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그림책, <아홉 살 마음사전>에 나와 있는 어느 마음의 뜻풀이다. 어떤 마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미 제목에 나와 있으니 눈치챘겠지만, "찝찝하다"라는 마음의 뜻풀이이다. 다양한 마음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풀이한 그림책을 보며 그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 개개인의 마음사전 책을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수업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화상 수업에서 함께 나눈 이번의 마음은, "찝찝해"였다.
"운동하고 난 다음에 옷이 땀에 젖었을 때 찝찝해요."
하는 한 아이의 말을 시작으로,
"국어 시간이 들었는데 국어책을 안 가져왔을 때 드는 마음이요."
"숙제를 안 가지고 왔을 때 찝찝해요."
"숙제 안 하고 놀 때의 마음이에요."
"아빠가 손을 안 씻고 사과를 깎아주셨는데 안 먹겠다고 했더니, 장난이라고 손 씻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찝찝해서 먹기 싫었어요."
와 같이 아이들의 '찝찝함'은 다양한 생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아이들의 말을 듣기 전에 들려주었던 나의 예시 역시, 바쁜 아침에 정신없이 김치찌개를 데우려고 가스레인지에 올렸었는데, 출근 후 불현듯 불을 끄지 않은 것 같아 내내 불안하고 찝찝했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생활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 집에 불이 날 뻔했다던 이야기를 흥미진진해했고, 우리들이 나눈 '찝찝해' 이야기들은 각자의 작은 미니북에 아롱아롱 담겼다.
이상하게 수업 후에도 '찝찝함'이라는 마음에 대해 자꾸 되새김질이 되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아니라 견언생심(見言生心)이라도 되는 양, 그 말을 만나니 내 안에 있던 찝찝한 어떤 감정이 자꾸 올라오려 했다. 그동안 꾹 잘 눌러두었던, 내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마음에 걸리는 그 무엇이.
찬란했던 20대, 누구나 그렇듯, 제 짝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던 시기에 나도 누군가를 만났었다. 과거형이니 지금 잘(?) 살고 있는 내 옆에 계신 분은 아닌 누군가를. 그때의 감정도 내가 가진 마음이었을 테니, 끌려서 만났을 테고, 만나다 보니 미래도 생각해 보고 그랬을 테다. 결혼을 서두르고 싶어 하던 '그'와 당시로부터 2년쯤 후에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 중 칼자루를 쥔 쪽은 급할 것 없던 내 쪽이었다.
내게 보인 정성스러움에 마음은 열었지만, 결혼을 하기에 그는 현실적인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였다(물론 내 쪽도 비슷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던데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정도로 내 눈에 색안경이 덜 씌었던 모양이었다. 결혼을 생각한다면, 지금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것은 괜찮지만 2년 후에도 지금의 상태라면 결혼할 수 없다는 내 말에 그는 주택마련 통장도 만들고, 매달 입금 상태도 보여주고 했으니, 그도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생겼다.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두고 만들어가던 과정에서 내 마음이 어느 시기부터 식어버린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가 딴 사람이 된 것도 아닌데, 웬일인지 그에 대한 내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남녀 간의 관계에 도파민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1년 6개월이 넘지 못한다더니, 내가 그 짝이었던가. 식어버린 감정의 불씨는 다시 켜지지 않았고 나의 변화를 감지했던지 그는 안달복달해하며 더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뿌리가 죽어버린 화초에 물을 주어봤자 소생 가능성은 없을 터. 마음이 떠나서인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성에 안차고 불편했다. 자꾸 싫은 소리가 늘었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나는 서서히 관계를 끝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터였다.
어떤 일로 내가 그에게 실망할 일이 생겼고 기회만 엿보던 와중이었던 내가 그것을 흘려버릴 리가 없었다. 그에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며 '끝'을 선언했고, 붙잡는 그를 뿌리쳤다. 마음을 쉽게 접지 못한 그는 계속 찾아와 나를 설득하려 했고, 이미 식어버린 내 마음은 모멸 찼을 것이다. 깨끗이 돌아서 주면 좋았을 것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을 텐데 20대 내 마음은 왜 그렇게 확고부동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싫게 만들었는지 그때의 나를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그가 나와 헤어지고 나서 나를 '아련한 옛사랑'으로 추억하는 것조차 끔찍하게 싫었다.
나에 대해 좋은 기억을 남겨 주지 말자.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이라는 것이, 그도 나를 싫어지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싫어져야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이후 나를 기억 속에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은 진짜 마지막이다, 이 날로 끝내리라 마음먹은 날, 그에게 온갖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과 욕을 퍼부어댔다.
난 좀체 욕을 잘 못하는 사람이어서 한 살 어린 여동생과 어릴 때 다투면서 "이 돼지 같은 게!"라는 말 정도가 그 나이 되도록 내가 했던 최대의 욕이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 내 입에서 나온 막말과 욕들은 지금 떠올려도 정말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가 싶은, 날것의 욕이었다. 끝장내고 싶다는 열망이 이성을 넘어서서 나의 무의식 속에 잠자던 쓰레기 같은 말들을 끌어올린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 이성의 끈을 놓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그와 끝났다.
전혀 생각할 수도 없던 나의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도 그 뒤로는 나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 후 그는 그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고, 나도 나의 삶을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시 '찝찝해'라는 말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찝찝하다.
내가 싫어 끝낸 그 관계를 후회한다거나 그때는 어려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거나, 이런 감상적인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찝찝한 부분은, 내가 누군가에게 '내가 아닌 나'로 화석화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나를 '아름다운 추억의 자락'으로라도 떠올리는 것이 싫어서 했던 행동이었는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좀 더 현명하고 좀 더 냉철한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싶은 것이다. 유치하고 치졸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물론 무의식의 나는 나도 모르니 '무의식의 나는 아니라'고까지는 자신을 못하겠다. 그래도 '내가 아는 나'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내가 아닌 나로 기억된다는 것, 그 기억을 회복할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 그 기억을 지울 수도 없게 나의 뇌리에도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는 오늘, 매우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