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영 Sep 29. 2024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척하며 살아가는 것도 힘들죠?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예술가를 깨워 보세요


캘리그래피는 내 행복의 빈도를 위해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일이지만, 무엇이든 계속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더 잘하고 싶고 내 스타일을 갖고 싶어 진다. 내친김에 2급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처음엔 그저 붓펜으로 쓰는, 좀 더 특별한 글씨체를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러려면 붓을 먹에 찍어 쓰는 붓캘리에 도전해야 한다.


먹에 찍어 붓글씨를 써야 한다니,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서예붓에 대한 저항감은 나만의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새 실력이 쑥 늘려면 점진적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찬찬한 배움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예체능 과목에 그런 시간을 할애해 줄 여유는 없다.


학창 시절에 미술 시간에 잠깐 접한 예술 활동은 늘 날벼락에 콩 볶는 식이어서 재미없는 기초 연습 후에 갑작스럽게 수행평가용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다. 붓글씨도 예외일리가. 지루한 선긋기 후에 작품을 내라는 선생님의 독촉에 밀려 제출한 성에 차지 않은 결과물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예술적인 재능을 발견하기는 무리다. 그러니 우리가 자신을 '예술' 영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을 내리는 데는 얼핏 근거가 명백해 보인다.


피카소나 고흐가 되지도 못할 텐데 그림은 그려서 뭐 하느냐고, 윤동주나 버지니아 울프가 될 리가 없는데 글은 써서 뭐 하느냐고, 베토벤도 임윤찬도 안 될 바에 음악은 해서 뭐 하느냐며 스스로를 예술의 영역에서 비껴 둔다. 그곳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만의 영역이라며 선을 긋는다.

그렇게 어떤 악기도 연주해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그려본 적이 없으며,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된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부모에게서 어떤 예술적인 영감도 얻지 못한 채, 똑같이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하며 살아간다. 그리곤 한숨짓는다.


"우리 애는 나를 닮아서인지 예술적인 재능이 없어."


하지만 가만히 자신의 어릴 적을 떠올려 보라. 아무 종이나 흙바닥에 아무 거나 그리고 즐거우면 아무 노래나 흥얼대던 아이를.

피카소는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했다. 모든 예술가들의 생각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재능은 환경에 따라 꽃을 활짝 피울 수도, 사라지기도 한다. 씨앗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과 양분을 주며 충분히 보살펴 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말라비틀어져 버린 것이다.


시스템 속의 작은 부속품 같은 환경에서는 '나'라는 개성은 숨기고 덮어둬야 안전하다. 모난 돌이 정 맞고 가장 먼저 튀어 오르는 것을 때려잡는 두더지 게임에 익숙한 나머지, 납작 엎드려 주어진 일만 별 탈 없이 해내는데 모든 애를 쓴다. 시스템의 한 부품인 내가 제 기능을 못한다면 전체에 손해를 입히는 일이므로 다른 부품으로 교체되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그래서 행복한가? 만족스러운가? 내일도 오늘의 내 모습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은가?

  

학교 일만으로도 타고난 능력치가 의심되는 내가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닌데도 월요일엔 오카리나를, 토요일엔 미술이나 캘리그래피를, 주말 동안 글 1편을 브런치에 발행하면서 운동을 빼놓지 않으려는 이유는, 내 고유성을 묻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과 양분을 주지 않아서 말라비틀어진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깨워내는 일은 결국 가능하지 않은 결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 내가 직접 하는 소소한 것들이 내게 주는 행복을 알아버렸으니까.



여기, 용기 있게 자신 안의 예술가를 깨워내어 물과 양분을 주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온라인 필사 모임인, '꿈필'의 필친들이자, 방장인 지숲님(브런치 필명 '지혜로운 숲', 전자책 <꿈을 이루는 필사> 저자)이 이끄는 온라인 캘리그래피 회원들이다.


이미 서예 공방에서 10회 정도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던 나와 전혀 캘리를 접해 보지 않은 다른 회원들과는 출발선이 공평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캘리를 시작한 지 두 달째인 지금, 지숲님이 써 주는 감사 문장과 구조를 달리 한 짧은 글귀를 매일 연습하고 써서 캘리 톡방에 게시하는데 회원들의 변화된 솜씨에 깜짝깜짝 놀란다. 매일의 습관이 만들어내는 성과는 실로 굉장해서 이 분들이 따로 캘리 공방에 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한 달씩 운영해서 현재 2기로 접어든 상황에서 보자면, 당연히 1기부터 참여했던 회원들의 글씨가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엔 지숲님의 글씨체를 따라 쓰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글씨체를 만들고 쌓아가는 분들의 글씨 변천사를 보고 있노라면, 피카소의 말을 격하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분명 이들 안에 잠자고 있던 예술가를 깨운 사람이 있긴 했다(지숲님 감사해요!). 하지만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꾸준히 보살피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사람들에겐 늘 먹먹한 감동이 있다.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더 멋있고 더 능력 있고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에 당신 같은 존재가 당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당신을 당신부터 사랑하십시오.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세상에 멋있고 능력 있고 매력적인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그들에 비하면 나라는 존재는 넓게 펼쳐진 해변가의 모래 알갱이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수 천년 동안 거대한 피라미드를 단단히 지탱해 준 것은 그 모래 알갱이들이 모여 이룬 사막지대다.


지금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어린 예술가를 깨워 무엇이든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거 해서 뭐 할래?"는 당신이 무엇인가에 도전할 용기마저 싹둑 자르는 나쁜 질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그루이자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이카루스 이야기>의 저자, 세스 고딘은 달리 질문한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척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이제 지겹지 않은가?"(p. 93. <이카루스 이야기>)


오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특별한 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질문을 던져 보자.

"그래서,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사진 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인 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