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어머니, <I Am Mother>

by 정혜영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시대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초등학교 시절, 일 년에 한 번 열렸던 미래 상상 그리기 대회에서 어두운 우주에 행성 몇 개와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이 떠다니는 장면을 그려 넣으면, 소재의 창의성과는 무관하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상을 받곤 했다. 덕분에 몇 번 받았던 상이지만, 나의 부족한 상상력이 그려낸 그림은 매번 똑같은 패턴이었다. 그렇게 내게 '미래'라는 것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진출한 인간'의 모습으로 구체화된 것이었다.


인간의 우주 진출이 미래의 모습이라면, 그것은 이미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으로 오래전에 실현된 것이다(사건의 진위여부는 논외로 하고). 그 후로 미래라는 것은 내가 어릴 때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을 그려내고,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기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SF류의 영화를 보면 저게 곧 현실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기대와 우려가 겹치게 된다.


이번에 본 넷플릭스 영화, <I Am Mother>는 미래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를 앞서게 하는 영화였다. 최근 본 SF영화마다 지구 종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어서다. 동명의 미국 영화가 있지만, 이 영화는 호주산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번이나 탔던 힐러리 스왱크가 살아남은 인류 중 한 명으로 등장하여 탄탄한 연기로 현실감을 높여준다.



인류 멸종 사건 후 1일째, 인류 재건 시설 내에 인공지능 로봇인, 마더(인류 재건 프로그래밍 로봇)가 시스템에 의해 자동 조립된다. 인류의 멸망 후 재건 프로젝트가 이미 그전부터 설계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더는 저장 중인 63,000개의 배아 중 여(女) 배아 하나를 택해 태아 출산 시스템을 통해 출생시킨다(이와 같은 자동화 출생 장치는 헉슬러의 <멋진 신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마더는 아이 육아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으로 딸을 지, 덕, 체를 겸비한 완벽한 인간으로 길러낸다. 그렇게 딸과 인공지능 마더는 서로에게 하나밖에 없는 '가족'으로 서로의 안위를 위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낯선 여자의 방문이 있기 전까지는.

<I Am Mother>,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인류는 멸종한 것으로 교육을 받았던 딸은 생존 인류의 존재에 충격을 받고, 낯선 방문자로 인해 마더로부터 받은 교육의 진실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딸은 생애 처음으로 만난 같은 종의 인류와 인공지능 로봇이 길러낸 최초의 인류 사이에서 어떤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siri'를 모델로 했다는 영화 <Her>에서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이야기를 보았을 때는 인간의 외로움, 상실감을 달래려는 도구 정도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냥 즐겁게만 볼 수 있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러나 <I Am Mother>는 도구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문제가 아니다. 인류의 배아를 고르고 출생과 육아를 관장하는, 말 그대로 '인간을 길러내는 일체의 모든 일', 즉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출생의 근원이자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요람이 아니던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드로이드(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라니.

인류를 재건하고 양육해내는 안드로이드 영화라면, <Raised by Wolves> 시리즈물도 신선한 충격이긴 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그 느낌이 더 강렬했던 것은, 인간의 몸이 아닌 로봇의 몸체와, 표정을 읽을 수 없으나 응시하는 듯한 로봇의 시선의 움직임 때문이었던 것 같다. 표정을 볼 수 없으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력이 오히려 극대화되어 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마더가 딸에게 인간 고유의 가치에 대해 교육하며 이런 질문을 던지는 때이다.

치명상을 입은 1명의 환자와 이 환자의 장기 기증으로 살 수 있는 5명의 다른 환자들이 있다.
치명상의 환자 1명을 살리고자 하면 나머지 5명이 죽게 된다.
네가 의사라면 이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 방침은 무엇인가.

이는 보다 완벽한 창조주를 길러내기 위해 이전의 완벽하지 못했던 인류의 생명은 가차 없이 없앤 마더가 하는 질문이라 더 생각이 복잡해지는 질문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설파했던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해 드로이드와 토론하는 장면과 인공지능 로봇의 입을 통해 재현되는 '인간 고유의 가치'나 '인간의 행복추구권'과 같은 말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를 길러내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엄마로서의 수많은 고뇌와 번민, 그리고 동시에 함께 오는 극치의 행복이 주는 양가감정들. 그것이 없이 이성과 합리, 완벽한 절제와 계획에 의해 양육되는 인류가 과연 '진정한 인간성'을 지닌 인류라고 볼 수 있을지.

이런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고민이 깊어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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