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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n 30. 2024

초등 1학년과 이런 호르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 이 글에 쓰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둡니다.


인간의 뇌 곳곳에는 거울 뉴런이 분포돼 있어서 다른 종들과 다르게 감정적으로 상대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감 능력은 인간 모두가 동등한 정도를 갖고 태어나지 않고 성장하면서 서서히 발달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일수록 자기 중심성이 강해서 타인을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데 오랜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2학년 담임을 오래 했던 내가 올해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하면서 1, 2학년을 저학년이라고 한 번에 뭉뚱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게 아이들 간의 이 공감 능력의 차이다. 학교에서 보낸 초등 1년 동안 습득한 사회적 기술이 얼마나 큰 차이를 발휘하는지 새삼 놀라울 만큼 1, 2학년 아이들의 이 능력의 차는 크다.


우리는 행, 불행의 원인이 대개 인간관계에서 비롯됨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공감 능력이니 아이들 간의 이 차이가 큰 1학년 교실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되는가? 아이들은 매 순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서투른 말과 행동으로 울었다가 웃었다가 감정의 널을 뛴다. 모든 일엔 인과 관계가 있기 마련이라 본인의 불행에는 자신이 뿌린 씨앗도 있으련만, 이 어린아이들이 그것을 이해하기엔 앞으로 한참 더 연습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공감 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학급 친구들과 체로 잘 지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자주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친구의 감정을 살피는데 서투른 아이는 여러 친구들과의 즐거운 놀이 시간을 종종 불편한 다툼으로 끝내고야 만다. 그러니 몇 차례 이런 일을 겪은 아이들이 이 친구와 어울리기를 꺼리는 마음을 뭐라 나무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아이일수록 자신의 감정이 가장 중요해서 친구들이 자신을 배제하고 노는 것 같은 낌새는 민감하게 알아채고 또 불같이 성을 낸다. 그럴 때 아무리 인과 관계를 꼼꼼히 따져 주어 봤자 도움이 될 리가. 공감 지수가 낮은 아이일수록 자신의 다친 감정이 더 소중하니 그것부터 살피지 않는다면 이후 대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는 아이 젖 주듯, 자신의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일수록 그 감정에 우선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아이의 어긋난 태도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이 트인다.


교사의 입장에서 친구에 대한 배려심이 적고 매사 화를 내거나 떼를 쓰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아이는 분명 행동을 개선하도록 교육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특정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배제되는 학급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무척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어떤 이유로든 소수의 학생이 배제되는 분위기가 허용될 때, 아이들은 싫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싶은 이유를 쉽게 찾으려 들기 때문이다.


학교는 미래 사회 속에서 다양한 군상의 인간관계를 잘 겪어낼 수 있도록 미리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연습의 장이다. 그러니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아이와 탁월한 아이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평화롭고 안전한 교실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어찌 가벼울 수가 있을까. 이런 일은 우리 반에도 언제든 생길 있는 일이므로 미리 대비두고 싶었다.


"얘들아, 오늘은 너희들에게 이걸 얘기해 주고 싶어."

1교시를 시작하며 아직은 학습의 뇌가 활성화되기 전인 아이들이 내가 칠판에 쓴 '호르몬'이라는 글자에 호기심을 보였다. 서서히 생각의 뇌를 굴리는 눈빛이 되어 집중하는 1학년 아이들의 모습. 집중 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은 아이들이라

하루 중 이때가 가장 빛이 날 때,라고 한다면 너무 교사 입장의 발언이려나. 이 집중된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하고 싶었다.


호르몬이라는 글자 밑에 함께 쓴 '세로토닌'과 '코르티솔' 1학년 아이들에겐 발음하기도 어려운 말들이다. 접해 보지 못한 글자들이 연달아 칠판에 쓰이니 아는 걸 뽐내기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이 뜻을 알아내고 싶어 안달 난 표정이 되었다.

"오늘 선생님은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세로토닌과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에 대해 얘기해 주고 싶어. 어려운 말이니까 이 말들은 금방 잊어버려도 돼."

