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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r 19. 2023

6년 된 떡갈나무의 장수 비결


고등 동물(?)을 둘씩이나 기른 엄마인데 식물쯤이야, 싶었다.


집 안으로 들여놓는 족족 죽어나가는 초록 식물들을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식물에 대해 무지하고  안일했는지 깨달았다. 생명을 잘 길러내지 못하는 인간형인가 싶어 내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말 없는 식물들이라지만, 내 손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을 거쳤더라면 더 긴 생을 살았을 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 방에 천연 가습기 역할을 해 줄 식물을 들였다. 화원 주인장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고 웬만하면 죽지 않는다며 다육식물인 산세베리아를 추천해 주었다. 주인장이 일러준 대로 가끔 물을 주고 간간히 잎을 닦아 주었다. 건강히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양제도 꽂아 주었었는데, 오래가지 않아 산세베리아는 잎 끝색이 누렇게 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생명력을 잃어갔다.


친정 엄마 집에서 건강한 빛깔의 고무나무를 보고 식물을 잘 키우는 비법을 여쭤봤다. 엄마는 고무나무에 간간히 물을 주기만 했을 뿐 특별하게 해 준 게 없다고 하셨다. 그 흔한 영양제조차 꽂아준 적이 없다고. 옳다구나, 싶어 손 안 가도 잘 살 것 같은 고무나무를 우리 집에 들여놓았다. 난 또 간간이 잊을만하면 물을 주고 잎도 가끔 닦아주며 이번에도 영양제를 잘 꽂아 주었다. 그러나 고무나무도 오래가진 못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새 출발의 희망을 담아 큰맘 먹고 들였던 '행복수(해피트리)'가 생을 마감했을 때는 우리 가정의 행복에 먹구름이 드리운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붉은색 회오리 모양의 꽃이 신기하고 예뻐 홀려서 산 안시리움에게 제일 미안했다. 이 아인 우리 집에 온 다른 식물들보다도 빨리 생을 마감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식물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사람은 아니었어도 주기에 맞춰 물도 주고 영양제도 놓아주었는데 왜 식물들은 우리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일까. 야속한 마음보다 죄책감이 앞섰다. 더 이상 식물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었다. 내 손으로 들인 생명이 죽어나가는 걸 더 이상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 집에서는 식물을 볼 수 없었다. 한 번씩 잎이 무성한 초록 식물들을 볼 때마다 집에 들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 아이들이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건강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았다.

그렇게 식물 욕심을 잘 누르며 살고 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올 때 식물 화분 하나가 선물로 들어왔다. 남편의 회사에서 이사 선물로 떡갈잎 고무나무 화분을 선물로 보낸 것이었다. 작은 식물들도 오래 못 키우고 떠나보내기 일쑤였는데 나무 화분이라니. 식물을 배달해 주신 분께 어떻게 키워야 오래 사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면서도 이 아이와는 얼마나 오래 함께 할지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들은 대로 키웠건만 떡갈잎 고무나무는 건강했던 잎이 누렇게 뜨더니 한 잎, 두 잎,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무성했던 잎이 몇 개 남지 않아 앙상해진 나무를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를 다시 건강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다 우연히 "식물에게 햇빛이나 물만큼 환기도 중요"하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되었다.  

  

문제는 '통풍(通風)'이었다. 바람을 통하게 하는 것. 바람길을 열어주어 내외의 공기 순환을 돕는 것이 식물에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식집사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 그동안 내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친정 엄마가 화분에 해 준 것도 없는데 혼자 알아서 잘 크더라, 는 말엔 친정 엄마도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베란다 창문을 수시로 열어주어 바람길을 통하게 하니 고무나무는 스스로 환기하면서 단단히 생명력을 키워갔을 것이었다.


인공의 빛에도 식물은 광합성을 한다고 하여 화분위치도 바꿔주었다. 저녁에 켜두는 거실 한 편의 LED 조명 아래로 화분을 옮기고 퇴근 후 일정 시간 동안 꼭 집안 환기를 시켰다. 추운 겨울에도 화분이 있는 곳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바람을 통하게 했다.


통풍의 효과는 놀라웠다. 잎을 자꾸 떨구기만 해서 앙상해질 대로 앙상해진 가지 끝에 작은 연둣빛 잎이 쏙 고개를 내민 날, 내 안에 새 생명을 잉태한 듯이 기뻤다. 어찌나 좋던지 나무에게 일방적인 대화를 건넸다. 너도 살려고 발버둥 쳤구나. 새 잎도 돋아내고 장하다, 장해!


 새 잎은 다른 잎과 한 눈에 구분돼요. 젊은 생명력이 빛을 발하는 게 보이시나요? by 그루잠


새 잎은 고개를 쭉 내밀더니 LED 조명의 빛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너비를 키워갔다. 새로 나온 잎은 다른 잎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서 다른 잎들을 다 가릴 정도로 잎의 크기를 키웠다. 남편은 새로 난 잎이 혼자만 빛을 독식하지 않도록 가지 사이를 벌려 고정시켜 주었다. 

그 뒤로 우리 집 떡갈나무는 계속 새 잎을 돋아내고 오래된 잎은 스스로 떨구기를 반복하며 6년째 우리 식구와 함께 하고 있다. 잘 지내는 나무를 보니, 통풍만 자주 해줬어도 더 살 수 있었을 지난 식물 친구들에게 더 미안해졌다. 정해진 한 가지에서만 새 잎이 계속 돋는 것으로 봐서 한 뿌리에서 자랐어도 더 건강한 가지에 더 많은 생명력을 실어주는 게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다른 가지에서도 새 잎이 돋아날 수 있도록 올봄엔 분갈이를 제대로 해 주어야 하겠다.


가장 오랜 시간 우리 가족과 함께 하고 있는 우리 집 유일한 반려 식물, 떡갈잎 고무나무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천수를 누렸으면 좋겠다.    


자연의 공기가 통해야 생명은 생명력을 갖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으니 모두들 환기(換氣) 하시고 형통하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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