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일상이 무료할 때 일탈을 꿈꾼다. 반복되는 삶의 스위치를 잠시 멈추고 다른 삶을 살다가 다시 돌아와 다시 이전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색깔이 지금보다는 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언젠가 스포츠 용품 매장에서 운동복을 사려고 내민 카드.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연회비 면제 조건이 맘에 들어 가입한 뒤 20년째 사용하고 있는 모 카드회사의 '공무원카드'였다. 카드를 받자마자 한눈에 공무원일 줄 알았다는 매장 사장님의 말씀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난 이제 한눈에 봐도 '공무원 같이' 생긴 사람이구나.
결혼 전, 소개받은 소개남의 직업이 공무원이나 그 비슷한 업종 종사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받은 인상은 한 가지였다.
고.리.타.분.
만남의 시간 동안 '재미'는 없을 예정이었다. 교사도 공무원 중 하나인데 왜 난 알지도 못하는 상대 '공무원남'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가졌던걸까?(결국 공무원과는 한참 거리가 먼, '참 재밌었던(used to be)' 남자를 만나 다이내믹한 생을 살고 있다).
20년 이상 교사로 살아왔으니 내 모습 구석구석에 '선생'의 그림자가 덕지덕지 붙어 있을 것이다. 은행 직원은 상대하는 고객의 직업군이 교사라면 바로 알아챈다지 않던가. 질문과 요구사항이 많고, 자신의 말 뒤에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라고 확인하는 고객. 그게 교사 직업군이라고. 환경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 직업인으로서의 특성을 뭐라 탓하겠는가. 다만, 틀에 박힌 사고방식과 태도에 갇혀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일종의 자기 검열이랄까.
나를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데려다 놓는 일,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는 일, 일상의 작은 일탈이 주는 반짝이는 영감에 충만해지는 경험 등으로 우리의 유년 시절은 얼마나 다채로웠던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무모함은 삶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촉매제다.
집 근처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주 1회, 토요일만 배우는 그림이 나를 예술가로 키워줄리는 만무하다. 그런 대단한 야망이 있을리는 더더욱.
매일 집에서부터 40여분 거리를 걷기하며 지나치는 동네 거리들, 나무들, 산책하는 사람들과 반려견들. 일요일마다 오르는 북한산이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리 보여주는 자연의 색깔들. 아이들의 눈빛에 떠오르는 갖가지 표정들. 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머무르는 그 모든 순간들을 언젠가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 그것이 내가 50이 다 되어 미술학원에 등록한 이유다.
취미 미술이라지만, 이 나이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붓터치를 배우는 나는 서투르기 그지없다.
첫날, 젊고, 당연히 예쁘며(젊음은 당연히 예쁘다), 상냥하기까지 한 미술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유화 물품과 물감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구분하기도 어렵기만 했다. 물감을 섞어 다음 단계의 농도를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느 색이 얼마만큼 더 섞이느냐에 따라 색깔은 무시로 달라졌다.
첫 날 그림 수업, 유화 그라데이션 효과 연습 by 그루잠
두 번째 수업에서는 첫날 연습한 그림 위에작은 것들을 묘사했다. 이럴 때 사용하는 가는 붓을 쥘 때 힘 조절에 실패하여대상의 크기에 오류를 범했다. 원본보다 커진 서산 너머로 날아가는 새들아, 나의 미숙함을 용서해 주렴. 서투름이 쌓이면 제대로 그릴 날도 오겠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모습이 아닌, 다른나로 스위치를 전환하는 시간. 이번 주말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땀 흘려 산을 오르는 '일탈'을 기꺼이 감행한다.
20년 이상의 본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리바리한 모습이지만, 미숙하게 헤매는 데는 몰입의 에너지가 들기 마련이다. 몰입하는 순간, 그때가 가장 '재밌는' 순간이라는 사실, 말해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