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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08. 2020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물 안 개구리.

지금까지 내 모습이 이런 것이었고 당장에 고쳐질 문제도 아니긴 하지만, 이 행성에서 나고 자라면서 이 곳의 역사, 환경, 문화에서 살다 보니 생각의 한계가 '지구'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력도 모르고 젊은 작가들의 책을 좀 읽고 싶어서 지인들의 추천으로 손에 잡은 책이었다. 첫 이야기를 읽고 아~ 이런 소설도 가능한 거구나, 싶었다. 평생을 문과 지향적으로 살아온 나라서 유독 생경했겠지만, 낯선 낱말들이 이야기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서 놀라웠다. 익숙하지 않은 어휘들이 너도 아는 말이야~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나열되어 있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은 것은 작가의 전공 분야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라 생각된다.


김초엽 작가는 1993년생으로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이과계열 재원이다. 이과의 뇌를 가지고 어쩌면 이렇게 맛깔나게 이야기를 지어낼까. 문과/이과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미 구시대적인 발상이기는 하겠지만, 이과 전공한 사람들이 정보전달의 글이 아니라 소설을 쓰려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보지 못해서 생각이 우선 참신했다. 물론 해외에서야 테드 창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같이 이과적 논리와 문과적 상상력을 굉장한 창의력으로 섞어내는 예야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영역 간의 간극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뿐이라면 좋겠다.


총 7편의 중단편 소설을 엮은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매 편마다 이야기의 공간을 우주로 옮겨서 무한대의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7편의 소설 모두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그중 특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와 <스펙트럼>, <관내 분실> 이야기가 제일 인상에 남는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여행하는 설정이 언뜻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다른 별에서 지구로 여행을 왔다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라면, <순례..>는 작정하고 마지막 종착지를 지구로 삼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스펙트럼>에서는 인류가 아닌 지능을 가진 생명체와 그들의 언어와의 조우가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테드 창의 소설에 나와 있는 몇 문장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컨택트>라는 영화가 굉장히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관내 분실>은 과학의 이야기와 '엄마'라는 자칫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소재들로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이야기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생각났지만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다.


그녀의 다른 소설도 읽고 싶어 지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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