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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n 15. 2024

생애 처음 받아본 부고



부고가 왔다. 다양한 연을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기간이 늘어감에 따라 다양한 부음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번엔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생애 처음 받아본 부고였다.


중학 동창 Y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잊을만하면 "잘 지내지?", "보고 싶다"는 살가운 톡을 보내어 얼굴 못 보고 지낸 소원했던 시간을 금세 정다움으로 메워주는 친구다. 인간관계를 관리하는데 게으른 나 같은 사람의 인연의 고리마저 챙겨주는  깊은 친구. 그래도 피차 일과 살림을 병행해야 하는 바쁜 직장맘의 사정을 서로 챙겨 웬만한 그리움은 톡으로 해결했었는데 전화라니,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이상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았고 Y가 전한 짧은 소식에 난 할 말을 잃었다.

 "S 남편이 죽었어."


아니, 부모님, 시부모님도 아니고 친구 남편의 부고라니! 나와 내 친구들의 나이가 적은 건 아니지아무리 그렇대도 아직은 '죽음'과 가까울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아니, 도대체... 왜...?"

Y가 전한 말에 무엇을 묻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내게 Y는 친구 남편이 두어 달 전쯤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고 덧붙였다.


'암'이란 말에도 죽음과는 선뜻 연결이 되지 않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몸에 조그만 혹만 보여도 추적 관찰하여 조기 치료하는 선진 의료 시대가 아니던가. 주변에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완치한 지인들을 여럿 봐와서 치명적인 병명 리스트에서 암이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전화를 끊고 KTX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평일 퇴근 후 저녁에 지방에서 소식이라 KTX 외엔 답이 안 나왔다. 내려가는 열차 편은 어찌한다 해도 올라올 시간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직계 조문에만 연가가 허용되니 늦게라도 돌아와야 했다. 급한 마음에 장례식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Y가 당일 방문한다기에 대신 조의를 부탁했다.


다음날 아침을 맞는 마음이 무거웠다. Y는 친구에게 내 마음을 충분히 대신 전달해 주겠노라 했다. 확실히 그럴만한 친구였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KTX 열차 시간을 꼼꼼히 체크했다. 수업을 마친 직후 출발하면 늦더라도 당일 내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음날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다른 동창 친구가 역으로 픽업을 나오고 연락을 전해 들은 또 다른 친구도 합류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장례식장에서 작은 중학 동창 모임이 이루어졌다.


S는 장례식을 치른 하루 만에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우리 중 가장 일찍 결혼해서 출산과 육아를 일찍 끝내 우리 중 가장 젊고 예뻤던 S. 시름으로 깊어진 S의 커다란 눈망울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팠다. 조문을 한, 두 번 다닌 것도 아닌데 이런 경우엔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때로는 몇 마디 말보다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 더 위로가 된다 하니 그 말에 의지할 수밖에.


다들 바쁜 삶에 자주 만나지 못하고 내가 방학 중 친정에 들르는 시간에 맞춰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모임에서도 사랑방 주인장 노릇은 S담당이었다.

"언제  보나 했더니, S 덕분에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소식을 전해 듣고 오랜만에 얼굴을 비춘 J의 말에 S가 잠시 미소를 지으며 무거운 공기가 조금 옅어졌다.


S는 "되게 미웠는데 가는 순간이 되니 사람이 아기 같아지더라"고, 괴로웠을 남편의 간병 기간에 대해 짧게 소회를 전다. 뇌만 겨우 살아 가까스로 생을 연명하고 있던 남편이 숨을 거두기 직전, 온몸을 쥐어짜 겨우 토해낸 말이 "미... 안... 해"였다고. 차라리 그런 말을 안 하고 갔더라미워했던 시간이 더 길었으니 빨리 잊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말을 하고 가니 자꾸 불현듯 생각날 것 같다, S는 쓸쓸하게 말했다.


"이렇게 난 보내는 것도 제일 먼저네."

다른 친구들보다 10년 더 일찍 결혼해서 제일 먼저 삶의 굴곡을 겪어내던 S가 희미하게 웃었다. 30년 이상 부대껴온  떠나보내는 이의 가슴 얼마나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걸까. 그 구멍을 천천히 메워갈 수 있도록 이젠 좀 더 자주 연락해야겠다고, 돌아오는 KTX 안에서 생각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코스모스>, 칼 세이건


또 하나의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위기종이 지구별 여행을 마쳤다. 더 좋은 곳에서 비로소 안식에 이르기를, 여태 그렇게 살아왔지만 친구가 앞으로 조금 더 강건하게 살아가기를 마음 모아 기원한다.


친구야, 여태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강건하게 살아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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