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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May 19. 2024

나다움을 드러내 줄 나만의 언어는 무엇인가?


 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에 참석한 후, 가끔 세바시 강연회 소식이 메시지로 날아온다. 그 뒤로도 온라인으로 감명 깊은 강연들을 보아온 터라 다시 한번  감동을 현장에서 느끼고 싶어 메시지가 오면 강연회 주제와 강연자를 살펴보게 된다. 아쉽게도 상황이 여의치 못했거나, 직접 참여하고픈 마땅한 강연회 주제를 만나지 못했는데 2주 전쯤, 세바시랜드로부터 강하게 내 마음을 끄는 강연 안내가 온 것이 아닌가!



세바시에서 온 강연 안내 메시지


이번 주제는 'Meet Your Beauty 나다운 아름다움을 만나다'.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끊임없는 내면의 목소리가 이젠 사회적 요구가 되어가는 시대에 좀 더 깊이 있게 이 문제에 천착했을 현장 실천가와 학문적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물론 강연 주제에 먼저 끌렸지, 강연 장소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강연 장소는 신용산역 바로 옆에 위치한 '아모레 퍼시픽' 본사 건물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TV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경사인 정영선 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분이 이 건물 외관 정원을 조성하셨다는데 화면상 너무 멋있어서 언제 기회가 된다면 가봐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강연 장소가 그곳이라는 거다. 듣고 싶은 주제의 강연을 보고 싶은 곳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라니, 어찌 놓칠 수 있으랴!


강연 신청 메시지가 촉박하게 온 걸 보면 미리 신청한 강연자가 많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냉큼 신청하고는 찐친 단톡방에 신청 소식을 공유했다.


"니들 시간 되면 같이 가고 안 되면 나만 가고."


좋은 걸 혼자 누릴 때의 몰입감과 여럿이 함께 나눌 때의 연대감 사이에서 어느  나은지 결정하는 건 늘 쉽지 않지만, 혼자여도 좋고 여럿이어도 좋은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일본 여행 일정이 미리 잡혀 있던 친구 하나를 제외하고 나를 포함 친구 셋이 함께 강연회에 참여했다.


세바시에 출몰한 세 미녀... 아니고 세 얼간이^^


첫 강연자인 카이스트 이원재 교수님은 사회적 관계에서 외면에 대한 개인적 자각이 자존감과 열등감 문제와 얼마나 연관 있는지 연구 결과로 보여주셨다. 현대에 가까워올수록 그 정도는 더 강화되었음은 예상 가능했지만, 남성보다 여성 특히, 어린 여성들에게 그 정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결과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몇 달 전, 고3 딸아이가 주민증 사진을 찍기 위해 친구와 서울까지 가서 8만 원짜리 메이크업을 받겠다고 했을 때,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던 내 표정과 말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외모가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있다고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교우관계' '학교 성적'이라는 두 가지 지표에 뚜렷이 나타나는 영향력을 연구 결과로 확인하니 당황스러웠다. 외모는 대학 가서 꾸미면 되니 지금은 내면에 집중할 때!라는 이 엄마의 꼰대 마인드가 우리 딸의 자존감 형성에 마이너스 요소 중 하나였을  있겠구나. 그렇게 자신감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딸이 점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게 된 것일까, 그 원인을 보여주는 명시적인 연구 결과에 마음이 출렁였다. 그 마음도 몰라주고 외면에 신경 쓸 시간에 내면에 집중하라던 엄마의 말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언제쯤 되어야 엄마 낙제생을 면할려나. 


두 번째와 세 번째 강연자는 바디 포지티브 콘텐츠 제작자인 치도님과 홈스쿨링 가정에서 형제들과 학교밖 배움을 이어가는 청소년 창작자인 보리님. 이 두 젊은 여성들이 살아왔고 앞으로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을 들으며 딸도 자기 길을 잘 찾아가기를 바랐다. 


"자신의 몸에 혐오감을 느끼며 극도의 식이요법을 감행하는 학생들이 지금도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강연이 끝난 후, 한 청중이 치도님께 질문했다. 치도님은 그 시절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가면서 매번 실패하면서도 지속하는 너의 그런 집념만으로도 넌 뭐든 할 수 있는 애다."


집으로 돌아와 난 핸드폰에 '딸램'이라고 저장된 이름을 바꾸었다. '뭐든 할 수 있는 '로. 언제고 딸에게 적절한 비유를 만나면 색다르게 저장해 주는 낭만을 갖고 싶었는데, 이렇게 '낙제생 엄마'는 잠시 '낭만 엄마'되어 본다.