자신들이 아는 배경 지식과 아무리 연결 지어도 모르겠는 말 앞에 당황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며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나아갔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떨 때 기쁘고 행복하다고 느껴? 그런 경험을 말해 까?"

라는 내 질문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았을 때,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을 때, 선물을 받았을 때, 엄마 아빠가 안아줬을 때 등 행복했던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그럴 때 우리 몸에 나오는 호르몬이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이야. 이 호르몬이 나오면 기분이 좋아져서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해. 그럼, 어떨 때 기분이 안 좋고 불행하다고 생각되니?"

또 아이들은 다투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친구가 욕하고 나쁜 말 할 때, 엄마에게 혼났을 때, 친구랑 싸웠을 때 등.


'친구가 욕하고 나쁜 말을 할 때.'  


이 말 한마디를 얻으려고 난 아이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얘들아, 다른 사람이 하는 욕이나 나쁜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빠지지? 그럴 때 우리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코르티솔이야. 스트레스 호르몬이지. 그런데 욕이나 나쁜 말을 하면 듣는 사람만 스트레스를 받을까?"

아이들이 뭐지? 하는 눈초리다.

"말하는 사람도 자신의 입에서 나간 나쁜 말을 동시에 듣게 돼. 나쁜 말을 내뱉을 때 우리 뇌는 우리 몸을 긴장시켜서 잔뜩 힘을 주게 되는 거야. 그러니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몸이 편안할까?"

아이들이 일제히 "아니요!" 한다. 그러니 성장기 어린이들이 자꾸 화를 내면 몸도 마음도 자주 긴장 상태가 되어 원래보다 더 자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친구에게 소리치고 화를 내는 아이가 당장은 이기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결국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라는 말은 이기고 지는 문제에 민감한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한 말이었다.


"화를 내는 친구의 몸에서도 코르티솔이 나온단다.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는 거지. 그런데 그 친구는 화를 내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는 거야. 그러니 우린 그런 친구를 어떻게 대해줘야 할까?"

수환이가 조그맣게 "같이 화내요"라고 해서 진지한 분위기를 흩트려 놓았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집중 한도바닥났단 증거다.

"수환이가 선생님 코르티솔을 높이네?"

아이들이 와하하! 웃는   보니 코르티솔이 부정적인 호르몬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새긴 모양이다.


"그러니 주변에 자주 화를 내는 친구가 있다면 안쓰러운 마음으로 대해줘야 하는 거야. 친구가 또 화를 내는구나. 코르티솔이 높아졌네. 스트레스가 쌓였나 봐. 그런데 이 친구가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는구나. 그러면서."

화가 나는 상황에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여러 번 연습했지만 여전히 화를 내는 쉬운 방식을 선택하는 우리 반 우영이에게도 오늘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가 가 닿았을까.

  

공정성이란 무조건 동등한 것이 아니다. 공평하면서도 올발라야 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돌아가되, 출발선이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 섬세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동시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우선 배려하도록 독려하며 소수의 의견도 무시되지 않도록 모두가 존중받는 교실. 바로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내 입장뿐 아니라 타인의 입장도 소중함을 알고, 나중에 사회에서도 필요한 존중과 배려를 익혀갈 것이다.
- <어쩌면 다정한 학교>, 정혜영


나와 성향도, 가진 능력도 다른 친구들이 한 학급에서 생활하면서 아이들은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서로 다른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미리 겪는 것이다. 그 안에서 좀 더 배려해야 할 학생이 있다면 교사의 고충은 더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존중받는 교실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누가 교사를 전문직이라 하겠는가?


친구들이 우영이와 자꾸 거리 두기를 할까 봐 걱정하는 담임 선생님 마음도 모르고 매번 자기한테만 뭐라고 한다고 또 화가 잔뜩 난 우영이. 1학년 아이들보다 2학년에 올라올 때 훌쩍 성장해 진급한다는 걸 오래 봐왔으니 올해가 다 갈 무렵, 우리 우영이 마음도 어쩌면 한 뼘 훌쩍 자라 있지 않을까.

<어쩌면 다정한 학교>,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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