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현자타임

by 외과의사X

추석연휴 집에 내려와 먹고 자고 빈둥거리며 도전이 되는 강연 몇 개를 봤다. 누군가는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고 누군가는 아트로드를 걷고 또 누군가는 파일럿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그 경험으로 강연을 다니고 전시회를 열고 책을 쓰고 청년들에게 도전과 꿈과 영감을 주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가슴 뛰는 꿈을 좇아 safety zone에서 뛰쳐나갔고 위험천만한 도전은 짜릿한 꿈의 성취로 돌아왔다. 꿈은 현실이, 그 현실은 다른 꿈을 향한 자양분이 됐다.


이런 이야기들이 담긴 영상과 기사들을 한참을 읽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지, 날 안주하게 만드는 safety zone은 무엇인지. 어느 하나 답하기 쉽지 않았지만 명확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건 내가 진심으로 내가 하는 이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 살 사람 살리고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실력 있는 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토로한 불평과 회의들은 그 꿈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기보다 그 꿈 앞에서 자꾸만 초라해지는 나에 대한 변명이자 투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20살의 나는 더 이상 무력감과 열등감에 젖어 남은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그 어떤 어려움도 괜찮으니 치열하고 찐하게 삶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고 일기장에 끄적이곤 했었다. 어쩌면 난 그때 꿈꿨던 그 시간을 이미 살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치열해서 밤마다 초주검이 되어 침대에 쓰러지고, 너무 찐해서 머리와 가슴이 다 산화해 버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나고 또 그렇게 하루를 살고 새로운 배움과 경험들을 꾸역꾸역 소화시킨다.


힘들고 버겁지만 솔직히 난 이 생활이 좋다.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 파일럿이 되고 하늘을 나는 것이, 세계 곳곳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누군가의 꿈이었던 것처럼 난 지금 이 시간이 내가 꿈꿨던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날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쓸 시간이 올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러니 인상 펴고 감사함으로 다시 꿈꾸자. 그냥 하루를 버티고 살아남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 스타일대로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자. 그 어떤 모험과 도전보다도 흥미진진할 이야기를. 잃을 것 없는 이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Thrive, not just survive!


20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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