네 번째 강연자인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는 우리가 추앙하는 '미'란 결국 사회적으로 합의된 아름다움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교수님이 제시하신 미스 춘향 선발전 사진에 캐나다인과 일본인이 포함된 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그 틀이 연약한 것인가. 아름다움을 대하는 고정된 틀에서 더 빨리 벗어나야 더 넓은 의미의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모든 강연자들의 내용이 모두  의미가 컸지만, 마지막 강연자는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그는 19년 차 가수이자, 화가, 작가로 활동 중인 가수 솔비 님(본명 권지안)이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외면을 바꾸려 하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것이 꼭 얼굴이나 신체 사이즈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타인에게 보이는 나'란 얼마나 중한가. 그러니 그 정도가 지나칠 때 방황하던 자아가 자신의 본모양을 찾아 떠나는 들이 넘쳐나는 것이겠지.

 

그녀는 연예인 생활 내내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수없이 입은 상처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는 법을 찾아나갔다고 했다. 화려한 연예인의 모습에 가리어진, '사람, 솔비'가 조곤조곤 자신의 말을 건넸다.

나다움이란 완성되지 않으니 지속적으로 틀을 깨 나가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궁금해하며 자기 자신을 탐색하라고. 자신을 드러낼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라고.


솔비 님 결국 '아름다움이란 나다움을 키워가는 것'이라는 이날 강연자들의 일관된 메시지를 자신의 경험으로 들려주었다. 그녀의 강연은 상처조차 적절한 자신의 언어와 만난다면 스스로를 치유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떻게 타인이게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했다.   


전 세계에 동기 부여 강사가 많은 게 어때서요. 김미경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김미경밖에 없잖아요. 중요한 건 빈자리가 있냐 없냐가 아니에요. 내가 빈자리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느냐에요. 이미 늦었다고, 내 자리는 없다고 좌절하지 말아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듯이 비집고 들어가 내 자리를 만들면 돼요.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김미경


김미경 강사 역시 결국 자신감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낼 때 자신다움에서 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규 미술 공부를 하지 않은 솔비를 조롱하며 '사과는 그릴 줄 아니?'는 야유에 솔비 님은 자신만의 언어로 된 작품, '애플 시리즈'를 내어 놓았다. 입으로만 찧어대는 실체 없는 비난과 악플을 오래 겪어온 그녀에게는 그들을 상대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그러니 굴하지 않고 비집고 들어가 자신만의 자리를 굳건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 테다.


"사과 그릴 줄 아니?"에 대한 조롱에 화답한 솔비 작가의 표현 방식. Beyond the Apple 시리즈 중 한 작품(출처: 한경닷컴)
권지안(솔비)과 제이슨 리버 협업작 '버블 랩 no.29' (출처: 엠에이피크루)


동화와 그림책 쓰기 관련 책들을 읽어나갈수록 내가 얼마나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인지 더 뼈저리게 알아갔다. 집중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아이들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소재를 더하거나 빼고 비틀거나 뒤집는 발상의 전환에 언제나 생각이 열려 있어야 할 텐데, 이토록 정형적이고 틀에 갇혀 있는 내가 무슨 동화쓰겠다고….

내 부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뼈아프다. 이야기를 쓰는데 자신감을 얻으려 했는데 한 번 써봐? 하던 객기마저 점점 졸아들었다. 훌륭한 이야기를 써내는 동화 작가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렇게 창의성이 부족한 내가 어찌 그 영역을 넘보겠다고. 작은 구멍 하나로도 빵빵했던 풍선은 금세 쪼그라든다.


솔비 님의 강연을 듣고 나니, 나를 가장 응원해 주어야 할 내가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고 저울질하고 있음을 알았다. 조급한 마음은 늘 현재를 의심하게 한다. 당장 뭔가 대단한 것을 내어놓아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은 나만의 언어가 차근차근 쌓여가는 과정의 무게가늠어렵게 하니까.

제대로 써 보지도 않고 징징대는 거 이제 그만해야겠다. 그럴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고 또 고쳐봐야지. 그렇게 나만의 언어를 쌓아가야지.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내 자리에서 나다움을 쓰고 있을 그날과 만나 있지 않을까.


솔비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인용했던 커트 코베인(가수, 록밴드 너바나의 프런트맨)의 말처럼,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받을 각오를 먼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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