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_건너는_법, 인생을 사는 법

사막에서 길을 묻다

by 경수생각
손을 씻다 세면대 앞에 걸린 거울과 눈이 마주쳤다.
거울에 비친 얼굴 뒤로 끝없는 사하라의 모래언덕이 펼쳐졌다.
몸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데 모래와의 사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2010년 10월, 3명이 팀을 꾸려 도전을 감행했던 260km 사하라 레이스 5일째 밤, 김지산 기자가 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를 부축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사막의 밤 한가운데 맥없이 주저앉았다.

‘더 지치기 전에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아무나 올수 있지만 누구나 건널 수 없는 곳이 사막인가 보다.


얼굴의 물기를 훔치고 다시 거울을 드려다 봤다. 무덤덤한 표정 뒤로 비친 화장실 내부의 하얀 타일, 선명했던 사하라의 잔상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누구든 사막과 오지로 뛰어들 때는 자신감이 넘친다. 거침이 없고 사기충천하다. 하지만 대자연에 묻혀 오지를 넘나드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체력의 한계에서,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 광기 앞에 초라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니 사막이나 오지를 온전히 건너고 싶다면 이것만은 명심해야 한다.


지금 몸은 서울에 있지만 모래와의 사투는 끝나지 않았다
행복 찾아, 그늘 찾아/ 사막에서 그늘을 접수하려면 웬만한 불편함은 감수하고 만다.
# 쉬어가라


레이스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혹독한 대자연에 압도되어 첫날부터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다. 호기를 떨거나 자신의 체력을 과신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13년 5월, 하루도 거르지 않고 6일 동안 빗속을 뚫으며 히말라야 동부의 부탄, 푸나카의 산야 200km를 오르내렸다. 고통을 겪어봐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길을 잃어봐야 길을 찾을 수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근육경련이 온 몸을 오그라뜨렸다. 기어오르는 길목에서 수없이 개울에 몸을 처박다 다시 일어섰다.


주로에 10~15km 간격으로 CP(Check Point)가 설치되어 있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로를 이탈한 선수를 확인하고, 부상과 피로에 지친 선수들의 쉼터이다. 조금 빨리 가려고 CP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건 화를 자초할 뿐이다. 해발 3100m의 파로 계곡 건너편에 주저앉아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앞질러 내달리는 선수들의 뒷모습이 계곡 아래로 멀어져갔다. 목 위까지 찬 숨을 고르자 계곡을 휘감은 물안개가 갈리면서 장엄한 타이거네스트 사원이 위용을 드러냈다. 자신의 체력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가는 선수에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빨리 가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타이거네스트 사원 배경에 선 필자/ 잠시 멈추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아무나 갈수 있지만 아무나 건널 수 없는 곳 / 사막이 좋은 건 절대고독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함께가라


사막이 좋은 이유는 로 온밤을 지새우며 절대고독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때론 자신을 성숙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 갈수 있어도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사막이고 오지다.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 홀로 견디기보다 동반자를 만나 함께 가라.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때로는 거인의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대는 것도 흠은 아니다. 2012년 그랜드캐니언에서 나는 그 거인을 만났다.


그랜드 캐니언과 시온 캐니언의 대협곡을 넘나들던 270km G2G 레이스에서 나는 급격한 체력 소진으로 경기를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70세 고령인 이무웅님을 만나 용케 무박 2일의 76km 롱데이 구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27시간 동안 그는 나를 재촉하지도 내버려두고 떠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옆을 지켜줄 뿐이었다. 그러니 사막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손을 뻗거든 조건 없이 그의 손을 잡아줘라. 그는 당신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랜드캐니언을 넘어 시온 캐니언을 향해 / 그랜드캐니언에도 엄청난 사막이 있다
시각장애인과 부시맨의 고향 나미브사막 횡단/ 캠프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려준 외국 선수들
# 포기하지 마라


사막 레이스에서 선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점점 커져가는 발가락 물집과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의 심술이다. 특히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배낭의 무게이다. 배낭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선수는 몰래 자신의 식량을 모래 속에 버리거나가 경기를 포기할 궁리를 찾는다. 포기는 배추 셀 때 하는 말이다. 위험해서 포기하고 겁이 나서 포기한다. 귀찮아서 포기하고 승산이 없다고 지레 포기한다. 하지만 지구상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은 없다. 더 깊고 더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도 때론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2009년 시각장애인 송경태님과 부시맨의 고향, 1년 중 300일 이상 태양이 불타는 나미브사막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무박 2일 동안 100km를 달리던 구간에서 제한시간에 걸려 탈락 위기를 맞았다. 10km당 평균 3~4시간을 기어 80km지점까지 왔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3시간 남짓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승사자처럼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신은 분명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고난을 준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으면 못 이룰 것도 없다.

호주의 울룰루 배경에 선 필자/ 10일간 530km 레이스의 끝자락 새벽 주로에서
젊음이 좋다 만남이 좋다 / 젊은이들과 대학로 선술집에서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숨 고를 여유가 필요하다. 나무도 해거리를 한다. 멈춤이 결코 안주安住는 아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도약이다. 불능독성 不能獨成, 세상에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험난한 여정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반자가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과 맞닥뜨릴 때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낸다면 훗날 성공한 모험가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술기운 이었을까. 내 말이 끝나갈 즘 둘러앉은 네 명 젊은이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사막이든 일상이든 살아남는 방법은 매한가지다. 어쩌면 일상이 사막보다 더 가혹할지 모른다. 남의 인생에 곁눈질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진짜 퇴보다. 굳이 사막을 건너지 않더라도 이 세 가지 방법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일을 꿈꾼다. 비록 내가 산 술안주는 남겼지만 대전에서 먼 길 마다않고 서울까지 찾아와준 청년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한 동안 잊고 살았던 동숭동 대학로의 향취를 다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김경수

직장인모험가 | 오지레이서

in 대학로(서울 동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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