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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10. 2024

초등 1학년 아이들이 겪는 갈등의 주된 이유

* 이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9년 간 초등 2학년 담임을 하며 이제 난 누가 뭐래도 자타공인 초등 저학년 베테랑 교사인 줄만 알았다. 교직 24년 만에 처음으로 초등 1학년 담임을 맡기 전까지는.


보통 초등 1학년과 2학년을 뭉뚱그려 '저학년'으로 묶어 부르지만, 1학년 담임 3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1학년 아이들은 2학년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들임을 실감하는 중이다.


보통 초등 저학년이 자기중심 성향이 강하다고 하지만, 1학년의 자기 중심성은 다른 몇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아이들의 대인 관계에  영향력을 친다. 이에 1학년 아이들의 원만한 친구 관계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 가지 요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두 달 10일간의 관찰자 시점이니 일반화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점을 먼저 밝히며.


현재까지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1학년 아이들이 겪는 갈등의 요인은 크게 3 가지다. 그것은 '왕성한 움직임 욕구'와 '부족한 어휘', 그리고 '부정확한 발음'이다.

                       

초등 1학년 아이들이 겪는 갈등의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 출처: pixabay)


1학년 아이들은 손가락에 장전한 노랑 고무줄 같다. 언제든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쉬는 시간'을 알려주려고 "쉬는…"까지 말하면 아이들의 몸은 이미 절반은 튕겨나갈 태세다. 사전 제지나 사후 지도가 없다면 그다음 행동은 '무조건 달리기'라는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교육의 힘이 없다면 과연 학교 복도가 어떤 모습일지 어휴, 상상만 해도 어지럽다.  


아무리 규칙이 있어도 법위반자들은 생기기 마련이라 '뛰면 다쳐요. 뛰면 나도, 친구도 다쳐요.'라는 문구를 교실 문 앞, 뒤, 칠판 등 교실과 복도 곳곳에 붙여놔도 아이들은 뛰고 싶어 안달이다. 특히 담임교사의 눈을 벗어나는 장소에서는 더욱.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담임이 두 눈 치켜뜨고 지켜보지만 그중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이다. 1학년 아이들이 가장 뛰어가기 쉬운(이라 쓰고 '좋은'이라 읽는) 장소는 화장실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이다. 화장실이 급해 뛰었다는데 더 뭐랄 것인가. 몇 계단을 거슬러 오르고 긴 복도를 가로질러야 하는 도서관 가는 길은 책을 대여하는 제 기능보다는 담임 눈을 벗어나 모험을 펼칠 수 있는 합법적인(?) 탈출구다.


담임 선생님의 매서운 눈이 없는 데다 넓은 복도라니, 어린양들이 어찌 달음박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으랴. 친구들의 눈에 발각되어 결국 다음 날 하루 도서관 출입 금지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달리기의 즐거움을 칠 순 없다. 내 그 마음을 심정적으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달리다가 결국 친구와 부딪히고 분쟁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하루는 상근이가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와서는, "선생님, 우진이가 절 때렸어요!"라고 했다. '때렸다'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나는 즉시 우진이를 소환해서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렇게 두 아이의 말을 하나하나 들으며 씨줄과 날줄을 엮어본 결과, 우진이가 화장실이 급해서 뛰어가다 거기에서 나오던 상근이의 팔에 부딪혔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누구와 부딪힌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죄를 묻기도 뭐 한 상황이었다.

"화장실이 급할 때는 달리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가자."   

정도로 일단락할 수밖에.


상근이가 상황을 처음부터 제대로 전달했더라면 '때렸다'는 말에 놀라 내 어투가 그렇게 취조 투가 되진 않았을 텐데. 우진아, 미안. 그렇지만 상근이 역시 상황을 세세히 전하기엔 어휘력이 부족한 초등 1학년이다. 그러니 부딪히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 간 친구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가장 잘 드러내줄 한 단어-'때렸다'-만이 절실했을 모른다.


지율이와 선우는 아직 언어적 유창성이 부족한 이 시기 아이들의 발음 때문에 마찰을 빚었다. 지율이가 한껏 눈썹이 쳐진 채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선우가 제 얼굴에 침을 뱉었어요."라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선우가 장난스러운 데가 좀 있긴 했지만 친구 얼굴에 침을 뱉을 정도로 못됐더란 말인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선우를 불러 지율이가 한 말과 상황을 들려주고 사실인지 확인했다.

"지율이가 말하기를, 가 지율이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니?"

"네? 침 안 뱉었는데요!"

"그럼, 왜 지율이는 네가 침을 뱉었다고 했을까?"

선우는 그런 적이 없다며 억울해했다. 표정을 보니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럼 왜 지율이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좀 더 상황을 꼬치꼬치 캐보니, 선우가 지율이에게 "나 00 스티커 있는데…" 하며 자기가 갖고 온 스티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거센소리를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입에 힘을 주다 보니 몇 개의 낱말을 발화할 때 침이 튀었던 모양이었다. 자기 얼굴에 침이 튀자 불쾌해진 지율이에게 전후 상황은 사라지고 '침 뱉은 선우'만이 남은 것이었다.


이 모든 맥락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기에 1학년 아이들은 심히 자기중심적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야가 넓지 않으며 상황과 맥락을 전체적으로 살피기엔 아직 어려운 발달 시기라는 것이다.


초등 1학년 아이들은 움직임 욕구가 강한데 비해 상대적으로 자기 신체 조절 능력이 부족해서 다치기 쉽고, 복잡한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해 내기엔 어휘가 부족하며, 때로는 발음이 부정확해서 발화 시, 친구와 사소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초등 1학년 아이들 간에 생기는 다툼은 따져보면 대개 미숙함이 원인이다. 미숙함은 누군가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서 잘 조정해 주면 실상 별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러니 초등 1학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미리 속단하지 않길 바란다. 아이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담임교사에게 상세히 전한다면 담임교사가 진상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 간에 문제가 있지 않나,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신체 놀이와 운동으로 아이의 신체 조절 능력을 먼저 키워 주자. 아이의 부족한 어휘와 부정확한 발음을 강화할 수 있도록 내 아이만의 장기적인 독서 계획을 먼저 세워보자.


초등 1학년. 아이들도, 부모도, 교사도 평화로울 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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