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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Nov 29. 2020

나를 위로하는 음식, 베트남 쌀국수

'만남'이 '맛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은 쌀국수다. 그것도 베트남 쌀국수.

  사실 베트남 쌀국수를 처음 만난 건, 베트남이 아니라 신혼 여행지였던 태국에서였다. 오래전 일이라 전체적인 신혼여행 일정은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가이드를 따라 걷다가 현지 시장로 좁은 골목길 입구 서 있던 작은 포장마차에서 만난 베트남 쌀국수는 기억에 생생하다. 태국이 추운 나라도 아닌데 어째서 뜨거운 국물의 쌀국수를 택해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른 나라 여행에서는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아야 진짜 그 나라 맛을 알 수 있다고 평소 생각하는 내가 남편을 졸랐지 않았을까, 싶다.


  한 사발 가득 담긴 육수에 숙주를 받치고 풍성하게 똬리 튼 하얀 국수 면발. 그 옆에 턱, 하니 꽂 커다란 닭다리가 화룡정점이었던, 그것이 내가 태국에서 처음 만난 쌀국수였다. 한국에서 평소 먹었던 국수들은 당연히 어묵 육수에 담긴 밀가루 국수에 김치와 김가루가 적절히 섞인 이었다. 그게 내가 알고 있던 '국수'의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태국에서 만난 국수는 일단 육수부터 생소한 맛인 데다, '쌀국수'라는 면발에 김치가 없어도 씹히는 식감을 서운하지 않게 해 줄 숙주가 한가득이었다.

  부드러운 쌀국수 면발과 아삭아삭 씹히는 숙주는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기능하는 혀와 이의 움직임을 동시에 재촉한다. 혼자 설거지할 때 오만가지 불만과 짜증이 올라오지만 남편이 손하나 보태면 즐거운 집안 일로 바뀌는 것처럼, 함께 작동하는 모든 것들에는 조화와 기쁨이 담긴다.

  

  거기에 푸릇푸릇한 초록색의 독특한 향을 가진 '고수'라는 녀석은 그곳에서 만난 쌀국수 이전에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채소였다. 지금은 사람들 사이에 고수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시에는 요리하신 분이 묻지도 않고 넣어주시는 바람에 남편은 거의 먹지 못했다는 비화는 여담이다.

  실은 후각이 예민한 남편이 뜨거운 국수 향에서 진하게 베어 나오는 이 고수의 향 때문에 일단 먹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내가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아마 난 지금도 쌀국수의 세계를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난 먹는 것에 대해서는 유독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다.

 

 태국에서 만난 베트남 쌀국수는 그 이후 나의 '인생 음식'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맛이 생각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 유명한 쌀국수 집에 찾아가 맛보곤 했는데, 그때 만난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해 주는 곳을 찾지 못해 매우 아쉬운 적이 많았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집 근처 작은 규모의 백화점 지하 푸드점에서 그때 만난 쌀국수 맛을 90프로 이상 느끼게 해 주는 음식 코너를 발견한 것이다! 지하 푸드점이니 전국 체인이겠지만 체인마다 요리사의 손길 차이가 있을 테다. 수많은 유명 쌀국수 체인점의 국수를 맛보고 실망했던 내게 그곳의 쌀국수는 국수가 아니라 진정한 한 그릇, '요리'였다. 닭다리 대신 꼬불꼬불한 차돌박이가 고명으로 얹어졌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때 그 맛이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난 미뤄도 좋을 일을 꼭 식사 시간대에 맞춰 근처에서 보았다. 남편과 언쟁하고 속상할 때, 그 꼴 보기 싫어 주섬주섬 손에 잡히는 아무것이나 걸치고 나와서 가는 곳이 그곳이었다. 속상하고 마음이 좋지 않을 때는 식욕이 없어 대충 먹거나 끼니를 미루다가, 현관문만 나오면 이상하게 허기가 올라오곤 했다. 그때 주저하지 않고, 망설일 필요 없이 갈 곳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겐 큰 위안이었다.

  그곳에서 여느 때처럼 차돌박이 쌀국수를 시키면 요리하시는 분이 내 속을 어찌 알고 그리 따뜻하게 달래 주셨는지 모르겠다. 그분은 주말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혼자 와서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가는 나란 사람을 알아보시긴 하셨을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가정도 행복하다.


  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고 살면서 주말마다 홀로 최애 하는 쌀국수로 배를 불리고 보고 싶은 영화 한 편 때리고(?) 오면 나는 어느새 세상 너그러운 엄마가 되어 있곤 했다. 엄마 자리가 비워진 3~4 시간 사이에도 어쩜 그리 알뜰살뜰 빈틈없이 어질러 놓는지, 아이들과 남편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재주에는 매번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그래도 그때만은 좀 더 여유로울 수 있었다. 치우자는 한 마디를 하더라도 좀 더 따뜻한 어투로 바꿔 건넬 수 있었고, 무엇을 먹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챌 수 있는 주방의 흐트러짐도 느린 속도로 가다듬을 여유가 생겼다.

  그런 일이 가능하게 한 것은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따뜻하게 달래준 '쌀국수' 덕분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쌀국수 혼자 마법을 부려 나라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낯선 여행길, 스쳐 지나칠 수 있었던 길에서 만났던 새로운 맛과의 만남은, 내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라고, 가던 길만 고집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각이 열릴 거라고, 일러준 것이리라. 그렇게 여느 CF 광고 문구처럼 다른 '만남'은 새로운 '맛남'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리라.


  코로나 때문에 못 가 본지 한참 된 그 쌀국수 집이 몹시 그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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