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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Mar 02. 2020

우리는 평생 호황을 누리지 못한다

2008년 대학생 시절, 첫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모형으로 명료하게 세상의 원리를 알아내고 예측하는 방법론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첫 과제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독후감을 쓰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서랍 깊은 곳에 먼지 쌓인 외장하드를 주섬주섬 꺼내어 연결했다. 그리고 남의 일기를 뒤져보는 간질거리는 마음으로 스무 살 내 생각의 파편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글 쓰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메모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매일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글을 잘 쓴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실은 글 쓰는 것에 익숙했던 것이지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글을 잘 쓰지는 못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시절의 글 보다 지금의 글이 조금은 발전한 것 같다. 이것 역시 지금의 내 글에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예전 독후감에서 나는, 경제학자들의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모형의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와 최고가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에 경의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 세계를 반영할 때야말로 그 모형이 가치가 있다는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의 관심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현상을 이해할 때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는 것. 그래서 수식과 그래프 표현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제한된 자유였던 것 같다. 당시 교수님들이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모형은 말로 풀어낸 것을 함축해서 전달하는 도구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현상을 수식을 통해서 담백하게 표현하려는 것보다, 이론과 모형을 말로 풀어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모형으로 여러 케이스를 포괄하기 힘들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만 이해 가능한 경제 모형은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느껴졌다. 실험할 수도 없고, 재현할 수도 없는 가설과 가능성만이 난무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빠르게 결론 내릴 수 없었고, 모든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unknown unknowns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예측은 커녕 이해조차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초보자인데 종결 욕구까지 겹쳐져서 답답했었고, 이런 경험이 반복되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서는 경제학의 올바른 이해를 막는 요인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 까다롭고 복잡한 분석보다 간단하고 시원시원한 정보를 선호하고 즉각적인 결과를 원한다. 무언가 쉽게 이해된다고 하면 그건 일반적으로 내가 똑똑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세상의 단편적인 부분만 보아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다, 주택 공급을 늘린다, 투기지역 가격 상승을 제한한다, 1가구 2주택 보유세를 늘린다. 다양한 정책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처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단기적인 예측(이라기보다는 시장의 반응)은 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 예측은 어렵고 불확실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항상 존재하기에, 같은 정책이 지금은 효과적일 수 있으나 다음에는 그렇지 아니할 수 있다.


두 번째, 호경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우리는 복리를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매일 1% 성장을 1년간 했을 때 (1.01 ^ 365) 성장률이 얼마인지 바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계산해 보기 전에 한번 상상해보고 그 차이를 인지해보라.) 지나고 나서 호경기였구나 하고 회고한다. 산업혁명 당시 연간 경제성장률이 얼마였을까? 고작 5%에 불과했다. 작년보다 생활수준이 5%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2008년 이 책을 처음 읽던 당시의 나와 2020년 이 책을 두 번째 읽고 있는 나는 꽤나 달라졌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느린 변화도 변화다. 다행히도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서, 운명에 저항할 수 있는 개인이 될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 비교적 편한 시기다.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자식의 삶은 커녕 우리의 5년 뒤 삶조차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경제를 비롯한 우리의 삶은 더욱 예측하기 힘들어지고, 나비효과를 보는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 크게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영향이 전 세계로 퍼지기도 했고, 작게는 알고리즘 신의 간택을 받아서 유튜브 검색 상단에 나의 영상이 노출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커져가는 시대에,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Reference.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토드 부크홀츠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릔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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