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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우유니사막에 내가 섰다

The Ultra BOLIVIA Race 171km, 볼리비아 우유니사막

by 경수생각
배꼽시계가 끼니때를 알려왔다.
배낭에서 마지막 남은 육포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서울에서 맞을 멋진 만찬을 떠올리며 고픈 배를 채웠다.
그리고 멈췄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살을 파고드는 자외선, 거센 바람과 추위 그리고 고산병과 배낭의 하중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는 해발 4,000m가 넘는 지구 상 가장 깊고 높은 알티플라노 Altiplano와
우유니사막 Salar de Uyuni 171km를 달려
세상 끝 가장자리에 섰다.

2014년 6월, 진한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독한 습관이 나를 우유니사막으로 이끌었다. 미국 LA와 페루 리마를 거쳐 3박 4일 동안 3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해발 4,100m에 위치한 볼리비아 라파즈 LaPaz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자 가슴 압박과 머리를 죄는 고산병이 먼저 나를 맞았다. 비아그라와 다이나막스까지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숨 돌릴 틈 없이 남쪽으로 550km 떨어진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로 향했다. 차량으로 12시간을 넘게 내달려 살리나스 Salinas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지구 반대편, 이곳은 벌써 겨울로 접어들었다.


영하 19도의 우유니사막의 새벽 표정
레이스 맵 /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와 우유니사막


조금만 발을 내디뎌도 숨이 가쁘고 두통이 살아났다. 3~4일쯤 먼저 도착해 고도 적응을 해야 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쫓기듯 비행기를 탔다. 배낭을 풀어헤쳐 마늘장아찌 한 봉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비아그라도 한 알 더 챙겨 먹었다. 유희가 아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레이스의 발목을 잡는 복병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전 세계 11개국에서 모여든 20명의 선수들은 대회 운영자 제롬 Jérôme 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에서 풀려난 들개처럼 광활한 알티플라노를 향해 뛰쳐나갔다. 주변 산야는 수백만 년 동안 해저에 쌓인 퇴적물이 융기하며 만들어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응시했다. 3,860m에서 시작된 레이스는 4,200m 알카야 Alcaya 산 정상을 넘어 잉카문명 이전의 고대 흔적을 따라 이어졌다. 시속 5km의 속도로 기어올랐지만 심장은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요동쳤다.


건기의 우유니사막 / 타는 태양을 이고 달렸다
알티플라노 고원지대 / 잉카 이전의 고대문명 흔적이 여기저기 목격됐다


건조가 극에 달해 순식간에 입술이 갈라지고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두통은 머리 전체를 조여 왔다. 목덜미는 화상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묵직한 배낭이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그래도 레이스중 코이파사 소금호수 Salar de Coipasa와 4,074m의 투누파 화산 Tunupa volcano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건 큰 행운이었다.

3일 동안 살리나스에서 꼴까야 Colcaya를 거쳐 우유니사막 북단까지 알티플라노 고원지대 72km를 두 발로 달려 따후아 Tahua 화산까지 왔다. 이 화산은 언제 분출할지 모르는 활화산이었다. 주변에는 4~5m가 넘는 자이언트 선인장들이 위용을 뽐내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소금 호수 부근 펄밭에는 남미 낙타인 라마 Llama 무리들이 거칠게 돋은 풀을 뜯고 있었다.


비박 / 우유니사막의 밤은 선수들에게 가혹했다
동상이몽 / 레이스는 혹독해도 동료해는 뜨거웠다

부상으로 얼룩진 선수들이 내일 첫발을 내디딜 우유니사막을 꿈꾸며 잠자리에 들었다. 밖엔 거센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댔다. 캠프 전체가 휘청거렸다. 2인용 텐트에 박힌 철 핀이 힘없이 튕겨나갔다. 머리맡에 둔 물통은 진즉 얼어붙었다. 몸이 부서져 잠이 들었다.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무언가 해냈다는 것. 이것이 내겐 큰 행복이었다.


레이스 4일째, 따후아 화산을 출발한 선수들은 3일 동안 우유니사막에서 비박을 하며 사막 정중앙에 있는 잉카와시 섬 Inkahuasi island을 거쳐 칠레 접경지역인 꼴차네 Colchane까지 99km를 달렸다. 해발 3,680m에 위치한 우유니사막은 면적이 무려 12,000㎢로 경상남도보다 넓었다. 건기에 만난 우유니사막은 거북 등짝 모양의 갈라진 소금 벌판이 설원처럼 끝없이 펼쳐졌다.


레이스 종지부의 예감 / 레이스는 칠레 접경지역인 꼴차네 Colchane로 이어졌다
지구끝 우유니사막에 내가 섰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타는 햇살을 머리에 인 채 달렸다. 살인적인 자외선은 금세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렬했다. 단 몇 초도 고글을 벗고 버틸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호수, 원근감을 상실한 우유니사막은 시간이 멈춘 듯 달리고 달려도 매 그 자리였다. 그래서 선수들은 지독히 외로웠나 보다. 물고기의 섬 Isla del pescado으로도 불리는 잉카와시 섬을 지나 사막 한가운데서 5일째 비박을 맞았다. 밤은 선수들에게 가혹했다. 새벽 4시,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진저리 나게 불어대던 바람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우유니사막은 너무 고요했다. 대신 바람이 떠난 그 자리에는 소리 없는 냉기가 차지했다.


레이스 마지막 날, 다시 주로 위에 섰다. 지면의 소금 결정체에 반사된 광선이 피부를 녹일 기세로 온 몸을 쏘아댔다. 재차 불어대는 지독한 바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종일 맞은 소금 바람에 볼이 붉게 변해 화끈거렸다. 내 인생의 40대는 일상에 묻혀 동화되는 삶과 일상을 넘어 일탈이라는 두 바퀴가 나를 지탱했다. 보이는 것 너머 ‘나를 찾아 떠나는 도전’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보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더 컸다. 이 세상의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곳. 그래서 세상의 끝 경계에 있는 우유니사막에 내가 섰다.


완주자들의 환희 / 꼴차네 결승선에서
배낭은... 나를 끌어주고 지켜준 중심축이었다


사막과 오지를 달릴 때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은 늘 나를 힘들게 했다. 허리를 압박하고 발가락을 물집으로 부르트게 했다. 힘에 부쳐 방향을 잃고 흐느적거리게 했다. 그런데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배낭은 무게는 줄여가며 필요한 물과 식량을 주었고, 주저앉으려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어깨의 배낭은 레이스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배낭은 더 빨리 가려는 내 발목을 붙잡은 게 아니라 나를 끌어주고 지켜준 중심축이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알았다.


김경수

직장인모험가 | 오지레이서

in 우유니사막(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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