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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Sep 28. 2024

중년인 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분명히 뭔가를 가지러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나지 않았다. 방에서 거실로 내딛는 순간, 거실 탁자 위에 널브러진 주전부리 흔적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걸 보니 기분이 나빠졌으며 "여기서 이거 먹고 그대로 두고 간 사람이 누구"냐고 한껏 톤을 높인 후였다. 늘 그렇듯, 범인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은 정색했고, 딸은 되레 월컥 했다. 아들은 집에 없었다.


앓느니 죽지, 싶은 심정으로 탁자 위 먹다 남은 음식물과 쓰레기를 치웠다. 마음의 평화가 흐트러지는 순간, 가장 피해를 입는 곳은 단기 기억인가.

무엇인가 가지러 왔던 중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 할 수 없이 원래 있던 방으로 다시 들어가 오던 길을 되짚어 나왔다. 거실로 다시 발을 내딛는 순간, 배터리가 다 되어 밥 달라고 징징대는 핸드폰을 위해 충전기를 가지러 가던 중이었다는 것이 퍼뜩, 생각났다.

'치매인가?'

이와 같이 깜빡깜빡하는 기억력의 순간 퇴행 상황에서 늘 고개를 쳐드는 생각이다.  또한 '20대 때 딱히 기억력이 출중했던 것도 아니었잖아?'라는 자조로 소득 없이 끝이 나고 말지만.


며칠 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인문학 연수에서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님은 부모, 교사, 어른은 권(權)을 쥐는 것과 함께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교사 대상 강의였으므로, 교수님은 학생들이 "나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어야 교육의 효과가 커진다고 하셨다. 그건 전문성의 영역이 아니라 교사의 매력이 하는 일이라며.

나를 거쳐간 수많은 아이들과 현재 매일 복닥거리고 있는 1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스쳐갔다. 과연 그중 나처럼 살고 싶다고 말해 줄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과연, 내 딸, 아들은 엄마인 나처럼 살고 싶어 할까?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지금 내 객관적인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날로 퇴화하는 기억력과 더뎌지는 운동 신경, 다방면으로 현저히 떨어지는 순발력. 느는 거라곤 주름이요, 붙는 거라곤 뱃살뿐인 것만 같은 중년의 나. 이런 나에게도 '매력'이란 게 남아 있을까?


집에 돌아와 닫혀 있던 딸의 방문을 똑똑 노크해 열었다. 딸이 책상에서 화상 강의를 듣고 있었다.

"딸, 물어볼 게 있는데..."

딸이 평소와는 달리 겸연쩍어하는 내 표정이 의아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 하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냐는 내 질문에 딸은 무슨 이런 느닷없는 질문이 있냐는 듯이 눈썹을 약간 추켜올렸다.

"엄마는 내 엄마지."

미소 지으며 딸은 내 질문 의도를 파악하는 듯했다. 딸의 눈빛에서 내가 또 앞뒤 없이 말하고 있구나, 싶었다.


"엄마를 통해 본 세상은 너에게 어떤 곳이야?"

그럼에도 내 입에서는 또 맥락 없는 질문이 나갔다. "드럽고 치사해서 내가 해 주고 만다, 이런 느낌?" 하며 다정하게(?) 답해주는 걸 보면 우리 딸 참 착하다. 그게 엄마를 통해 본 세상의 느낌이냐고, 엄마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했더니, 딸은 웃으며 그냥 자기가 살아온 경험으로서의 세상을 말한 거라고 둘러댔다. 차마 엄마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은 할 수 없었다. 딸이 깔깔 웃어버릴까 봐.

딸이나 되니 정도라도 말해 주지, 아들에게 물어봐야, "꼭 지금 해야 해?" 식의 답변만 돌아올 뻔하니 그건 패스하기로 했다.


크게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 엄마를 좋아하는 딸에게 뭔가 희망의 말들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실제의 나보다 훨씬 후한 점수를 주곤 하는 딸의 말에 가끔 나도 모르게 위안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그 정도 답변도 딸의 큰 배려였을 게다. 그래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내 마음을 달래준 건, 오늘의 온라인 필사 방에 올라온 문장들이었다.


잠시 가던 길을 잃었다고 무어 그리 조급할 게 있겠습니까. 잃은 길도 길입니다.
- <길을 물으며 길을 찾는다>, 김윤홍


인정한다. 지금의 내게 내 젊은 날들과 같은 기준으로 매력을 찾으려 든다면 어느 것도 내세울 게 없다는 걸. 그렇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난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좀 더 알게 되었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조금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조금 행복하고 대게 불행하다 느껴지던 나날들이 어느새 전후바뀐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오늘도 자기 암시로 내 행복을 끌어당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참 좋다'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참 좋아요. (캘리그라피 by 혜영,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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