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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규승 Nov 03. 2023

원래 뻔한 게 하기 어렵다

사랑과 용기

사랑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최근 몇 년간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사랑이 과연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정의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상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에서 시작했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의 성향과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람을 조건으로 판단하기도 했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아, 이 사람은 이래서 싫어.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가다 보니 모든 사람과 맞지가 않았다. 분명 사람은 100% 맞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아는데 나는 성향과 가치관이 맞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거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관계가 반복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가.


그러다가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뿐인 것 같았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한데 내가 정말로 부모님을 사랑할까?


분명 부모님 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것은 왜일까? 나는 왜 부모님이 이러저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욕심이 들까? 나는 왜 부모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을까?


이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러저러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과는 먼 것 같았다. 나는 왜 있는 그대로 부모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서 부모님이 이렇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 부모님의 행동을(따지고 보면 이것은 부모님의 흠이 아닌 나의 투사로 인한 허물에 가까웠다.) 개선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부모님의 맥락이 아닌 내 맥락에서의 욕심을 부린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부모 생각대로 움직이는 자식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사랑하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부모님 그 자체라는 것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사랑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용기를 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것이 사랑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이해했다. 그렇게 사랑을 하기로 선택했다.




어려운 다짐이다.


이길 수 있는 링에 올라가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권투 시합을 하기 위해 링에 올라가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내가 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지언정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링 위에 올라가는 것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을 부분이 있는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상처받을 것임을, 실망할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연인의 관계에서 로맨틱한 사랑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길다. 긴 관계에서는 동반자적 사랑이 필요하다. 이는 로맨틱한 사랑에 비해 훨씬 더 차분하고, 깊은 끌림을 가지고 있다. 바소프레신은 사회적 유대감을 가지게 해 주고, 옥시토신은 차분함과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매일매일이 불타오르지 않더라도 은은한 사랑을 하는 것이다.


로맨틱한 사랑을 넘어서는 동반자적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관계가 아닌 오히려 우정과 형제애와 비슷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진정한 동반자를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고 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뢰를 한다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회색지대를 누군가 먼저 도약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현시대의 연애를 보면 다들 죄수의 딜렌마에 빠져있는 것 같다.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다 보니 사회적 이익이 최소가 되고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용기 있게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먼저 솔직하기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버려진다 할지라도, 수용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한다면 먼저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상처가 있더라도 용기 있는 사랑을 하고자 한다.




Reference.

러브 팩추얼리 - 로라 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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