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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Apr 11. 2022

학부모 상담을 통해 본 초등 저학년 학생의 성향과 특성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종류가 다른 꽃입니다


올해로 8년째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2학년 아이들에게 맞춰 말을 고르고 생각을 살피다 보니, 가끔 일상 대화에서조차 초등 2학년 수준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안 비밀입니다.


그래도 오랜 기간 같은 학년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이 또래 아이들의 특성뿐 아니라, 초등 저학년 아이들을 양육하는 젊은 엄마들의 비슷한 고민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학부모 상담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질문과 고민들 중 다년간 받은 공통적인 질문 몇 가지를 통해 초등학생 저학년 시기의 아이들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학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자녀의 ‘학교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유아기에는 대부분의 생활이 부모의 손을 빌려야 가능했던 시기입니다. 그런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부모의 도움 없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수업 시간의 태도는 어떠한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내며 아이들은 ‘학교’라는 곳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집단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칙과 규범을 익히고 1인 1역 활동 등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여럿이 함께하는 학교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모두가 함께 행복할 것인지, 2학년만 되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고 행동합니다.  

 

내향적인 자녀를 둔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친구 관계에서 서투르지는 않은지 걱정하십니다. 한 교실 안에는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지만, 조용히 관찰하는 아이도 많습니다. 적응과 배움의 속도는 아이들마다 다릅니다. 기질적으로 다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다 보면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이지만 갈수록 뚜렷해지는 공통된 성향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경쟁을 통해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생기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놀이가 있는 학습 시간 전에 몇몇 아이들은 매번, “이기고 지는 게임인가요?”라고 묻습니다. 누구도 지는 이 없이 함께 즐거운 놀이 활동. 아이들이 그런 활동을 점점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들 누구든 ‘지는 쪽’에 속한 기분이 어떤지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는 쪽에 속할까 봐 싫은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경쟁 구도를 싫어하는 이 아이들이 자라 끝없는 경쟁 시스템에 내몰릴 미래를 생각하면 가끔 아득해집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에 맞춰 배워 나가기 마련입니다. 내향적인 아이, 외향적인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달라도 조화로울 수 있음을 알아가는 시기입니다. 부모가 조급하여 아이보다 앞서가다 보면 아이는 이내 지치고 맙니다. 아이 옆이나 뒤에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 주세요. 아이의 속도로 적응하고 배우도록 하는 것. 그것이 부모와 교사의 역할입니다.    


 

두 번째로 궁금해하시는 것은 자녀의 ‘친구 관계’입니다.

적극적인 외향형 자녀의 부모는 아이가 튀는 행동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배척을 당할까 봐, 혹은 크고 작은 시비에 엮일까 봐 걱정하십니다. 반면, 수줍음 많은 내향형 자녀의 부모는 아이가 원만한 친구 관계를 만들지 못할까 봐,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가 될까 봐 걱정하시죠. 자녀 교우 관계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걱정은 자녀의 성향과는 무관합니다.      


학기 초, 아이들은 서로에게 맞는 교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어떤 아이는 1~2명의 작은 친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아이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선호합니다. 편안한 관계 맺음은 학기 초, 이전 학년과 달라진 여러 가지 상황에 불안정한 아이들을 새 학년에 좀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과 맞는 친구를 서서히 찾아갑니다.     

 

아직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친구와 함께한 놀이와 대화 속에서 쉽게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구름(가명)이라는 여자아이가 제게 와서 다른 여자아이 둘이 자기 이름의 성을 달리 부르며 놀렸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두 친구는 자기들이 아는 다른 친구 이야기를 한 것이었는데, 구름이는 마스크 너머로 불분명하게 들린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착각한 모양이었습니다.


내 아이가 학급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님들은 자칫 어릴 적 경험을 떠올리며 상황을 확대 해석하기 쉽습니다. 내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미리 걱정하십니다.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담임교사와의 면밀한 상담입니다. 상담을 통해 아이가 처한 갈등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앞선 부모 앞에서 아이들은 속마음을 다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부모의 기분에 맞추느라 아이가 자신의 힘을 발휘도 못해 보고 꺾이면 안 되겠지요. 부모가 아이의 감정보다 앞서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담임교사와 협력하여야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다 빠르고 적절하게 치유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의 낮은 자존감에 대해 고민하십니다.

매년 학부모 상담을 하기 전, 아이들과 ‘문장 완성검사’를 합니다. 문맥에 맞는 문장을 완성할 정도의 읽기/쓰기 수준인지도 살피고 주변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도 살펴보고자 함입니다. 완성한 문장들을 보면 아이가 현재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자신과 주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예측이 됩니다.


아이들의 문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어휘는 무엇일까요? ‘엄마’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에도 엄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에도 엄마가 아픈 것, 엄마가 내게 화를 내는 것, 처럼 말이죠. ‘내가 무인도에서 살게 되었다면 ... 과 살고 싶다.’란 문장에도 어김없이 ‘엄마’가 등장합니다. 물론 엄마/아빠가 동시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엄마’의 횟수가 압도적입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관심사가 다양해지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엄마’는 삶의 ‘중심축’입니다. 아직은 어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엄마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아이에게는 ‘천하무적’과 같은 존재와 같습니다.      


이전의 마을공동체 사회에서 함께 키워내던 육아가 오롯이 여자의 몫으로 넘어오며 안타깝지만 ‘육아의 결과를 엄마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최고'가 아니면 '최선'이라도 되어야 할 것처럼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육아에 진심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란 다재다능하고 강한 존재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엄마의 자리가 커질수록 아이들이 설 곳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육아의 끝은 아이 스스로 서는 것이지, 엄마가 앞장서 아이 손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타고난 대로 배웁니다. 스스로의 방식대로 배워갑니다. 때로는 가르치지 않았는데 알아서 배우기도 합니다. 내 아이만 뒤쳐질까 봐 걱정하는 것은 엄마의 걱정이지 아이의 걱정과는 무관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엄마의 말과 표정을 보고 자신이 엄마를 기쁘게 하지 못했을 때 좌절합니다. 반복적으로 이런 감정을 겪은 아이의 자존감이 어떨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해 보는 시도'와 '연습'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오롯이 혼자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내었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아이에게 강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각종 난관은 아이에게 문제를 만났을 때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배움의 기회를 주지는 못할망정, 차단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지요.      



일주일 전, 북한산에 올랐다가 이제 막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드문드문 피어나 있던 진달래꽃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진달래 건만 피어난 위치에 따라 바람과 햇볕의 양이 다른지 활짝 핀 것이 있는가 하면, 꽃봉오리만 맺힌 것도 있었습니다. 먼저 피어난 진달래꽃은 일주일 전의 등산객에게 만개의 화사함을 선사했겠지요. 꽃봉오리 상태의 진달래는 다음 주말에 그 기쁨을 안겨줄 것입니다. 한 가지 꽃도 피어나는 시기가 이렇게 다른데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종류가 다른 꽃과 같습니다. 

피는 시기가 다를 뿐 아니라, 피워내는 꽃의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똑같은 잣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와 교사, 모두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은 화병 안에 꽂힌 꽃 한 송이에 불과한 존재가 아닙니다 ⓒ 그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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