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최근 개봉작인 영화,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을 보았다. 영화를 일단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기 어려워서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리곤 하는데, 주변 지인들 여럿이 이번 주말에 집에서 보고 싶은 영화라고 하길래, 나도 한 번 편승해 보았다.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은 8년 차 고졸 여직원인 자영(고아성)이 외근 차 우연히 알게 된 회사의 페놀(독성 폐수) 방수 현장을 확인하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인근 주민들의 피해보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영화이다.
시대적 배경이 1995년이고 등장인물들의 패션이나 헤어 스타일, 화면 볼록한 컴퓨터, 공중전화 등이 당시를 회상하게 하는 향수를 불러일으켜 준다.
대기업의 폐기물 방출 사건이나 그룹의 인수합병, 고졸 사원과 대졸 사원 간의 회사 내 처우 차이 등을 통해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반영하지만,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너무 무겁지 않게 적정선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경력이 있던 고졸 사원인 보람(박혜수)과 추리 소설 마니아인 유나(이솜)와 함께 풀어가는 고졸 여사원들의 회사 맞짱 뜨기가 유쾌하다. 물론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는 했지만, '고졸 여사원'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미는 모습은 충분히 멋지다.
전에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이기적인 큰 것) 상업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하셨던 엄마를 중3 때 담임 선생님께서 설득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 역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회사에서 다른 남직원들의 커피를 타고 구두 닦인 신발을 가져다주며, 그들이 피운 담배꽁초 그득한 재떨이와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을 했을까, 생각하니 아뜩하다(일의 귀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뇌피셜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고졸 사원의 경험이 없으니 그들의 삶을 전부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중등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2년 정도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 강사를 했던 적이 있었으니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생각해 보려 한다.
지금이야 초등학교에 방과 후 수업이 활성화되어 있지만(올해 코로나로 인해 방과 후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미실시 되는 바람에 수많은 방과 후 강사분들이 일을 못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당시에는 처음으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이 도입되어 관련 내용으로 연구학교가 운영되던 때였다. 중등 영어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던 나는 초등학교 영어 방과 후 수업 강사를 하며 임용시험 준비를 병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 교과가 도입되던 시기여서 방과 후 영어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수강 학생수에 따라 수업료를 받는 방식이라 학생수가 많으면 받는 급여가 많아지는 구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방과 후 수업을 하며 받던 수입이 내가 정식으로 초등교사가 되어 세금을 다 떼고 받은 첫 월급보다 많았으니, 아르바이트치 곤 나쁘지 않았던 일이긴 했다. 그래도 낮에 일하고 저녁에 임용시험 대비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던 때라 급여 때문에 계속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방과 후 수업이니 수업 시간이 시작되는 오후 시간에만 학교에 머물긴 했었지만, 수업과 수업 사이 중간 쉬는 시간에는 일반 교사들의 연구실에서 잠깐씩 차를 마신다거나 쉬었다 수업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실에서 30대 중후 반대 정도의 여선생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내가 옆에 있는 줄 알면서 하는 말이었으니, 일부러 엿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은 방과 후 강사들이 받는 급여에 대한 것이었다.
"방과 후 강사들 한 달에 얼마나 받아요?"
"과목마다 다르지. 학생수에 따라 수업료 곱하기해서 받으니 학생이 많으면 꽤 되지 않을까요?"
하더니, 그들 중 한 명이 옆에 있던 내게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옆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면전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편한데, 수강하는 학생수를 묻다니. 하지만 그들은 내 기분은 전혀 아랑곳없어 보였다. 어떤 저의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어서 오히려 내쪽이 더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그들이 학생수와 수업료를 어림 계산해 봤는지,
"어우, 괜찮네요."
하는 것이었다. 학교에 수업하는 시간만 왔다가 수업 끝나면 가는 사람이 받아가는 급여치 고는 너무 많지 않냐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아침 일찍 와서 학생들이 하교할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오후에는 각종 업무로 바쁜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이 생각할만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 방과 후 강사들이 급여를 받을 때마다 담당 교사, 교감, 교장에게 선물이랍시고 매달 뭔가를 가져다주어야 했고, 가끔 그들에게 저녁 식사를 접대해야 했으며, 때로는 식사 후 2차 노래방까지 가야 했다는 사실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방과 후 강사들 중 사회 경력이 많으신 연세 있는 강사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지는 자리라 빠질 수도 없었다. 노래방에서 술에 취해 끈적하게 굴던 나이 든 교감을 피하느라 곤란했던 기억을 생각하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불쾌함이 올라온다. 그때 강사 생활을 하면서 더 절실히 정식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학교라는 공적인 일터에서도 나의 수업료를 아무렇지 않게 묻던 여교사들과, 강사들에게 매달 선물을 당연시받고, 때로는 노래방에서 20대 젊은 여강사들은 노래방 도우미쯤으로 대해도 된다고 여겼던 그때 남교사들을 생각해보면, 당시 일반 회사에서 고졸 여사원들에 대한 처우가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도 못하겠다.
지금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직군을 나눠 직장 내에서 다른 급여와 처우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하루빨리 '같은 노동, 같은 처우'라는 기본 기조로 정상적인 직장 문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영화 속에서 마케팅부의 정유나(이솜)가 평소에 자신을 못마땅해하고, 사사건건 트집 잡으려던 여자 대리에게,
"나를 보지 말고, 너를 봐."
라고 했던 속 시원한 멘트가 기억난다. 그 말을 그때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얼마를 받느냐고 물었던 그 선생들에게 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