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끝은 어디인가, <타임 패러독스>

by 정혜영
What if I could put him in front of you, the man that ruined your life, if I could guarantee that you'd get away with it, would you kill him?
당신 인생을 망친 자를 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절대 안 걸린다고 보장한다면,
죽이겠습니까?

이 질문으로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시작된다.(영화의 감흥에 젖어 첫 문장을 열심히 듣고 영어로 옮겨 보았음. 틀린 부분을 알려주시면 빠르게 고칠 예정 :-))

음, 복수 이야기군, 예상하며 철천지 원수 관계의 인물의 등장과 이들 간의 처절한 복수극을 미리 떠올렸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예상한 머릿속 그림은 산산이 깨지고 결국에는 아! 하는 탄식이 입에서 새어 나오고야 만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시간 여행에 관한 영화이다. 이제는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내가 참 사랑했던 시간여행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서부터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 <시간 여행자의 아내>와 같이 애달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과거 예술과의 조우를 다룬 이야기, <너의 이름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애니메이션에서도 시간 여행 관련 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도 <하루>나 <거기 있어 줄래요>, <시월애> 같은 영화들이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최근에 본 핸드메이드형 시간 여행 이야기, <카페 벨 에포크>까지, 내가 직접 본 영화만 나열해도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영화는 참 많기도 하다.


그만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꾸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은 안타까운 과거 이야기나,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혹은 기대되기도 하는 미래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사인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서 쌍둥이 형제인 피터와 마이클 스피어리그 감독은 수없이 재생, 반복된 '타임 슬립(시간 여행)'물들 중 이 영화만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고민은 영화 속에서 탁월하게 발현되었다(적어도 내게는).


이 영화의 어느 부분을 건드려야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이야기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화의 어떤 부분부터 시작하더라도 다시 시작한 시점 직전으로 돌아온다면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정도로만 폭로(?)의 욕구를 잠재워야겠다.

영화 속 주인공이 범죄 예방 본부의 요원이며, 이 요원(에단 호크)이 시간 여행을 통해 뉴욕을 초토화시킨 대형 폭파 사건의 용의자인 '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영화의 기본 기조이니, 이쯤은 언급해도 괜찮겠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시간 여행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요원과 고아원에서 자라나 우주 비행사를 꿈꾸던 소녀 제인(사라 스누크), '미혼모'라는 필명으로 잡지에 글(남성에게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용의)을 쓰는 존의 뫼비우스 띠와 같은 관계를 알아가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왼쪽부터 템퍼럴 요원, 제인, 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의미심장함에 놀라게 될, 영화 속 인물 간의 대화 몇 개 소개하는 것으로 강한 스포 욕구를 대신하고자 한다.

1.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 바텐더(위장 취업한 요원)가 존에게 던진 질문
2. 내 아이에겐 양 부모를 다 가진 진짜 가정을 주겠다고 다짐했지. - 존이 바텐더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 말
3. 기다리는 자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 서두른 자들이 남긴 기회뿐이죠. - 제인이 의문의 남자와 부딪히며 주고받는 말(링컨 대통령의 명언을 인용한 말이라 함)
4. 끊임없이 자신의 꼬리를 잘라 먹는 뱀이죠. - 요원이 범죄 예방 본부의 기획자인 로버트슨(노아 테일러)에게 한 말


영화에서 나의 마음과 통(通)한 장면은 존이 제인과 만났을 때,

"당신은 아름다워요. 사람들이 진작 얘기해줬어야 했는데."

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일생동안 마음속에 사랑의 욕구를 누르며 살아가는 외롭고 고독한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갈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누군가와 같은 마음인 지금, 이 영화를 본 아무나 와 속 시원하게 침 튀기며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거기서 나온 그 장면, 그것 때문이었잖아!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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