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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l 13. 2024

'생태계 교란종'은 누구인가?


친구들 단톡방에 자주 꽃 사진을 올려주는 친구가 이번엔 꽃 대신 열매 사진 하나를 올렸다. 생김새가 독특했다. 얼핏 보기엔 미니 수박처럼도 생겼고, 방울토마토처럼도 생긴 게 첫인상이 귀여웠다. 찾아보니 웨딩드레스같이 하얀 5갈래 꽃잎들이  배추흰나비의 날갯짓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야생화였다.  


반전은, 이 식물의 열매는 종류에 따라 강한 독이 있고 줄기와 잎 뒷면엔 도깨비처럼 생긴 가시가 가득하여 동물들도 잘 먹지 않으며 사료로도 쓰기 어렵다고 한다. 이것을 먹은 소가 위장에 구멍이 나서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무시무시한 기사도 있단다. 게다가 번식력이 대단해서 일단 뿌리를 내리면 다른 식물들이 못 살도록 몰아내는 생태계 교란종이라니, 귀여운 첫인상이 무색해진다. 

이 야생화가 무엇인지 짐작이 되시는가?


정답은, '도깨비가지'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해살이풀이다. 이름에 들어간 '도깨비'라는 말로 이 꽃을 처음 본 사람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겠다. 짓궂은 장난이나 심술궂은 짓을 하는 도깨비를 굳이 이름에 끌어다 쓴 데는 부정적인 이유가 컸을 테니 말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갈대 같다.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하니, 미니 수박처럼 귀엽게 여겨졌던 첫인상이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군인들의 위장으로 매섭게 돌변한다. 이런 걸 *카무플라주라 하던가?

번식력이 좋은 녀석이 열매마저 서식 환경에 맞춰 보호색으로 위장하는 걸 보니 진짜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처음에 귀엽게 여겼던 말랑한 마음이 싹 가신다.


이렇게 이 아이를 속으로 한참 흉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도깨비가지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종을 번식하고 널리 퍼뜨리는 생물로서의 본능에 너무 잘 따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외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강한 무장을 하고 군락을 번성시키는 일은 자기 종의 번영을 위해서는 분명 '이타적인' 행위다. 도깨비가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맨 첫 세대를 만난다면, 도깨비가지 현세대는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훌륭한 후손일 테다.


종의 번영에 사력을 다하는 이 야생화를 보니, 생명다양성을 주장하신 최재천 교수님이 떠오른다. 최재천 교수님은 이화여대 석좌교수이자, 생명다양성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시다. 교수님은 저서,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에서 1970년에 비하면 야생생물 개체수가 1/3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알려주신다. 더욱이 생태학자들은 이번 세기말에는 현존하는 동식물의 50%가 절멸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


이 와중에도 인간은 가장 빠른 속도로 개체수를 늘려가는 중이며 이변이 없는 한, 세기말에도 굳건히 기세를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호모사피엔스 첫 조상을 만난다면 엄청난 칭찬을 받는 후손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인간을 고작 생태계 교란종에 빗대는 이야기가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지켜낼 만한 무기 하나 갖고 태어나지 못했으니, 어쩌면 인간은 혼자서라면 도깨비가지보다 생존율이 낮을 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생물 종에 기대지 않았다면 어찌 지금과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도깨비가지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종임을 제대로 증명하려면, 이들처럼 오로지 자기 종의 번영만을 위해 사는 삶을 멈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전 지구적으로 모든 동식물에게 이로운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을지 함께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먹이 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우리 인간의 살 길을 도모하는 일이기도 니까.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지구적인 상황에서라이야기가 달라진다. 창조주가 계신다면 한국인들의 지구 생태 조절 능력에 깜짝 놀라실지도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학자들은 수많은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 경고한다.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이라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찾아고 실천하는 것. 결국, 함께 연대하며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것, 이것이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기회'라는 운은 '오늘'이라는 때를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온다는 진리를 믿고 오늘을 충실하게 산 사람들이다. 그들은 심지어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 앞에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위한 기회로 보았다.
- <기회를 잡는 사람 기회를 놓치는 사람>, 데이비드 시버


다른 생물들을 몰아내며 자기 종의 번식에만 충실한 이 식물, 이왕이면 한 군데라도 세상에 이롭게 쓰이면 좋으련만. 내 캘리 배경화면으로라도 쓰이렴. by 정혜영



*카무플라주는 유기체의 몸 빛깔을 주변 환경과 식별하기 어렵게 위장하는 것을 뜻한대요. 호랑이의 줄무늬와 동물 보호색, 군복 색깔 등이 카무플라주의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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