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당직을 선 여파로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고 있던 내게 동기녀석이 자몽요거트를 사왔다. 당직실 창문으로 강릉 바다를 보며 달달하게 요거트를 먹고 있으니 문득 한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3년 전, 첫 파견병원이었던 강릉아산에서 난 신경과 인턴이자 주치의를 맡았고, 김OO 할아버지는 내 첫 환자였다. 뇌경색으로 입원 치료 중 폐렴이 심하게 와서 중환자실에 계시던 분이셨다. 며칠 전 인공호흡기를 떼고 호전 상태라고 들었으나, 여전히 숨쉬기 힘들어 하시고 진한 가래를 수시로 뱉어내고 있었다. 배양검사를 위해 팔 이곳 저곳을 찔러도 축 쳐져 아무 반응이 없으신 걸 보면서 난 할아버지가 무사히 퇴원하실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때쯤 할머니와 딸이 면회를 왔다. 인상이 정말 좋았던 두 분은 안마기로 할아버지의 등을 드드드드 두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우리 영감 많이 좋아진거 같죠?" "근데 이렇게 하면 가래가 잘 빠지나요 선생님?" 하며 물어보시는데 어물쩍 "네.. 그렇죠.."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내 걱정은 기우였고 할아버지는 빠른 호전을 보이며 며칠 뒤 일반병실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주치의로 내가 해드린건 밤새 잠은 잘 주무셨는지 묻고, 기침가래 다시 늘었다 해서 약 용량 늘려드리고, 변비 있다고 해서 변비약 드린 것 밖에는 없었는데 점점 컨디션이 좋아지셨다.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말에 머리만 긁적였다. 내가 보기에는 할아버지 스스로 회복되고 계셨고, 병실에서 쪽잠을 자며 밤낮 할아버지 옆을 지키는 딸의 돌봄이 그 회복을 빠르게 하고 있었다.
"선생님, 나 코줄 좀 빼주면 소원이 없겠어"
병실에 올라온지 1주 정도 지나고 할아버지가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 하셨다. 뇌경색으로 연하곤란이 있는 환자는 입으로 먹다가 사래가 자주 걸리고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어 코줄(L-tube)로 식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연하기능이 돌아오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면 환자에게 조금 더 편한 배줄(G-tube)로 바꾸기도 한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한 달간 연하기능이 돌아오지 않으면 배줄로 바꾸겠다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말씀을 하셨다.
며칠 뒤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하검사(VFSS)를 실시했다. 하지만 총 9단계 중에서 5번째에서 실패해서 코줄을 뺄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울적해 하시는 할아버지와 보호자에게 지금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몇 주 정도 더 연하재활을 하고 평소 요플레 같은 부드러운 음식 조금씩 삼키는 연습을 하면 2주 뒤에는 코줄을 뺄 수 있을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병원 앞 카페에서 파는 자몽요거트가 있는데 진짜 둘이 먹고 세명이 죽어도 모르는 맛이라고, 코줄 빼시면 기념으로 하나 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2주가 지났고 다시 연하검사를 했다. 지난 번에는 코줄을 뺄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면, 이번에는 이제 실패하면 계속 배줄을 끼고 살아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할아버지의 검사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담당 간호사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내가 연하검사 보조를 들어갔다. 운명의 순간을 함께 하게 된 두 사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할아버지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연하식을 할아버지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한 숫갈 한 숫갈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이가 뭔가를 삼킬 때 함께 "아이구 그렇지 잘한다" 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하지만 안타깝게 8번째 단계에서 음식물이 기도로 흡인되었고 할아버지는 기침을 심하게 하셨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 "L-tube insertion 유지하고 2주간 연하재활치료 시행한 후 다시 검사 의뢰해주세요"
병실에 올라와 다시 넣을 코줄을 가지고 할아버지에게 갔다. 다시 코줄을 껴야하고 이제 배줄을 언제 넣을지 외과와 계획을 잡아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침울한 표정으로 "코줄 안끼고.. 아무것도 안 먹고.. 그냥 죽어버릴라요.."라고 말씀하셨다. 옆에서 딸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나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일단 다른 방법이 없는지 다시 한번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린 후 재활의학과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김OO 환자 지난 번에 비해 많이 좋아지셨고 8단계 까지 갔다, 이런 추세면 코줄을 빼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지켜봐도 되지 않겠냐,고 여쭤보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두달 만에 요플레가 아닌 다른 음식을 입으로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살맛 나시죠?"라는 내 물음에 씩 웃으며 "응 근데 지금 먹는 밥은 씹는 맛이 안나.. 다른거로 바꿔줄 수 있으요?" 라고 대답하셨다. 그렇게 연보식2, 3으로 단계를 차차 올려보았고, 혹시나 다시 사래가 들리고 폐렴이 오지 않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잘 드셨다. 할아버지가 한숫갈 한숫갈 밥을 입으로 떠 넘기시고, 그 옆에서 입 주변을 닦아주는 딸을 보고 있으면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돌아가실거라 생각했던 분이 저렇게 회복되어 곧 퇴원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니, 주치의가 느끼는 기쁨과 보상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5월이 되었고 나는 응급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 퇴근하면서 자몽요거트 하나를 사서 다음 날 퇴원하신다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 이게 제가 말한 자몽 요거트에요. 너무 맛있다고 막 드시지 마시고 한숟갈 한숟갈 천천히 드세요. 사래 걸리면 큰일나요"
"선생님 보고 싶어서 어쩌지?"
"저 보고 싶다고 응급실로 다시 오시지 마시고 꼭 건강하세요. 퇴원 잘하시구요"
한달간 정들었는데 이제 퇴원하셔서 못본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근본이 무뚝뚝이라 머쓱하기도 하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나왔다.
흔히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를 고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병원에서 일하기 전에는 그런 줄 알았었고 그래서 의사가 참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의료현장에 들어와보니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이 든다. 비정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내게는, 의사도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표현이기 보다, 환자의 회복은 의사의 치료 이전에 인간이 가진 회복력과 삶에 대한 의지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돌봄 같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영역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말로 다가온다. 세브란스 병원에 걸려있는 "하나님은 치료하고 우리는 봉사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회복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우리 치료의 많은 부분이 observation(경과관찰)임을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풋내기 의사에게 깨닫게 해준 김씨 할아버지와 그 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동안 잘 지내셨으려나. 내가 사드린 자몽요거트 보다 훨씬 더 맛난 것들 드시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2019.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