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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08. 2020

이마무라 나쓰코,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우리 동네에 '보라색 치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학창 시절, 문예 대회 등에 나가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다음 문장들은 따라가기 마련이라 글의 첫 단추를 잘 꿰는데 고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특히 소설책을 볼 때는 첫 문장에 관심이 많다.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이 책의 첫 문장도 이야기를 읽어나갈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호텔에서 청소하는 인력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곤도'라는 이름의 치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는 언제나 보라색 치마를 입고 다녀서 붙여진 이름으로, 공원에 있는 여러 벤치 중 꼭 한 벤치에만 앉는다. 그래서 '보라색 치마 전용석'이라 별명 붙은 벤치에 앉아 매번 크림빵을 먹는다. 그녀를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로 생긴 연민인지, 그날그날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며 가까운 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그녀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는지, 곤도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 


곤도는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한 기회를 찾던 중, 그녀가 일용직이나 짧은 기간 계약직 일을 구해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지정석 벤치에 자신의 호텔에서 낸 구인 전단지를 지속적으로 놓아 그녀가 호텔 청소일에 채용되도록 이끈다. 

군도는 같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으니 이제 그녀와 가까워질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낯선 그녀에 대한 비호감으로, 나중에는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그녀에 대한 호감으로 그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동료들 때문에 좀처럼 가까워질 기회를 잡지 못한다.


곤도의 예상과는 달리 새롭게 얻은 직장일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던 그녀가 출근 셔틀버스에서 당한 성추행 사건을 소장에게 고하고, 소장이 자신의 차로 그녀의 출근을 시켜주게 되면서, 그녀는 군도가 오래전부터 관찰해오던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와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되어간다. 

며칠 동안 감지도 않은 듯이 부석부석하던 그녀의 머리카락에서는 이제 은은한 샴푸 향이 풍기고 길게 기른 손톱에는 색깔 있는 매니큐어도 더해진다. 진동하는 향수까지 바르고 다니는 그녀의 변화 뒤에는 소장과의 관계를 미심쩍어하는 동료들의 험담이 뒤따른다. 

이후 소장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계기로 군도는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 이를 수 있게 되는데...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대하는 대상에게는 관찰자의 감정이 깃들기 마련이다. 늙고 쪼글쪼글해진 노부부 간에도 함께한 세월 속에 공유한 희로애락으로 깊어진 정을 나누며 살듯이, 군도는 오랜 기간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에 자신의 감정을 더해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냄비처럼 빠르게 달구어졌다 식어버리는 주변인들의 애정과는 달리 군도는 그녀에 대한 애정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대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은 상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옆에서 큰 버팀목이 되어 준다. 


곤도는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가 그녀에게 특별했듯, 그녀에게도 특별한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위기의 순간에 그녀가 곤도에게, 

왜, 곤도 치프가 이렇게까지...

하고 물었을 때 고개를 가로저으며,

곤도 치프가 아냐. 난, 노란색 카디건이야.

라고 대답한 것을 보면 말이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에게 '곤도 치프'는 호텔에서 그녀를 처음에는 내외하다 금세 우호적으로 대했던 그들, 소장과 은밀한 관계라는 루머 속에 도둑으로 규정해버리던 그들, 중 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곤도는 자신을 '곤도'로서가 아닌 그녀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애정을 지닌 '노란색 카디건'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겐 가의 노란색 카디건으로 남는다는 것, 참 낭만적인 바람이다. 

사라져 버린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의 전용석에서 그녀가 즐겨 먹던 크림빵을 먹는 곤도의 모습은, 자신이 애정 하던 대상과 닮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처럼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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