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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24. 2023

담임교사의 짝꿍

* 이 매거진에 쓰인 모든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중, 고등학교 교실에는 없는 자리가 하나 있다. 담임교사의 업무용 책상 옆에 바싹 붙인 학생용 책상 하나. 전입생을 위한 예비용 책, 걸상 세트라는 명분을 갖고 평상시엔 주로 아이들 과제물과 수업 결과물을 제출하는 장소로 이용되는 자리다. 이곳은 가끔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자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여기서 특별한 아이란, 주로 수업 시간에 지속적으로 다른 친구를 불편하게 거나 소음을 유발하는 등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일종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하는 학생을 말한다.


교육부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해 의도적으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신설했다. 이에 따라 수업 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에 대한 이동 조치가 가능하게 되면서 이 자리의 용도가 확대된 것이다.


내 옆 자리에도 그런 책상이 하나 있다. 원래의 용도대로 주로 과제물 수합처지만, 가끔 몇몇 아이들이 앉았다 가곤 한다. 그 몇몇 아이들이 반복적인 한, 두 아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의 눈에 선생님 옆자리는 '문제 행동을 일으킨 친구의 자리'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힌 듯하다. 이 자리가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자리는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를 불러내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럿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모두의 평화롭고 즐거운 공동의 시간을 위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그 행동을 멈추고 잠시 숙고하는 환기의 역할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의 옆자리'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바꾸어줄 필요가 있었다.  


"얘들아, 선생님 옆에 있는 책상은 수업 시간에 자기 자리가 불편해진 모든 학생들을 위한 자리야."

뜬금없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무슨 소리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네!"라고 답하기엔 명확하지 않은 말이었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자리를 거쳐 갔던 친구들 면면을 봤을 때 그 자리가 '모든' 학생들을 위한 자리라니, 아이들 눈이 잉? 동그래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자리는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는 행동을 하는..."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데 한 아이가, "교육활동 침해 행위!"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이미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무엇이고 어떤 행위들인지 수업을 통해 배웠다.

"맞아.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한 학생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누구라도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어떤 이유로든 불편할 경우, 잠시 와서 쉬었다 갈 수도 있다는 말이야."

이 말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미심쩍은 미간을 풀지 못했다. 칠판 글씨가 잘 안 보이거나 선생님의 설명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거나, 주변 친구의 행동이 불편해서 잠시 자리를 피하고 싶을 때도 이 자리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그제야 아이들의 표정이 너그러워졌다.


교실 안에는 매우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이 함께 있다. 작은 소음에도 굉장히 예민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무딘 아이도 있다. 다른 학생과 짝이 되었을 때 별문제 없이 지낸 아이가 특정한 아이와는 매일 투닥거리는 경우도 있고, 거의 모든 짝과 불편한 관계로 지내던 아이가 어떤 아이와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민감도가 다른 아이들 30명이 한 교실에서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모든 관계와 상황 속에서 다가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사회적 관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선생님의 옆자리'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주고자 했지만, 내 옆자리에 자발적으로 앉겠다는 아이는 없었다. 민우를 제외하고는.

민우는 남녀 짝으로 앉는 우리 반에서 대부분의 여자 짝들과 관계가 불편했다. 민우 짝이 된 여자아이들은 민우의 생각 없이 내뱉는 직설적인 말과 행동에 불편해했고 참다못한 몇몇 아이들은 내게 호소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보니 민우도 여자 짝에 대해 반사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또 뒷자리 여학생과 투닥거리고 있길래, 민우에게 내 옆자리로 옮겨 수업받는 게 어떤지 물어보았다. 민우가 살짝 망설였다. "선생님은 민우가 소리를 내도 좋고, 선생님 책상으로 물건이 넘어와도 괜찮"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과 연필을 들고 교사 책상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내 옆자리에 앉아 남은 수업을 듣는 동안 민우는 정말 다른 아이 같았다. 열심히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실물화상기에 수업 결과물을 비추며 발표하는 친구들에게도 꽤 진지하게 관심을 보였다. 원래 자리에 앉아 있었더라면 앞, 옆, 뒷자리까지 신경 쓰느라 현격히 산만해지는 아이인데 말이다. 민우는 주변 환경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아이인 것이.


각자 교과서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 넣는 활동을 하던 중, 내 옆에 앉게 된 민우에게 민우만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로,

"민우야, 선생님은 네가 선생님 옆에 앉아 있는 게 참 좋아. 민우가 여기 앉으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선생님에게도 짝이 생긴 것 같아서."  

이 말에 학교 생활 7, 8할은 무표정이거나 찌푸린 인상인 민우의 입가가 살짝 씰룩거렸다. 그 뒤로는 민우가 주변 다른 친구와 문제가 생길 때면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어떨 땐 반자발적으로 앉기다.

여전히 민우 외에 자발적으로 내 옆자리에 앉으려는 아이는 없다. 그래도 적어도 이 자리에 자주 앉는 민우에게는 담임 선생님의 옆자리가 부정적인 곳으로 인식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담임교사와 짝이 되는 아이들. 이 아이들도 자라서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일원이 될 아이들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문제 행동은 단호히 분리될 필요가 있지만, 어떤 누구도 무리에서 배제된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매너리즘에 빠져 무디어지는 내 감각을 일깨우는 이들, 옆자리에 앉는 내 짝꿍들이다.




교실은 모두가 행복한 곳이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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