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 모임은 광주에서 잡혀 있었는데 H는 그녀가 살던 목포로 오라는 것이었다. 소원하게 지낸 시간도 오래고 둘이서만 나누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 KTX를 목포행으로바꾸었다.
역으로 마중 나온 H와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 들어가 오붓하게 밥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도 H는 아이들 얘기나 살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만 했다. 그래서 '이 친구가 고향 땅에서 먼 데 사는 옛 친구랑 오랜만에 그저 정다운 시간을 갖고 싶었나 보구나' 짐작했다. 만나기만 하면 중학생 소녀 시절로 돌아가는 옛 친구와의 에프터눈 티는 언제나 그리움의 다른 말이니까.
H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함께 광주로 향하는 1시간 여. 난 H가 나를 그곳으로 부른 진짜 이유가 그 시간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중학 시절, 정을 나눴던 시간을 뒤로하고 각자가 배정받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서로의 시간을 우린 잘 모른다. 그땐 서로가 적응하기 바빴고, 성적과 입시만으로도 각자의 고민은 넘쳤으니까.
중학교 3학년 때,내 옆 짝꿍이 된 H는 가끔 자기오빠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온날의 설렘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고백하곤 했었다. H의 그런 감정에함께 들떠하며 오빠의 친구를 짝사랑하는 데 마음을 쓸 수 있는 H의 안온한 가정환경을 상상했었다. 남매 지간은 원수 지간이라던데, H가 전해주는 친오빠는 얼마나 상냥하던지... H는 정말 다 가진 아이구나,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H는 남부러울 것 없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모난 데 없이 밝고 총명한 친구,라고만 여겼었다.
그런데 광주로 가는 한 시간 동안 H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H는 그 시절 내 머릿속에 그렸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리들의 부모에게는 청소년이었던 우리가 이해하기 버거운 상황이 많았고, H 역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겨운 고교 생활을 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가 50이나 먹었는데 이제 못할 말이 뭐가 있것냐."
H는 예의 그 밝고 총명한, 하지만 이젠 한층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H의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 비슷한 당시의 내 형편을 꺼내 놓으며 우린 서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우리, 이 정도면 잘 크지 않았냐?"
하며.
H는 대학원에 진학해 언어치료학 석사를 따고 언어치료사가 되었고지금은 10여 명의 강사를 둔, 그 지역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언어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잘 버티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일군 H를 생각하면 너무 장해 지금도 코끝이 찡하다.
언젠가 30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들 4명이 함께 1박 2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나도 H처럼 내 안에 묵혔던 감정을 해소했던 적이 있다.
우린 모처럼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기분에 취해 여행을 떠난 날 밤늦게까지 숙소에서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삶을 나누었다. 타고나길 알코올 분해 효소가 부족한 난 안주거리만 축내며 친구들의 눈총세례를 받아가면서도 꿋꿋이.
한 잔, 두 잔... 혈중 알코올 농도가 진해지면서 친구들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풀었다. 그 옛날 못 다 이룬 첫사랑 이야기부터 어쩌지 못하는 가족 이야기, 답답한 부부 이야기, 답 안 나오는 시댁 이야기 등, 이야깃거리는 끊임이 없었다. 술을 못하는 난 알코올의 힘을 빌어하는 취중진담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인생의 절반의 맛은 모르고 산다 해도 유구무언.
그런데알코올에 기대에 내어 놓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도 뜨거워졌다. 나도 내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꺼내지 못할 이야기가 내게도 있는데... 나도 미친 척 소주 한 병 들이켜고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토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마셨다간 그냥 정신을 잃고 마는 알코올 맹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던 말을 못 한 채, 새벽 4시가 가까워서야 취침을 위해 우린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숙소에 4인이 들어가는 방이 없어서 2인 1실로 예약을 했던 상태였다.
그날 새벽, 난 나와 한 방에 묵었던 친구에게 내 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적당히 취해 있던 친구가 다음날 깨어나 내 이야기를 비몽사몽 하길 바랐던가.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못할 말이 뭐가 있겠냐는 H의 말에 기댔던 걸까.
학창 시절 그 친구는 항상 인생의 쓴맛을 미리 맛본 어른 같았다. 자주 고뇌에 차고 시니컬한모습이 그 친구의 매력이었다. 그런 친구의 눈에 항상 해맑게 웃고 다니는 내가 연구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어느 날, 복도에서 나와 마주친 친구가,
"넌 매일 뭐가 그렇게 즐거워?"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어본 걸 보면.
그때뭐라 대답할 말을 못 찾고 우물쭈물했던 난 30년의 세월이 지난 그날 새벽, 비로소 친구에게 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내 전반기 인생에서 어느 한 부분 쉬운 적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그 시절엔 가장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그때, 내게는 학교와 친구만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장소와 대상이었다고.
그날 새벽, 친구와 난어린아이처럼 으헝으헝 울며 서로를 위로했다. 또, "잘 견뎠어", "이 정도면 잘 컸어" 하며.
지나간 슬픔을 웃으며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 한 명만 있다면 견딜만 할 겁니다. (그림 춮처: pixabay)
어둠의 터널을 건너온 사람들은 그냥 건너오는 게 아니다. 어둠 속에서 더 강하게 빛을 찾아내고 강력한 나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온다. 꽁꽁 언 겨울 땅 속에서 더 진해진 산약초처럼 어둠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낸 사람은 더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삶은 더 귀해진다. 허투루 살 수 없다. 어떻게 지켜낸 삶인데, 허비할 수 있는가.
내게도 정말 어두운 밤이 있었지. 그때 내게 빛을 선물한 것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에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한 힘이 있지. 새로운 날을 맞으려면 어두운 밤을 지나야 해. 어두운 밤을 지나지 않고 새날을 얻은 사람은 없어. 어떻게 어두운 밤을 지나왔는지 서로에게 털어놓으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법이지. - <멘탈의 연금술>, 보도 섀퍼
서로의 어둠을 알아챈 사람들은 서로를 더 끈끈하게 끌어안는다. 이제 우린 슬픈 이야기를 품고도 환하게 웃음 짓는 친구의 모습을 안다. 우리 모두에게 지나간 슬픔을 웃으며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오늘이 좀 더 견딜만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