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정말 정말 잘하는, 평소에는 젠틀한데 수술만 들어가면 엄청난 상남자가 되는 교수님이 계시다. 며칠 전 그 교수님의 첫 퍼스트를 섰는데 데뷔전으로 하기에는 좀 어려운 케이스였다. 맘의 준비를 하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교수님은 마치 내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나를 혼내셨다.
첫 시작은 기구를 잡고 있는 내 손이었다. 앨리스를 왼손으로 잡고 있는 게 맘에 안 드셨는지 갑자기 "야!!! 너 왼손잡이야?!!!" 샤우팅을 날리셨고, 왼손잡이였던 나는 잠시 망설이다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후회할 정도의 깊은 정적이 몇 초간 이어졌다.
그 후속타는 "뭐 이렇게 떨어!!! 떨지 마 인마!!!"였고 호통을 듣고 나니 내 손은 더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심장 소리를 옆 사람이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전쟁터에서 포탄이 터지면 귀에서 삐이이이 하는 소리가 나며 온 세상이 천천히 움직이는 그런 느낌. 이러다 실신을 하겠구나 싶어 정신을 차리려고 심호흡을 천천히 깊게 하다가 문득 아차! 이분은 숨도 크게 쉬면 혼낸다고 그랬지..
그 후 한동안 조용해서 맘의 안정을 찾았을 때쯤 "너 안 되겠다!!! 자리 바꿔 인마!!!" 그렇게 왜 혼났는지 이유도 모른 채 세컨의 자리로.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야 인마 다시 바꿔!!!" 이렇게 다시 퍼스트의 자리로.
퍼스트 서다가 쫓겨나서 세컨으로. 거기서 다시 쫓겨나 퍼스트로. 그리고 또다시 세컨으로. 이건 수술방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극도로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세컨에서 쫓겨나 퍼스트로 되돌아온 내 모습이 구슬퍼 픽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마 사람의 도움 없이 수술 필드를 보여줄 수 있는 기구가 있었다면 난 바로 수술방을 나가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강판을 당하다 보면, 퍼스트와 세컨을 눈물겹게 오가다 보면 언젠간 나도 집도의가 될 수 있는 걸까. 집도의가 됐을 때 난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기대보다는 막막함이 더 큰 것 같다.
2019.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