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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Oct 24. 2020

어른을 위한 동화, <좀머 씨 이야기>

아들램의 학교에서 보내 준 초등 6학년 도서목록에서  본 <좀머 씨 이야기>를 처음엔 아들 녀석을 위해 도서관에서 대여를 했다. 목록에 있는 몇 권을 함께 대여하면서 표지나 글자체의 생김새로 보아 아들녀석의 눈에 들진 않겠군... 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결국 아들 녀석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도서관으로 되돌아간 책을 다시 만난 건, 오디오북을 통해서였다.

녀석이 안 읽은 거 내가라도 듣자, 하고 듣기 시작했는데, 아니 이게 초등 6학년 추천 도서라니.  

'소외', '고립', '생과 죽음', 자살'의 이슈가 들어 있는 이 이야기가 6학년 추천 도서 목록에 들어간 이유를 생각해 본다.


책이 두껍지 않다.
등장인물이 어린 아이다.
비교적 쉬운 어휘로 된 문장들로 쓰여졌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한토막이다.


뭐, 평론가들이 추천했을때는 뭔가 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야기는 양(어린이)의 탈을 쓴 늑대(성인)의 이야기이다. 물론 자기 세계 안에서 현상을 파악할테니 어린이가 읽는다면 내가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던) 3학년이었을 때 우체국에서 주최한 어린이 편지쓰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부상으로 받은 책 제목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어린 나이에 상으로 받은 그 책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얼~마나 읽다가 결국은 이해하기를 포기했던... 그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학년 수준에 맞는' 추천 도서 목록'도 없는 시절이었나.

요즘 6학년은 나 때와는 달라서 좀 더 성숙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분좋게 퉁쳐 주더라도, 또래 아이들보다 정신 연령이 낮은 아들 녀석이 읽는다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지 궁금하기는 하다.


저자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인 <향수>를 쓴 작가라는 사실이 <좀머 씨 이야기>를 어린이 추천 도서에 넣고 싶지 않은 '엄마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향수>를 읽고 책 속의 글이 갖가지 향이 나는 기이한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데에 경이로웠다. 이야기의 소재며 독특한 등장 인물, 후각을 자극하는 '향수'의 언어화에 그렇게 매료되었으면서도, 그 이야기는 초등 자녀에게 추천하기에는 걸리는 게 많은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아무리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묘사하는 자연적, 생리적 현상의 이야기도 내 인식에 닿기 전에 거름망에 걸러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책에서 화자로 나오는 어린 소년이 흠모하는 대상인 '카톨리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다른 순수한 이야기들은 다 제쳐두고 '카톨리나의 하얀 목덜미의 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소년의 심리를 묘사하는 장면은, <향수>에서 최고의 향수를 제작하기 위해 성숙한 여인의 몸향기를 체취하던 그루누이의 변태적인 성향과 오버랩된다. 이럴 때는 아는 것이 병인 게 맞다. 모르고 봐야 그 자체로 더 의미있는 일이 있는 법이다.


아무튼, <좀머 씨 이야기>에 나오는 좀머 씨는 왜 쉬지 않고 끊임없이 걸었던 것일까?

그가 당도하고 싶은 목적지가 따로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소년의 눈에도 끊임없이 걷는 좀머 씨 표정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고 하는 걸 보면 희망에 찬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은 아니었을 것 같긴 하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존재를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아무에게나 보였던, 좀머 씨는 어찌 보면 작가가 자신을 형상화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때 조차도 극도로 자신이 메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현재 가장 잘 알려진 독일어권 작가이면서도 일체의 문학상을 거부했으며,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라도 공개하는 이라면 친구던지, 가족이던지 절연한다고 하니, 이웃으로부터 일체의 관심조차 거부하고 앞만 보고 자기 길만 가는 좀머 씨와 매우 닮아있다.

그러니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두시오!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우박 속을 위태롭게 걷던 좀머 씨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소년의 아버지에게, 좀머 씨가 경기를 일으키듯이 내뱉은 이 말은, 쥐스킨트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보면 <좀머 씨 이야기>는 쥐스킨트 자신의 어린 시절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 포인트와 해석 방법은 다 다른 거니까. :-D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외부 세계와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가두고 통제함으로써 오감을 날카롭게 벼린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섬세하고 예민한 오감의 자극을 그의 글을 통해 공유하는 느낌을 가져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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