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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X Nov 04. 2020

Suture Day



파견근무 첫째 날. 저녁 9시쯤 눈 주위가 찢어진 환자가 왔다.


아스피린을 먹는 분인 데다가 작은 동맥 하나가 찢어졌는지 피가 멈추지를 않았다. 출혈이 나는 혈관을 모스키토로 잡고 타이로 지혈한 다음 여유롭게 봉합을 하고 싶었으나 그게 말이 쉽지 현실은 달랐다.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움직여도 감당이 안 되는 폭우 속에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운전을 하는 기분이었다. 하필 그런 분이 내 응급실 첫 봉합 환자라니.


다음 환자는 입술의 한가운데가 1cm 정도, 다음 환자는 두피와 눈꺼풀이, 다음 환자는 엄지발가락 사이가 찢어져서 왔다. 하나하나가 다 내게는 난감한 과제였다. 꿰매는 것도 힘든데 보호자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 더 긴장이 됐다. 여유 있는 척했지만 손은 덜덜 떨리고 이마와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하나하나 끝내고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그날 내게 봉합을 당한 네 분에게 상당히 미안한 맘이 들었다.


며칠 뒤 대천 해수욕장에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 이 집 저 집을 둘러보고 고민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반갑게 뛰어오며 날 반기는 게 아닌가.


“선생님 지난주에 응급실에서 저희 아버지 꿰매 주셨잖아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아 그때 그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머리 다치신 할아버지 아드님?”


“네. 그때 땀 뻘뻘 흘리시면서 꼼꼼하고 친절하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꼼꼼한 게 아니라 꿰매는 게 처음이어서 그랬던 거예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조개구이와 회를 정말 싼 가격에 먹었다. 이제 그만 줘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밤새도록 먹었을 것 같다.


미안한 마음과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 담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어떤 상처가 와도 자신 있게 니들 홀더를 잡을 수 있는 그날이 어느새 올 거다.


201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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