찬집을 여신다면 영업의 선봉에 서리라 마음먹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자본주의적인 일을 하기에 시댁 분들은 너무 셈에 약하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으니 이익을 낼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런 시댁의 맥락에서 셈이 빠른 남편은 돌연변이가 아닌가, 살짝 의심이 들 정도다(직업적 특성 때문일 것이라고 아량을 베풀어 생각해 주겠다).
일찍부터 전문적인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삶의 철학(?)으로 김치의 영역은 김치의 전문가이신 어머니께 의존해 살아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어머니의 김치만 받아먹고살 수는 없다. 2년 전부터는 연로하신 어머니께 알아서 김치를 담가 먹겠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대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께는 그렇게 말씀드리면서 친정 엄마께는 김치가 맛있는 반찬집을 물색하던 중이었으니까.
시어머니께서 김치 양념을 보내주셔서 절인 김치를 사다가 남편과 버무리는 것으로 김장은 대체되었다. 하지만 김장의 8 할인 김장 양념을 연로하신 어머니 혼자 하시기엔 이제 무리다.
"어머니, 주말에 제가 내려갈 테니 저랑 함께 만들어요."
말씀드리면,
"아이고, 일 하느라 힘든데 그 먼 데서 주말까지 내려오면 얼마나 더 힘들겠냐. 여기 일은 걱정 말아라."
하시며 주중에 미리 만드신다. 생각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항상 죄짓는 마음이라 편치는 않다.
사계절을 김장 김치 한 가지로 버틸 수도 없고 계절마다 입이 원하는 김치류도 달라서 틈틈이 맛 좋다는 반찬집에서 깻잎 김치, 석박지, 열무김치 등을 사다 먹는다. 사다 먹는 김치는 예상되는 맛이라 안심되면서도 기대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안심되는 맛은 기대 이상의 놀라움을 주지는 못한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서사'를 모르니 맛의 품평은 '맛있음'과 '맛없음' 두 가지뿐일 수밖에.
나이 50이 되기 전에 내 손으로 직접 김치를 담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그것도 결심이라고 하느냐고 퉁 줄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너무 타박하지는 마시길. 변명을 한 번 더 하자면, 워낙 토종 입맛을 가진 터라 찌개류나 나물 반찬은 웬만큼 할 줄 안다(고 주장한다. 오늘 이 글에서 더 이상 변명할 일이 없기를...).
남편에게 오이김치와 석박지를 담을 테니 장을 보자고 했다. 남편의 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연방 실실 웃었다. 왜 웃냐고 물으니, 이제 좀 (내가) 집안 살림을 하려나 보다 싶어 좋아서 그렇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하며 힘들게 병행해 온 살림은 어쩌고 그런 망언을 하다니! 억울함이 앞서지만이번만 참아주기로 했다. 잘 구슬려야 큰 일꾼을 얻을 테니까.
보약이라는 가을 무 중 큰 것으로 두 덩이와 오이 10개를 샀다. 내 김치 담그는 실력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일단은 소량으로 담아 보기로 했다. 특히 오이김치는 너무 많이 담가 두면 물러져서 나중엔 손이 잘 안 가니까.
남편은 무와 오이, 부추, 파를 씻고 내가 주문하는 크기대로 잘랐다. 난 끓인 소금과 뉴스가 물에 오이를, 소금에 무를 절이고 김치 양념을 만들었다. 김치 양념에 들어갈 양파와 배 손질도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은 이날 담근 김치의 7할이 자기 몫이라 주장한다. 그렇지만 김치는 양념이 7할 이상이다. 아무리 재료를 빠르게, 예쁘게 자르면 뭐 하나, 양념이 맛없으면 꽝인 거다. 재료를 씻고 다듬는 역할을 메인 요리사가 맡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남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내 양념을 맛보더니 얼른 '연두'를 두른다. 아니, 내 요리에 허락도 없이 함부로 MSG를 가미하다니! 남편이 옛날엔 다 미원으로 간을 맞췄다고 너스레를 떤다. 솔직히 더 나아진 양념 맛에 뭐라 하기도 어려웠다. 며느리도 모르는 맛의 비법은 '미원'이라지 않던가.
양념을 절인 무, 오이와 버무리고 다시 맛보았다. 매운맛이 강해 설탕을 조금 추가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국산 깨로 최종 버무리니 고소한 맛이 추가되어 석박지와 오이김치는 풍미를 더했다.
비교적 간단한 절임 시간과 재료들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만들었어도 김치는 김치다.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막 무쳐냈을 때의 부족한 맛은 냉장고에서, 베란다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치며 채워지길 기대한다.
남편과 담근 오이김치와 석박지. 생김치엔 수육이죠^^ by 그루잠
비교적 간단한 김치를 만드는 과정에도 재료를 씻고, 손질해 자르고, 끓이거나 절이고, 버무리는 일련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함께 만드는 이의 도움과 소통이 필요하다. 결과물의 부족과 결핍을 메우는 수정 과정을 거친다.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은 숙성의 시간에 기대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만든 요리는 요리가 완성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는다.
사적인 이야기는 사적인 맛을 낸다. 사적인 서사가 든 맛은 '맛있음/없음'과는 다른 종류의 품평을 만들어 낸다.
"오이를 15분 동안이나 담그면 안 됐었나 봐. 담그는 시간을 좀 줄여야 오이 고유의 아삭한 식감을 더 살릴 수 있겠어."
라거나,
"배 맛이 너무 안 달아서 양념 맛이 좀 덜했어. 다음엔 맛난 과일로 단 맛을 잡아야겠어."
라거나.
왠지 다음 김치는 또 다른 맛을 낼 것 같은 예감이다. '서사'를 품은 김치는 다채로운 맛을 내며 숙성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