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Apr 21. 2024

상처가 아무는 방법


진달래 꽃이 지고 화단 여기저기에 영산홍이 만개하기 직전, 그 간극을 메우며 북한산에 피어나는 꽃이 있다. 언뜻 진달래와 비슷해 보이지만 꽃잎의 크기가 좀 더 크고 색이 더 옅다. 꽃이 진 뒤 잎을 돋워내는 진달래와 달리 잎과 꽃이 함께 피어나는 걸 보면 진달랫과라기보단 철쭉과에 가깝지 않을까, 식알못인 난 그저 그렇게 짐작할 뿐이었다.


문득 꽃이름이 궁금해서 모야모 앱(꽃이나 식물에 관한 정보앱)에 사진을 올렸더니 여러 곳에서 '철쭉'이라는 답이 올라왔다. 식(물) 박사들이 그렇다그런가 보다,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내가 아는 철쭉과는 꽃도, 잎도 생김새가 달라서 마음엔 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등산 마니아인 친구가 사진을 보고 '연달래'가 아니냐고 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연달래는 '진달래'의 경상도 방언이자, '철쭉'의 경남 지방 방언이란다. 경남 지역에 사는 그 친구는 함께 다니는 산꾼들이 그렇게 불러서 따로 그런 이름이 있는 줄 알았다고 다. 이래저래 종합해 보니, 전에 알고 있는 꽃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철쭉'이 맞는 모양이다. 안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오려면 허우적거림도 클 수밖에.


그래도 이전에 알던 철쭉과는 느낌이 너무 달라서 방언일지언정 '연달래'라고 부르기로 했다. 진달래가 피고 난 뒤 연이어 피어나는 꽃이라는 이유도 그럴싸하, 진달래보다 연한 꽃의 색깔에 안성맞춤듯해서다.    


언뜻 진달래처럼 보이지만 잎과 함께 피는 꽃이라 '철쭉'이랍니다.


그런데 꽃은 피는 시기가 너무나 짧아서 꽃이 피는 시기에 산행을 한주 정도 거르면 놓치기 쉽다. 연달래가 피어나는 걸 보며 진짜 봄이 막바지에 이르렀구나, 싶었다. 나이 들면 모든 게 눈물이라더니, 산자락 듬성듬성이에 피어있는 연달래를 바라보는데 난데없이 코끝이 시큰해지는 건 왜일까?


우리 반 금쪽이와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가. 금쪽이가 순간순간 반짝 피워내는 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안타까움인가. 짧게 반짝이고 많은 시간을 깜빡이는 금쪽이를 위해 좋은 방법을 어서 빨리 찾아내야겠다는 조급함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일까.

여린 꽃이 지는 애처로움이 어느새 내가 처한 상황의 답답함으로 연결되었다. 우리 금쪽이가 주말 동안 부모님 사랑 실컷 받고 푹 쉬어서 좋은 기운 가득 안고 월요일에 만날 수 있기를, 하산길에 만나는 국녕사 대불께 두 손 모아 빌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학부모 상담이 진행되었다. 초등 1학년 학부모들은 거의 모두 상담을 신청하실 거라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실제로 상담 시간표를 빽빽이 채운 27개상담표를 보니 폭, 한숨이 나왔다(이마저 얼마 전 전출로 한 명이 빠진 상태...). 녹록지 않은 한 주가 될 터였다.


하루 평균 5명 이상의 학부모들을 만나며 느낀 건, 학교가 처음은 아이들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위로 형제자매가 있는 학생의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외동이나 첫 아이인 경우, 상담에 임하시는 엄마아빠 역시 꽤 긴장하는 듯했다. 왜 안 그렇겠나. 상대적으로 '보육'의 개념이 더 강한 유치원과는 다른 초등학교 생활에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을지, 학습은 잘 해내고 있을지,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는지... 여러 가지 걱정이 많으셨을 테니.


공식적인 첫 학부모 상담이다 보니, 내 쪽에서 부모님께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을 더 많이 드렸다. 상담 전에 실시했던 아이들의 학교 생활 사전 조사표를 함께 보 입학 후 한 달 반 동안의 아이의 생활 모습 이모저모 나누었다. 집에서와 비슷한 모습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을, 집에서와 다른 모습엔 어쩜 이럴 수가 하는 놀라움을 보이부모들의 표정이 1학년 아이들의 그것처럼 다채로웠다.


학부모 상담을 진행할 때 내가  쓰는 말이 있다. 아이의 장점을 언급할 땐 "반했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00 이가 환하게 웃는 표정에 홀딱 반했어요" 하는 식이다. 예의범절이 바르고 학습 태도도 훌륭한 아이의 부모님께는 "00 이를 이렇게 키우신 비결이 뭔가요?"하고 여쭤본다. 그런 내 질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오히려 몸 둘 바를 몰라한다. 더러 힘든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힘드시죠. 아이도 많이 힘들 거예요." 하면 어느샌가 아이 엄마의 눈에 물기가 돈다.

내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할 때, 조금이라도 더 내 아이를 알아봐 주시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가. 그러니 고되더라도 한 분, 한 분과의 상담에 진심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금쪽이가 수줍은 표정으로 "선생님~"하고 부르면 난 그 모습에 홀딱 반할 것 같다. 아이에게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다른 문제 행동들이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다. 자기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 감정 때문에 아이는 또 얼마나 힘들 것인가.


<고고의 구멍>의 현호정 작가는 그 어떤 상처도 남의 도움으로만 아물지는 않는다고 했다. 모든 상처는 안팎으로 아문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아무는 거라고.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우리 금쪽이 안에 쌓인 상처가 스스로 아무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진달래가 피고 난 뒤 연달아 피어나는 연달래처럼 아이의 마음에 평온이 깃들고 연이어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한다.



p.s. 마음이 복잡하니 글도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네요. 머지않아 평화가 깃들겠지요. 제 마음에도, 글에도. :)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반 금쪽이도 움직이게 하는 마법의 주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