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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Feb 19. 2022

[그림책] <모두 함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어린이 전래놀이를 배우는 그림책 이야기


언젠가 학교 급식을 먹고 교실로 들어서는데 우리 반 아이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교실 앞쪽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몰려나와 뭔가를 하다가 내가 들어서니 후다닥 흩어지는 모양새였다. '요 녀석들 뭐지?' 하는 내 표정을 아이들도 살피고 있는 게 느껴졌다.


코로나 발생 이후 방역 지침에 따라 선생님의 지도 없는 교실 놀이는 원칙상 못 하게 되어 있다. 친구들과 마음대로 놀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라니. 안쓰러우면서도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실 밖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던 소란스러움, 갑작스러운 담임 선생님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쉽게 감출 수 없는 즐거운 표정. 금기를 깰 때의 조마조마한 마음과 상반되는 최고의 흥분감. 녀석들은 즐거운 놀이를 한 게 분명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신나는.


"뭐 하고 있던 거니?"

어린아이 같은 궁금증으로 부스스 흩어지던 아이들의 뒤통수에 질문을 던졌다. 놀이를 함께 했음이 분명한 표정의 한 아이가 먼저 답했다.

"그냥 노는 중이었어요."

노는 중인 걸 몰라서 묻나. 아이들이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 놀던 그 놀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그래, 무슨 놀이를 했는데?"

놀이 중이었다던 아이의 표정이 순간 당황스러워졌다. 우물쭈물하던 그 아이를 대신해 옆에 있던 아이 하나가, "오징어 게임에서 나왔던 놀이래요!"라고 외쳤다. 노는 중이었다던 아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그냥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던 중이었어요!"

아이의 표정에 억울함이 베어 나왔다. 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나 어렸을 적에도 동네 친구들과 모이면 한 번씩 했던 그 놀이. 근데 그게 왜 아이 입에서 나오는 게 주저되는 이름이란 말인가.


요즘 어린이들에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오징어 게임'의 놀이다. 드라마 전반에 드러나는 야수 자본주의의 본성과 유년 시절의 놀이를 진행하며 벌어지는 살상의 잔혹성 때문인지 드라마는 첫 부터 '19금'이었다. 아이들 보면 안 되는 드라마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집콕 문화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고 하니, 한국인으로서 안 볼 수가 없었다. 평소에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못하는 내가 이 드라마를 1화부터 종주행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오징어 게임'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쉽게 연결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여러 가지 놀이는 어른들에게 유년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드라마에서 그 모든 추억의 놀이가 살상의 수단으로 사용된 데 대한 충격은 더 컸다. 어떤 경로로 아이들이 드라마에 등장했던 놀이를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드라마를 봤을 거란 생각은 가급적 안 하고 싶다), 아이들이 드라마와 관련해 뭔가를 언급하는 것을 자제시킨 것만은 틀림이 없다. 가끔 수업 시간에 드라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의 말투가 급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전통적으로 해 온 아이들의 놀이를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아이들이 눈치를 보면서 할 놀이가 아니다.


다행히, 이 놀이를 아이들의 놀이로 고스란히 되돌려 줄 수 있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봄이아트북스에서 출간한 그림책, <모두 함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아이들이 흥미 있어할 캐릭터인 공룡 친구들이 놀이를 통해 친구 관계를 돈독히 쌓아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봄이아트북스, <모두 함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대발이와 친구들은 매일 어울려 논다. 날씨가 좋은 날엔 산에 올라 꽃구경을 하고, 비가 오는 날엔 똑똑 떨어지는 비 구경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쉽게 놀잇감을 찾아내고 즐거워할 줄 안다. 자연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저절로 자연의 마음을 배운다. 가지고 나온 모양대로 자라나면서도 주변 환경과 어울려 살아가는 자연의 속성을 말이다.


그렇기에 대발이와 친구들은 새로 이사 온 수줍음 많은 친구, 뿔뿔이를 억지로 놀이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뿔뿔이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그들의 놀이를 하며 뿔뿔이가 자신의 의지로 밖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결국, 뿔뿔이는 스스의 의지에 따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새 친구들을 맞이한다. '재미있는 놀이도 같이 하고, 웃을 때도 같이 웃고, 두근두근 모험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그림책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수줍은 뿔뿔이를 다른 공룡 친구들과 연결되도록 돕는 매개체다. 드라마에서 서로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놓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던 놀이의 본모습은 그런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들의 유년 시절 놀이를 본모습 그대로 돌려줄 수 있어서 이 그림책이 특히 반갑다. 그림책 뒷부분에 놀이 방법을 그림과 글로 자세하게 소개한 점도 자상하다. 유아 및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3명 이상, 더 많은 아이들이 할수록 재미있어지는 이 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이 놀이를 맘껏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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